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기를 마음먹었지만, 그 결심은 번번이 결실을 맺지 못했다.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일단은 귀찮음이 첫 번째고, 꺾인 꽃의 상태를 보면 아무런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 꽃을 발견했을 때부터 말해보겠다.
공원을 지나다 보면 꽃을 발견한다. 꽃을 보면 묘한 욕망이 치밀어 오른다. 꺾고 싶다. 내 손에 쥐고 싶다. 예쁘게, 완벽하게,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그렇게 꽃을 꺾는다. 손안에 쥔 꽃을 보면 만족스럽다. 하지만 그다음은?
우선 물을 준다. 정성을 들인다고 믿는다. 시간이 지나면 뿌리 끝부터 검은색으로 썩기 시작한다. 걱정 마라 가위를 가져와 자르면 그만이다. 여기저기 검은 부분을 걸러낸다. 그런데 이상하다. 자르면 자를수록 더 이상 자를 게 없다. 꽃이 짧아졌다. 정신을 차려 꽃잎을 보면 이미 말라비틀어진 상태다. 그제야 깨닫는다. 꺾은 순간부터 꽃은 이미 죽어가고 있다는 걸.
난 어렸을 때부터 꽃을 꺾고 싶었다. 그동안 몇 번의 작은 시도가 있었고, 대략 2022년에 시도 끝에 꽃을 꺾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올해 2024년 말까지 꺾은 꽃을 다듬고 썩은 뿌리를 자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끝내 말라가는 꽃잎을 바라보는 기록, 이 기록이 이 에세이의 전부다.
다시 처음 부분으로 돌아간다.
소설 쓰기를 마음먹었지만, 그 결심은 번번이 결실을 맺지 못했다.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일단은 귀찮음이 첫 번째고, 꺾은 꽃의 상태를 보면 아무런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 지금은 그냥 꽃잎을 붙잡고 있을 뿐이다.
오늘까지도 아무 연락이 없는 걸 보니, 올해 역시 소설과 관련한 공모전은 떨어진 게 분명하다. 꽃은 죽는다. 꺾은 순간부터 시간이 문제일 뿐이다.
만약 다시 꺾음의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지금은 꺾지 않겠다고 말하겠지만, 그 순간의 나는 가차 없이 꽃을 꺾을 것이고, 다시 꽃이 말라가는 과정을 지켜볼 것 같다. 브런치에 올렸던 소설 [사냥철이 다가오면 어린양들은 도망쳐요]는 내게 시든 꽃과 같다. 그리고 어쩌면 나는 계속 꽃을 꺾을지도 모른다. 그래봤자 첫 번째 이유에 부딪쳐 좌절할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