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를 다시 만나면 어떤 기분일까?”
흑백 영화에서 쓸 법한 말이다. 그러게 말이다. 난 아직 어려서 오랜 친구의 개념이 없다. 좀 더 늙고 병들다, 살아온 날보다 죽을 날이 더 적어지면 공감할 것 같다. 그렇다면 첫사랑은?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에 첫사랑이 있었나? 고등학교는 남고를 나와서 없다. 남고에 첫사랑이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곤란하다. 그럼 중학교 때는?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에 없다면 강렬함은 없던 거겠지.
웹툰작가 출신의 방송인이 예능에 나와서 했던 말이 있다.
“난 사실 재혼이야, 처음에 게임이랑 결혼했어.”
이 얘기를 듣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난 학창 시절에 게임과 사랑에 빠졌었다. 학창 시절도 아니다, 그냥 처음부터 게임과 함께했다. 우주에게 빅뱅이 있다면, 내게는 ‘워크래프트’가 있었다. 오만 접두사를 붙여도 표현할 수 없는 재미를 느끼게 해 준 게임이었다.
바야흐로 정자 시절, 유치원생 때다. 게임 내 시스템 중 캐릭터의 공격력 강화 기능이 있었는데, 강화 아이콘이 약해 보인다는 이유로 강화하지 않는 순진한(?) 아이였다.
게임 자체가 재밌었던 것도 있었지만, 워크래프트는 스토리가 훌륭한 게임이다. 지금이야 ‘K-어쩌고 저쩌고’라고 말하며 한국이 문화 강국이라, 한국어 콘텐츠가 당연시되지만 당시에는 아니었다. 한글 번역 게임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게임 스토리를 순전히 상상에 맡겨야 했다. 어린 나는 게임의 내용과 분위기를 통해 스토리를 유추하는 식으로 플레이했었다.
후속 편이 나오고 중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플레이했었다. 물론 당시에도 한글 번역은 존재하지 않았다.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최소한 내가 플레이했던 게임 CD는 영문판이었다) 중간에 가이드북이 출시되고 사서 읽게 되면서 스토리를 처음 이해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재밌었다.
다시 지금으로 돌아온다. 순진하게 즐기던 게임이 리메이크된다는 소식이었다. ‘다시 한번 즐겨볼 수 있겠군’이라고 생각했다. 기대라는 단어 뒤엔 늘 실망이라는 단어가 붙는다. 기대라는 단어 뒤에는 늘 실망이라는 단어가 붙는다. 유저 평점을 역대 최하 성적으로 기록하며, 리메이크작은 잊혀졌다.
그렇다고 마냥 리메이크작만을 탓할 수도 없다. 나 또한 멋진 스토리가 함유된 게임을 즐긴 지 꽤 됐다. 대신 자극적인 게임을 쫓았고, 이제는 그 자극적임이 취미가 됐다.
어느 날, 술집 거리를 지나가다 마주친 첫사랑을 마주했을 때, 시간은 우리를 많이 바꿔놓는다. 여전히 기억 속 모습을 간직하지만, 나도, 상대방도 모두 변해버린 것이다. 과거의 기억은 언제나 아름답지만, 그 시절 그대로 되살릴 순 없다, 살아있다면 모든 건 복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