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개는 솔직하다.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꼬리를 흔들면 기쁘다는 뜻이고, 귀를 접으면 두렵다는 신호다.
한편, 앞집에 살던 개는 날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가끔씩 우리 집으로 놀러 왔는데, 그럴 때마다 내 자리를 빼앗았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간식을 요구한다. 간식을 안 주면 저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인간과 개의 수 만년의 세월 끝에 내가 서열 싸움에서 패배했다.
다윈은 원숭이가 비언어적 감정 표현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눈을 감고 한숨 쉬기, 입 쫑긋 거리기 등등. 한국말에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라는 표현이 있는 걸 보면, 우리 조상님들 역시 다윈 못지않은 관찰력을 지녔던 것 같다.
사람은 불쾌(불편)한 상황에 마주하면 숨거나 도망치기 바쁘다고 한다. 상황에 벗어나려 가장 편한 상태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이런 행동에는 표정이 일그러지거나, 콧구멍이 커지거나, 입술을 앙 다물거나, 눈이 탱글 해지거나 혹은 실눈이 된다. 머리를 긁적이는 것도 있다.
난 창작물에서 괴롭히는 장면을 못 본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이입된 인물을 던져놓고 무수하게 꼬집는다. 그걸 못 본다. 어떤 영화 속 몇몇 장면을 보며 콧구멍이 무진장 커졌을 것이다. 숨이 잘 쉬어진다.
셰익스피어는 '헨리 8세'에서 이런 문장을 썼다.
머릿속에 엉뚱한 생각이 자리 잡았다. 그는 입술을 깨문 채 걸었다. 그러더니 땅을 응시했다.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다 튕기듯, 다시 걸음을 성큼성큼 걷는다. 고개를 들어 하늘에 걸린 달을 이상한 동작으로 쳐다보는가 싶더니, 그는 스스로 사그라졌다.
저 짧은 문장에 위에서 말한 게 다 있다.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을 처음 읽었던 2022년은 너도나도 마스크를 쓰다 보니 소통할 거리가 줄었다. 비언어적 표현이 모두 가려지니 오히려 불편한 일이 줄었다.
웃음의 생리학엔 이런 말이 나온다.
감정 표현은 습관적 몸짓으로 표현되는 경향이 있다, 만약 그 흐림이 충분히 해소되지 못하면 그것은 보다 덜 습관적인 행동으로 드러난다.
행동을 돌아보면, 불편하거나 관심이 없을 때 무의식적으로 뒤로 허리를 빼거나 다리를 꼬는 자세를 취하곤 한다. 이런 반사 행동은 아마도 무의식이 정한 가장 편한 자세이자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일 것이다.
특정 열망을 만족시키거나 불편한 감각을 상쇄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이런 행동들은, 처음에는 최소한 의식적으로 얻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