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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쓸채은 Jun 21. 2024

내 아이의 공부가 꼬이는 지름길

엄마표 초등공부의 방향

아이가 어릴 때 아토피와 비염이 있었다. 아토피가 온몸으로 퍼지고, 심한 비염이 감기로, 중이염으로 몇 주째 이어지기도 했다. 어느 날 손자 걱정으로 잠 못 이루시던 어머님께서 약국에서 비싼 영양제를 한 통 사오셨다. 약사 선생님도 면역력에 좋다고 추천하고, 주변 엄마들도 아이 영양제는 하나쯤 챙겨 먹이길래 우리 집 아이도 하루 두 번 꼬박꼬박 먹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우리 집 아이는 삼대째 내려오는 주체하기 힘든 식탐을 갖고 태어났다. 분유를 먹던 시절에도 먹고 또 먹다 결국에는 우유를 뿜어내던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영양제를 먹더니 밥도, 간식도 더 많이 먹었다. 아이는 위로 자랄 줄 알았는데 옆으로 더 많이 자랐다. 결국 영유아검사 날 의사 선생님은 영양제 복용 중단을 권유했다. 그 영양제가 아이 입맛을 돋궈 주는 유명한 영양제라면서...



아이 공부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기질과 성향에 따라, 아이가 갖고 태어난 공부 주머니에 따라 아이에게 좋은 공부 방법과 필요한 공부 영역이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거라고, 남들 한다고 아이에게 필요 이상의 교육을 쏟아붓는 과잉 공급, 과잉 진료를 하다 보면 아이의 공부에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대표적인 부작용이 학년이 높아질수록 자기주도학습이 되어야 할 아이들이 학원의존학습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고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던 13년 전, 아이들의 학년과 학원을 다니는 학생 수는 반비례했다. 고등학교 입학 당시 학원을 다니던 아이들도 학년이 높아질수록 학원을 그만뒀고 고3이 되면 학원을 다니는 아이는 드문 편이었다. 특히 상위권일수록.



고등학교는 학년이 높아질수록 아웃풋 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초, 중학교부터 인풋해 온 것들을 내면화해 문제를 풀어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아이 스스로 공부해야 할 양이 많은 탓에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강의를 들으면 글로 공부하는 것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늦어도 고3이 되면 학원에서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비효율적임을 아이들도 느낀다.



그러나 요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학원을 끊질 못한다. 학원 없이도 충분히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고, 오히려 학원에 시간을 뺏기고 있음을 스스로 인지한 상위권 아이들도 불안함에 학원을 그만두지 못한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상담을 할 때 혼자 공부하는 시간을 우선적으로 점검한다. 아이의 평일 스케줄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원을 2~3군데 다니고 귀가하는 시간은 밤 11시, 12시다. 주말에 빈 시간을 좀 찾아보려고 해도 주말에도 학원을 간다. 시험 기간이 되면 더 빡빡하다. 시험 기간에는 스스로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것조차 학원 선생님이 정리해 준 요점 정리로, 찝어준 기출 문제로 하려고 한다. 학원을 다니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이 꼬임의 시작이 초등부터다. 이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혹은 그 전부터 학원을 다녔다. 어릴 때부터 학원에 의존해 공부를 한 아이들이기 때문에 공부는 학원에서 해야 하는 건 줄 알고, 강의를 듣고, 학원에서 내준 숙제를 하는 것을 공부라고 생각한다. 이런 우리 아이들이 상담 때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이거다. 



"공부 방법을 모르겠어요."



혼자서는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모른다. 자기 스스로 공부 계획을 세워본 적도, 서점에서 문제집을 골라본 적도, 어떻게 해야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도 없다. 학원에서 짜준 시간표 대로, 학원에서 정해준 문제집을 혹은 만들어준 프린트물 제본으로, 학원 선생님의 강의에 따라 공부를 했다. 그 덕분에 아이들은 고3이 되어서도 학원의 스케줄에 따라 공부하는 그 비효율적인 공부를, 전문가인 학원 선생님과 함께 하는 효율적인 공부인 줄 알고 지속한다. 이게 바로 내 아이의 공부가 꼬이는 지름길이다.



이쯤 되면 나를 오해하는 분들이 생길 것 같다. 사교육과 학원에 절대 반대하며 엄마표만으로 아이를 교육하겠다는 그런 열정 있는 엄마로 말이다. 오해는 말았으면 좋겠다. 난 맞벌이하는 워킹맘, 학원의 도움이 절실한 사람이다. 나의 퇴근 시간과 아이의 하교 시간을 맞추기 위해 우리 집 아이는 학원에 가야한다. 그리고 종종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도 필요에 따라 학원과 일타 강사의 인강을 권하는 그런 엄마이자 교사다.



다만 이 연사가 힘주어 전하고 싶은 말은 사교육을 하든 안 하든 초등공부에 있어서는 엄마표 병행이 필수라는 것. 초등은 과도한 사교육보다 엄마표 공부가 더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사교육을 하더라도 합리적으로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면 아이의 공부는 결국 아이의 공부 자립이 되어야 최후에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도 학원도 일종의 서비스업이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학생에게 보다 많은 편의를 제공하려고 한다. 엄마들은 느끼지 못하더라도 학교도 과거보다 매우 친절해졌다. 학교에서는 내신 시험 범위를 담임교사가 카톡으로 안내해 주고, 그걸 또 학원에서 다시 챙겨주는 시대다. 이렇다 보니 학생과 학부모는 기관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고 혼자할 수 있는 힘을 잃게 된다. 



반면, 엄마표는 서비스업이 아니다. 당장의 고객 만족도를 높이느라 굳이 혼자 할 힘마저 앗아가는 편의를 제공할 필요가 없다. 엄마표는 내 아이의 공부 방향을 장기적 관점에서 설정하고 나아갈 수 있다. 초등 고학년만 되어도 아이 공부는 아이의 몫이 된다. 초등 시절 학원보다 서비스가 조금 못한 엄마표 공부가 오히려 아이의 자기주도학습 능력을 길러주고 아이의 공부 자립 기반을 마련해 줄 수 있다. 



아이의 공부는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끝나지 않는다. 평생을 함께 해야 하는 존재다. 평생 누군가에게 의존해서 공부할 순 없다. 공부 습관이 잡히는 초등시절, 내 아이에게 엄마표 공부가 꼭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엄마표 초등공부의 최우선 방향이 아이의 공부 자립인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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