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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워서 환장 속으로

감 떨어진 감

by 오가닉씨


7,488시간, 58,032개.

가게를 시작한 이후 지난 4.5년간 보수적으로 계산한 작업 시간과 빵의 개수다(샌드위치와 자잘한 빵은 제외했다). 빵 작업이라는 게 실은 과정이 명확해서 작업 패턴의 변화는 거의 없다. 다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목표한 반죽 온도와 믹싱 상태(글루텐 정도)를 위해 미세하게 조절해야 할 요소가 있다. 이는 조절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뉘는데 실온과 밀가루 온도, 습도 등은 임의로 조절할 수 없는 부분이고, 나는 이를 감안해 물과 발효종의 온도, 믹싱 정도를 조절한다. 조절이 가능한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이 더 많다. 그래서 생각보다 간단한 일은 아니다. 단 일이 분(과장하면 몇십 초)의 차이로 피하고 싶은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믹서 몇 바퀴 정도로도 반죽의 온도와 상태가 달라질 때도 있다. 그렇다고 매번 목표치에 완벽히 도달할 수는 없어서 반죽 온도의 경우 1~2도 정도의 오차는 감안한다. 물론 반죽 상태가 완성의 종착은 아니다. 내 빵의 중요한 요소인 자연발효종은 어디로 튈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 보니 같은 작업을 해도 매일 다른 일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거의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반복해도 지루할 틈이 없고 그저 긴장의 연속이다. 어쩔 땐 점점 미궁에 빠진다는 착각마저 일었다. 매일 하긴 하는데 안 하는 느낌이랄까. 한 번은 단골손님(a.k.a. 맛쟁님)이 물어왔다. 맛을 내는 게 선천적이냐 아니면 학습의 효과인 것 같으냐는 질문이었다. 처음엔 감이라고 생각했다. 맛이나 향에 민감한 나는 가리는 것도 많고 음식은 물론 하여간 취향이라는 조건부를 달고 좋아하는 것에 비해 싫어하는 것이 많다. 그만큼 예민해서 실은 어느 정도 내가 타고난 줄 알았다. 요리할 때 따로 계량을 하지 않아도 간이 맞았고 먹어보면 대충 재료를 유추할 수 있었다. 소위 '감'이 타고났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당연히 프로페셔널 요리사와 비교할 수는 없는 수준이고 그냥 먹는 걸 좋아하는 인간으로서 그 정도면 나쁘지 않지 싶은 정도였다. 하지만 베이커가 된 이후로는 모든 게 달라졌다.


구울 수록 환장했다. 반죽이라는 녀석은 당최 내 마음대로 접히지 않고 뭉치지 않았다. 마치 노예처럼 반죽 손에 이끌려 이리저리 휘청였다. 집에서 취미로 구우면 모를까 당장 몇 시간 후면 손님에게 대접해야 하는 귀한 몸인데! 어쩔 수 없이 이 녀석에게 끌려다녀야만 했다. 그러면서 나는 매일같이 내 빵에 점수를 매겼다. 잔인해도 별 수 없었다. 최고 점수 95점을 기준으로 85점을 하한선으로 정했다. 물론 먹어보면(판매하는 데엔) 최고점과 최저점의 맛 차이는 거의 없다. 그런 적은 거의 없지만 어쩌다 하한선 그 이하면 무조건 폐기 수순을 밟는다. 화가 나고 지쳤다. 나는 매일같이 꼼수 하나 쓰지 않고 이렇게 사랑과 정성을 듬뿍 주는데 대체 이 반죽 녀석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하여간 지멋대로다 싶었다. 언젠가 한 번은 진짜로 반죽에게 따져 묻기도 했다. 너 왜 그래?(실화다) 하여간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땐 이리저리 뭉개서 던져 버리고 뛰쳐나가고 싶었다. 가게를 열고 이삼 년 동안은 그랬던 것 같다.


곰곰 생각해 봤다. 대체 왜일까. 반죽이 문제일까, 내가 문제일까. 뻔한 답이긴 하지만 반죽을 빚는 나로부터 원인을 찾기로 했다. 나는 고집이 세고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도전과 모험 앞에서는 불도저로 변해서 스스로도 나의 이런 성향이 의외라고 생각했다. 여하간 어떤 일은 무슨 자신감에서 인지 잘 될 것만 같았고, 실제로 그 결과는 평타 이상이었다. 취향이라고 했지만 사실 귀찮아서 음식점은 가는 집만 가고 듣는 것도 듣는 것만 들었다. 한 번의 만족을 전부로 생각했다. 그래서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이 뒤바뀐 적이 거의 없었다. 혹시 거기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니까 레시피에서 벗어나지 못한 절대 숫자에 대한 고집, 변화가 싫어서 레시피의 숫자를 칭송하는 귀찮음, 그리고 하나 더. 내 '감'이 실패할 거라는 겪어보지 못한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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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점까지 딱 맞아 떨어졌을 때의 쾌감...

그렇다고 단번에 감에 의지한 고집과 두려움을 깨는 건 어려웠다. 하지만 아주 작은 변화라면 치명적이진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반죽에 휘둘릴 때마다 작은 일탈을 시도했다. 하루는 성형할 때 새끼손가락을 들어 네 손으로 반죽을 만지기로 했다.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어떤 날은 아래에서부터 폴딩(성형을 위한 접기 과정)해보고, 오른쪽을 조금 더 길게 늘여보기로 했다. 밀가루에게도 본인의 기분이라는 게 있을 테니 같은 포대에 든 밀가루도 계량 전에 매번 만져보기로 했다. 절대 수치를 기준으로 물의 양을 조절하기로 한 것이다. 반죽이 유독 몰랑몰랑하면 손에 힘을 빼고 살살 다루기로 했고, 반대로 단단한 날에는 발효 시간을 더 두어 반죽을 충분히 달래 보기로 했다. 건조할 땐 물을 더 뿌리고 천을 씌웠고 장마 시즌엔 그냥 내버려 두었다.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나는 상황에 따라 그날그날 한 가지, 딱 한 가지만 변화를 주면서 비로소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하루하루 쌓아간 지난 4.5년 간의 데이터가 꽤 정교해졌다. 그걸 매번 기록하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애를 좀 쓰긴 했지만, 한 달 단위로 약간씩 변화하는 컨디션과 내가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을 적어둔 노트는 지금 내 재산 1호이다.

이는 아마도 대부분의 베이커가 겪는 과정일 거다. 오래도록 연습하고 익혀온 레시피를 거스르는다는 게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애초에 감각이 타고난 베이커는 겪지 않을 수도 있지만, 홈베이킹부터 시작한 나의 경우는 달랐다. 가게를 연 지 5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이제 반죽에 '끌려'다니진 않지만, 여전히 이 지난한 과거를 떠올리면 어질어질하다.


그런데 말이다. 생각할수록 너무 당연한 것들이다. 국이 짤 땐 물을, 싱거울 땐 소금을 더 넣으면 되는 것처럼 상황에 따라 방법을 찾으면 될 뿐이었다. 절대적인 도덕과 규범이 아니고서야 내 선에서 변화를 주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한 치의 변화에 그렇게 발발 떨었던가. 정작 품고 있던 꿈이나 하고 싶은 일에 덤비는 것 앞에서는 누구보다 용감했으면서 말이다. 그동안 감에 의지해서 모든 일을 그냥 대충대충, 설렁설렁, 쉽게 쉽게 처리하던 과거를 떠올렸다. 그러다 잘 안되면 그 원인을 그냥 두려움이나 고집 정도로 치부했던 과거를 말이다. 작은 변화의 힘이 살갗에 닿아 쓸려버렸다. 변화는 매일같이 묵묵히 데이터를 쌓았다. 부끄럽지만 나는 이제야 감각이 아닌 데이터가 주는 확신을 믿게 됐다. 아아, 솔직히 내가 이런 자기 계발서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정말이다.



초기엔 버린 반죽도 많았다



“밀집은 빵이 장르예요."


그녀(a.k.a. 맛쟁님)가 말했다. 순간 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어 참말 다행이었다. 그런 말은 사양하지 않고 매일 삼키겠다고 온갖 쿨한 척을 했으나, 그녀가 가자마자 황급히 커튼을 열어 작업실에 들어섰다. 그리고 나는 엉엉 울고 말았다. 그 말이 그렇게 듣고 싶었다보다. 아무리 생각해도 문학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귀에 착 감기는 한 마디였다. 실은 그렇게 데이터를 쌓니마니 해도 내 빵이 여전히 95점이 최고점이라는 아쉬움이 있기는 했다. 아직 나는 내 기준이긴 하지만 95점 이상의 빵을 구워본 적도 없고 사실 그 이상의 남의 빵을 먹어본 적도 없다. 그날 깨달았다. 극찬 앞에서도, 나는 아직 더 열을 올릴 5점의 여지가 있다고. 언젠가는 매일 백 점을 맞을 날이 올 거라는 확신과 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만약 과거에서처럼 오직 감에만 의지했다면 나는 아마 커튼 뒤로 숨어버렸을 것이다. 얼결에 받은 칭찬인가 싶어 부끄러워서.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그간 쌓인 경험이 내게 말해주었다. 마치 오래도록 기다려온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오래도록 힙합을 좋아하고 많이 들어온 내가 가장 최고라고 여기는 것이 바로 비트를 '가지고 노는' 곡인데, 그렇다. 나는 이제 반죽을 가지고 논다. 아직 5점이 부족해도 빵밥을 먹기로 한 이상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훨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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