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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가닉씨 Apr 15. 2024

절필 선언

그럴 리가…



  담아둔 마음을 쏟아내는 건 축복이다. 그게 글이든 말이든 간에, 좌우지간 대단한 일이다. 마음을 들어줄 상대가 있다거나, 표현할 힘이 있거나, 투명하게 담아낼 도화지가 있는 것까지 모든 게 맞아떨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그간은 그렇지 못해 글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에둘러 설명한다.


내가 글을 써 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나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쓰면서 맘 속에 박힌 단어의 돌멩이를 빼낸다. 술이나 커피를 마시며 하는 이야기는 정제되지 않고, 그냥 날 것이다(웬만하면 그러려고 한다. 그 순간만큼은 솔직해지고 싶다). 애써 문장을 엮고 단어를 고르지 않아도 말만으로 충분하다. 대화는 경청하는 상대가 있을 때 더 효과를 발휘한다. 이도 분명 마음속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탁월한 방법임이 틀림없지만, 가끔은 단어를 날카롭게 깎아 정제하고, 누군가에게 문장으로 다가가고 싶어 글을 써왔다.


사실 글이 뜸한 다른 이유도 있긴 하다. 활자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이 많다는 X나 스레드에서 우연히 떠도는 글을 보게 됐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골자는 이러했다.

콘텐츠 시대에 사람들은 너도나도 그에 맞는 플랫폼을 갖고 싶어 한단다. 글 좀 쓰면 책을 내고, 말 좀 하면 팟캐스트를 만들고, 뭐 좀 된다 싶으면 유튜브 채널을 판다는. 그러다 일명 인플루언서가 되면 그 결말은 꼭 출판이라더라. 그러다 보니 전반적으로 책의 질이 상당히 떨어졌다는 것이다. 하물며 먹는 것도 뛰는 것도 자는 것도 노는 것도 화내는 것도 시비 거는 것도 몰래 웃기고 울리는 것도 콘텐츠가 된 시대에, 모든 게 하향 평준화 되고 있다는 것. 그래서 굉장히 피곤하다고. 개소리만 소음이 아니라는 것. 인용한 글까지 모아놓고 보면 대충 이런 맥락이다.


안 그래도 간간이 타자를 치던 손가락이 멈췄다. 깊이가 없다는 사실은 늘 나를 따라다니던 골칫거리이자 콤플렉스였으며 때론 스스로를 희화화한 웃음거리였다. 정곡을 찔렸다.

필력이라는 것도 그렇다. 주어와 술어 관계만 명확하면 된다는 게 지론이라 필’력‘이랄 것도 없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나는 책 한 권을 출간했고, 가끔 기고도 했다. 모든 글을 모아보면 또 한 권의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만, 생각해 보니 그것도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손바뀜이 빠른 시대에 더 먼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 언젠가 나도 콘텐츠의 중요성을 주창하고 다녔더란다. 뭘 해도 콘텐츠라고. 회사에선 딱히 전달할 것이 없다고 생각되면 소셜미디어는 운영도 말자고 하던 때가 있었다. 할 말이 없으면 입을 닫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이렇다 보니 콘텐츠는 내 감히 범접하기 쉽지 않은 것이라 여겨, 그 문을 열지 않은 것이 어쩌면 이 시대를 따라잡지 못한 이유가 되었을 수도 있다.


여하간 그 글은 꽤 오랫동안 날 괴롭혔다. 메모장에 차곡차곡 쌓인 미완성 문장은 그냥 그렇게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당장 지금 생각해도 참 거창하다만, ’ 절필 선언‘이라는 걸 해볼까 하기도 했다. 이내 니까짓게 뭐라고 ’ 절필‘을 ‘선언’까지 하나 싶어 관두었다.

그도 그럴 테지만 변화한 내 일상도 한 몫했다. 나는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향해 고개를 주욱 내미는, 그러니까 매일같이 거북목을 가속화하는 일 따위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중력을 온몸으로 받아 안고 하루종일 서서 일하는 몸 쓰는 노동자가 되었다. 더 이상 번뜩이는 문장을 이을 재간이 없었다. 그게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다.


취향에도 집중했다


 그럴 때마다 읽는 것에 집중했다. 원래 자기 계발서류의 책은 쳐다보지도 않던 터라 이를 제외하곤 이것저것 읽어 댔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본질에 가까워지려는 본능적인 몸부림인 것 같다. 장사를 죽 쑨 날엔 내 빵을 어그적 어그적 먹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먹어보면 (비록 내 빵이지만) 맛이 좋아 안심이 되고(심지어 이걸 왜 안 사?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읽다 보면 언젠가 이 아슬한 세계에서 슬슬 잔근육을 다지면서 되살아날 거라고 믿었다.


내가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찾아갔다가 들은 모교 교수님의 말씀도 가끔 떠올린다. 그렇게 큰 물(?)에서 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혹은 멋있게라고 하셨던가) ‘조용한’(이 부분을 특히 강조하셨다) 무림의 고수가 되는 거라고. 아무래도 그는 나를 당신의 연구 학생으로 남겨두려고 했던 거 같다. 그때는 동의하지 못한 생각을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신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정성스러운 추천서를 써주셨다. 책도 여러 권 낸 고수답게 알 찬 추천서였다. 좀 웃긴 게, 그렇게 어렵게 준비해서 합격까지 해놓고는 입학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말을 듣고 교정을 나선 때부터였을까. 무림의 고수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 애초에 큰걸 바라지도 않았다. 내 주제에 무슨 큰 거, 큰 일은. 그 말씀의 여파는 생각보다 강력했다.

그렇게 삼 년을 꽉 채우고도 육 개월을 넘게 이 작은 골목에서 빵집 주인으로 살고 있다. 무림은 아니고 대신 이 골목, 이 구역의 조용한 고수가 되겠다는 야망 같은 걸 품으면서.


한때는 읽는 것보다 쓰는 것이 익숙한 적이 있다. 읽기보다 더 많이 썼다. 고백하건대, 마치 바닥을 보이는 곳간처럼 더 이상 고를 단어가 똑 떨어지는 걸 체감할 때마다 마음이 시렸다. 불안하고 심란했다. 애초에 깊이가 없으니 깊을 리 만무한 나의 글과 맥락과 삶이 말이다.

마음 같아선(성질 같아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다신 쓰지 않겠다는 무언의 선언을 하려고 했으나, 내가 그런다 한들 아무도 아쉬워하거나 회유하거나 만류하는 이가 없을 거 같아 전략을 바꿨다. 이럴 때일수록 더 많이 읽고 쓰겠다고 말이다. 오기가 생겼다.


이제야 마음이 좀 놓인다. 그사이 브런치는 다른 ’ 틈‘을 찾고 있나 보다. 요새 들어 뭇사람이 지적하듯, 브런치엔 쓰는 이만 있고 읽는 이는 없다는 원망에 나도 일조했다. 그래도 그 틈을 파고들어야겠다. 더 날카롭게, 뾰족이.


그간 일던 마음의 파동에, 이쯤에서 그만 무거운 추를 달아 떨구기로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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