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세계란
장르가 불분명한ㅡ아무튼 희망찬ㅡ배경 음악이 흐르고, 진행자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발효기 안을 살펴본다. 라디오에서 울리는 오프닝 시그널을 기점으로 치아바타를 구울지 말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멘트까지 완벽히 외워버린 중간 CM송이 나오면 바게트 반죽의 상태를 확인하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백오십 그람씩 나눈다. 무게에만 치중하느라 각 없이 잘려나간 반죽을 매끈히 다듬고 다시 삼십 분을 기다린다.
새벽 방송이니만큼 아주 가끔 진행자가 늦거나 돌발 상황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럴 땐 빵이고 뭐고 내가 늦기라도 한 것처럼 같이 초조해진다. 밀가루와 사투를 벌이면서도 라디오 속 DJ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쇼케이스 안엔 빵이 빵빵하게 채워져 있다. 라디오를 통해 시계를 보지 않아도 시간을 가늠하고 진행 코너에 따라 순간 잊고 있던 요일을 상기한다. 여러모로 고마운 라디오다.
어릴 적엔 라디오를 맡에 두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세탁소 아저씨를 지나칠 때마다, 듣지도 않으면서 온종일 라디오를 켜 두는 저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정읍에 계시는 할머니가 다 낡아빠진 라디오를 애지중지하는 모습이 눈에 밟혀 알바로 받은 첫 월급으로 카세트라디오를 선물해드린 기억도 있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틱톡까지 합세해 영상 콘텐츠가 차고 넘치는 요즘 세상에 라디오를 붙들고 있는 내 신세가 어째 좀, 세상을 거꾸로 들어 올리는 느낌이긴 하다.
나의 라디오스타는 중학생부터 고등학생이던 시절까지 다양하게 포진해 있다. 지금도 명맥을 이어가는 <영스트리트>와 <별이 빛나는 밤>은 그 시절 청춘스타만이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 속 그의 촌철살인은 타이핑해서 간직할 정도로 사춘기이던 우리의 마음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가 게스트로 나오는 날엔 공테이프를 준비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라디오 앞에 섰다. 주파수가 맞지 않아 지지직거리면 온 신경을 곤두세워 조심스레 레버를 돌렸다. 녹음을 마친 따끈한 테이프는 다음날 학교에 가져가서 다 같이 돌려 들었다. 프로그램을 놓친 친구에게도, 이미 외울 정도로 듣고 또 듣는 내게도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다. 하도 들어서 테이프가 늘어지는 바람에 말간 목소리가 기괴해져도 날짜와 프로그램명을 적어 책상 한편에 착착 모셔두었다. 지금은 팟캐스트로 언제든 듣고 또 들을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DJ의 목소리는 오로지 그 시간 라디오를 통해서 들을 수 있을 뿐, 지나간 순간은 다시 듣지 못했다. 그래서 더 소중했다.
라디오를 그만 듣겠다는 결심은 한 적은 없는데 멀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딱히 좋아하는 아이돌이나 배우도 없고 머리 좀 굵어졌다고 DJ의 선곡보다 내 취향 가득한 플레이리스트를 더 아끼게 된 것이다. 나이가 찰 수록 라디오 따위를 들으며 가만히 앉아있을 여유도 없었다. 대학생이 된 이후로 라디오를 즐겨 듣던 저녁은 가장 바쁜 시간이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던 것 같다. 끝까지 라디오를 놓지 못한 친구 하나는 신해철 씨가 고인이 되고 난 뒤로 라디오는 아예 곁에 두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러던 내가, 그것도 이 시대에, 방송국의 개편 사정까지 꿰뚫는 형편이 된 것이다. 라디오스타는 정녕 어른들만의 세계였을까. 이제야 라디오 앞에서 꾸벅꾸벅 졸던 세탁소 아저씨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엔 아흔이 다 되어가는 정읍 할머니께 신식 카세트라디오를 사서 보내드렸다.
모두가 잠들어있는 새벽녘 출근길은 고되고 또 외롭다. 새벽 다섯 시에 시작하는 프로그램을 꾸리기 위해 나와 마찬가지로 힘겹게 집을 나섰을 제작진이나 진행자, 게스트를 떠올리면 무거운 새벽 공기가 그제야 가벼이 흩날리는 것 같다. 어느 날은 DJ가 빵을 구우면서 잠깐 짬을 내어 보냈다는 청취자의 문자를 읽어주었는데 그게 뭐라고 키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 말고도 커다란 트럭을 운전 중인 청취자, 삼 교대 근무로 인한 새벽 출근하는 청취자, 급기야 퇴근 중인 사람까지 나 말고도 많은 사람이 이 시간에 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고단하고 억울한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진다.
새벽을 여는 사람은 골목에도 있다. 업무 특성상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는 사람도 꽤 보인다. 종종 환경 공무원과도 마주치는데 우리는 그 고요한 골목이 떠나가도록 쩌렁한 목소리로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그사이 새벽 배송을 하는 분들도 분주히 박스를 실어 나른다. 네모난 전동카트를 끌며 가게 앞을 지나는 일명 요구르트 아주머니들의 위풍당당한 모습도 볼 수 있다. 껌껌한 새벽이어도 빠른 걸음으로 산책을 하거나 러닝을 하는 부지런한 사람도 간혹 눈에 띈다.
가게를 시작하면서부터 당연하게만 여겼던 것에 대해 일종의 경외 같은 걸 느낀다. 예전이었으면 일상의 진부 정도로 치부했을 모든 일이 이젠 놀랍도록 생경하다. 빵집을 하지 않았다면 영영 마주치지 못했을 하루를 빨리 맞이하는 사람들, 나를 포함해서 이들은 대개 남들보다 하루를 일찍 끝내느라 일상에선 만나기 쉽지 않다. 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의 활동만이 사회의 동력이라 생각했던 내 키가 한 뼘은 더 자란 것 같다. 그나저나 나도 참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이지 싶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쳇바퀴인 일상이 싫다고 했으면서, 매일 같은 시간에 흐르는 라디오 시그널이 그렇게 특별하고 소중하다니.
때마침 일곱 시를 알리는 시그널이 들려왔다. 내 손엔 어김없이 갓 뽑은 뜨끈한 커피가 들려있다. 밀가루를 뒤집어쓴 채로, 가게 문을 열고 좌우를 살피면서 커피 한 모금을 넘긴다. 여유도 아주 잠시, 타이머가 자르르 울리기 시작한다. 거참, 눈치도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