엄마표 공부라고 하면 막연히 두렵다. 공부라면 아이 못지않게 멀리하고 싶은 엄마가 아이의 공부를 직접 가르쳐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학창 시절 공부를 잘했다고 자부하는 엄마는 몇 되지 않을 거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나는 수학을 좀 못 했는데, 나는 영어를 좀 못 했는데’ 하는, 아이에게 차마 꺼내놓고 싶지 않은 공부에 대한 기억을 안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엄마표 공부는 엄마가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공부 자립을 돕는 과정이라는 것 말이다.
고등학교 때 꽤 짓궂은 친구들이 있었다. 수업 시간 선생님에게 출신 대학을 자꾸만 물어봤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노련하게 그 상황을 넘겼었는데 그중 한 선생님의 대응이 인상적이었다.
“00아, 박찬호 코치가 박찬호보다 야구를 잘 하진 않아.”
엄마표 공부를 고민하고 있는 엄마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박찬호 선수가 너무 옛사람이라면 손흥민 선수를 떠올려보자.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축구 선수인 손흥민 선수를 만든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감독의 축구 경력이 손흥민 선수보다 화려하진 않다.
아이의 공부도 마찬가지다. 엄마표 공부라고 하면 엄마가 학교 혹은 학원 선생님처럼 아이가 공부하는 과목을 모두 능숙하게 가르쳐 줘야 할 것만 같다. 국영수는 물론이고 조선 왕조 계보, 원소 주기율표쯤은 줄줄 외우고 있어야 아이의 공부를 시킬 자격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엄마가 국영수를 잘 하고, 조선 왕조 계보와 과학 원소 주기율표를 완벽하게 외우고 있다고 해서 내 아이가 공부를 잘한다는 보장이 없다. 어쩌면 공부 잘하는 엄마는 맘처럼 따라오지 않는 아이에게 울화가 치밀어 엄마표 공부가 더 망할지도 모르겠다.
엄마표 공부를 시작하기에 앞서 늘 상기해야 한다. 엄마표 공부의 목표는 엄마인 내가 아이를 잘 가르쳐서 아이 공부를 잘하게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를 제일 잘 아는 엄마가 내 아이에게 맞는, 내 아이만의 공부 습관을 잡고, 내 아이의 공부 자립을 돕는 데 있다고 말이다.
우리 엄마들도 소싯적 공부 좀 해봐서 안다. 결국 공부는 본인이 하는 것이라는걸. 아무리 가르치는 선생님이 서울대를 나왔다고 한들, 저 유명한 일타 강사라고 한들 공부하는 내가 안 하면 그만이다. 즉, 아이 공부는 아이가 알아서 해야 마지막에 웃을 수 있다. 우리 엄마들은 그 준비를 돕기만 하면 된다.
아이의 공부는 아이의 건강과 닮았다. 아이가 좋은 음식을 먹고, 적당한 운동을 하고, 때때로 병원 진료를 받아 가며 정신적·육체적 건강 지수를 높이며 살아가야 하는 것처럼 아이의 공부도 좋은 책을 읽고, 적당한 공부를 하고, 때에 따라 학원 등의 보충 학습을 하며 공부의 힘을 기르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평생 건강을 관리해야 하듯 공부도 평생 해가며 그 힘을 늘려야 한다. 무엇보다 아이가 자랄수록 아이 스스로 본인의 건강을 지켜나가야 하듯 공부도 아이가 주체적으로 해나가야 한다는 점 즉, 엄마가 아이의 건강을 대신 지켜줄 수 없다는 점이 똑 닮았다.
이런 측면에서 이상적인 엄마표 교육은 엄마가 아이 교육의 주치의가 되는 정도면 된다. 주치의는 어느 한 사람의 건강 상태나 병에 대해 상담 또는 치료해 주는 의사를 말한다. 주치의가 환자의 모든 질환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 주치의 중에도 각자의 전문 분야가 있다. 주치의에게 꼭 필요한 능력은 치료를 잘 하는 것보다 환자의 상태를 제때 정확하게 점검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현명하게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환자에게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엄마도 딱 이 정도면 된다. 엄마표 공부를 하는 엄마가 모든 질환을 잘 봐줄 수 있는 ‘명의’까지 될 필요가 없다. 명의들은 그 질환 분야에 대해 내로라하는 의사지만 그 명의보다도 내 환자를 제일 잘 아는 건 담당 주치의라는 마음으로 임하면 된다.
내 아이의 공부를 제때 점검하고 아이에게 필요한 학습을, 필요한 만큼의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엄마표 공부. 아이의 공부에서 엄마가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은 함께 하고, 아이의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엄마가 가르치기엔 부담스러운 부분, 혹은 워킹맘이라 할 수 없는 부분은 전문 기관의 도움을 받는다. 타인의 기준에 맞추어, 옆집 엄마들의 기준에 맞추어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일타 강사를 찾고 레벨 테스트가 어려워 들어가기조차 어렵다는 학원을 수소문하는 그런 거 말고 아이에게 내 아이에게 맞는 학교, 학원, 학습 방법 등을 찾아 필요한 시기에 제시할 수 있으면 된다. 그리고 아이와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아이가 공부 독립을 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학습 방향과 습관을 정립하고 그 과정에서 진심 어린 응원을 해 줄 수 있으면 된다.
엄마표 공부가 학습에 대한 주도권을 아이에게 점진적으로 넘겨주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은 <기적의 서울대 쌍둥이 공부법>이라는 유명한 책에도 나온다. 이 책에서는 엄마의 이상적인 역할을 ‘지도자(초등) - 매니저(중등) - 지원군(고등)’으로 제안하고 있다.
초등 시절은 아이가 이제 막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기다. 공부라는 걸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아이가 알아서 공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엄마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학습 난이도 면에서도 그렇다. 우리 엄마들이 학창 시절 아무리 공부에 손을 놓았다고 하더라도 초등공부는 엄마가 살짝 먼저 학습하고 아이에게 가르쳐 줄 수 있을 정도다. 또한 교육용 프로그램, 시중 문제집, ebs 등이 너무 잘 되어 있어 그런 자료들을 잘 활용하면 엄마가 교사의 역할까지도 충분히 커버 가능하다. 그러나 중학교로, 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학습 내용도, 아이 대하기도 어려워진다. 그럴 때는 학습에 대한 엄마의 역할을 점점 줄여나가는 대신 정서적 지원 영역을 더욱 늘려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엄마들은 내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가 겪었던 학업의 어려움, 입시 스트레스, 친구 사이의 갈등을 아이는 겪지 않길 바란다. 그래서 공부도, 인성도, 건강도 미리 다 채워 주고 싶다. 내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미리 다 갖춰주고 싶은 엄마의 간절한 마음이다. 그런 엄마 마음에 엄마표 공부는 성에 차지 않는다. 하지만 공부 능력도, 자신의 꿈을 찾는 것도, 대인관계를 맺어가는 것도 결국 아이가 성인이 되어가면서 스스로 키워 가야 할 능력들이다.
초등공부에 있어서 학습량은 차선의 문제다. 학습 방향, 습관, 메타인지 등이 최우선의 문제다. 학습량은 학습 방향, 습관, 메타인지 등만 잘 수립되어 있으면 중학교에 가서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 이 최우선의 문제 즉, 어떻게 달려야 하는지, 달리다 어떨 때 넘어지는지, 넘어지면 어떻게 일어나면 되는지, 안 넘어지려면 미리 어떻게 준비하면 되는지를 아는 능력은 아이가 직접 부딪혀 보고, 넘어져 보고, 다시 일어나려고 애쓰면서 스스로 익혀야 할 역량이다.
이 과정에 필요한 건 잘 가르치는 교사, 강사, 학습 프로그램 등이 아니다. 초등 시절의 여유로운 시간, 조건 없이 아이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엄마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합리적으로 공교육과 사교육을 활용할 줄 아는 교육 주치의 엄마의 혜안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