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사람이 돼야지
야옹… 야옹….
분명 울음소리였다. 구슬프기까지 했다. 고양이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지만 그냥 느낌이 그랬다. 갈길이 먼 터라 첫날은 그냥 지나쳤다. 잠깐 그러다 말겠지 하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다음날 새벽, 또 같은 울음소리를 들었다.
안 그래도 고양이박사님(이자 단골이자 지금은 친구인)께 연락을 해볼까 했는데, 운명인가. 마침 그녀가 가게에 왔다. 대충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그녀는 보이지 않는(보일리 없는) 레이더를 가동해 귀신같이 고양이가 있는 위치를 찾아냈다. 소리가 난다는 쪽엘 가보니 무거운 셔터 아래 작은 틈이 있었다. 길바닥에 거의 눕다시피 해서 그 안을 살폈다. 초롱초롱한 두 눈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
그 사이 옆옆 가게인 피자집 사장님과 바로 앞 서점 사장님 부부가 모였다. 며칠 전부터 들려온 고양이 울음소리에 같은 의문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조금 후엔 초밥집 사장님도 왔다. 자신의 가게 앞에 사람이 모여있으니 무슨 소동이 벌어졌나 싶어 파키스탄 음식점의 주방장님도 나왔다. 거기에 나와 고양이 박사님까지 함께 있었으니, 그 좁은 골목이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녀석을 구조하기 전까지 우리는 온갖 추측을 했다. 사방이 막혔는데 이 작은 녀석이 어쩌다 그곳에 들어가 울고 있는 거며, 부모는 대체 어딜 간 건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는지, 얼마나 굶었을지 등. 급한 대로 피자집 사장님이 먹을거리를 넣어주기도 했다. 나도 오후 작업을 하면서 틈이 날 때마다 그 앞을 서성였다. 아무래도 빨리 셔터를 올려야만 했다. 건물주와 통화하고 세입자와 연결되기까지 꼬박 하루가 걸렸다. 마침내 셔터를 열고 들어가니 녀석은 도망가고 없었다. 하릴없이 고양이박사님 말대로 참치캔과 깨끗한 물을 넣어주었다.
"구조하는 것밖엔 답이 없겠어요."
고양이박사님의 말에 나와 서점사장님도 얼결에 녀석 생포작전에 투입됐다. 만약 종이박스가 있다면 그 근처에 있을 거라는 고양이박사님의 예상이 적중했다. 그렇게 치치(치즈 치아바타를 닮은 녀석이라)가 세상밖으로 나왔다. 사실 그때만 해도 나는 몰랐다. 고양이를 ‘구조‘한다는 책임과 무게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했나 보다. 아마 고양이박사님은 알고 있었겠지. 가뜩이나 하얀 얼굴이 사색이 돼, 병원을 오가던, 하지만 다정했던 그녀의 얼굴이 지금껏 잊히질 않는다.
그게 벌써 한 달 전의 일이다. 그간 이 작은 치치에겐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만, 고양이 박사님의 사랑으로 사백 그람에 지나지 않던 무게가 일 킬로를 훌쩍 넘겨버렸다. 털은 윤기가 흐르고 눈은 더 또렷해졌으며, 움직임도 잽싸고 사랑스러운 그야말로 '고양이'가 되었다. 지금은 또 다른 단골손님(이자 친구인)의 품에서 임시보호 중이다.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기까지 한 이 작은 골목에서 치치의 등장은 그야말로 중대한 사건이었다. 지금도 골목 사람들은 우리 가게에 들러 치치의 안부를 묻다가 짧은 근황을 전하기도 한다. 손님도 마찬가지다. 인스타그램에 치치 소식을 올리고 있는데, 어째 빵 이야기보다 치치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는 경우도 왕왕 있다.
자영업자 폐업률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월까지 국내 자영업자수는 550만 명으로 이는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63년 이후로 가장 낮은 수치라고 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1997~1998년), 글로벌 금융위기(2008~2009년) 때보다도 낮다고 하니 지금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싶다. 생각해 보면 한때는 잦은 배달오토바이 소리에 하루에도 열두 번은 놀랐고 피크 타임 직후인 두세 시쯤 되면 서로의 가게에 자주 들르기도 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직전까지 마주한 난리통에 상기된 얼굴을 보면서는 내심 안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가뜩이나 조용한 이 골목이 더 조용해졌다(대로변이 아닌 안쪽 골목이라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원체 조용한 골목이다). 어느 집은 아예 가게를 내놨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고, '임대' 글자가 붙은 유리창 너머 텅 빈 공간이 많아졌다.
물론 그 와중에 더 바빠진 곳도 있을 테지만 대부분 비슷한 상황일 거다. 이런 상황에서 치치의 안부를 물으러 우리 집까지 찾는 근처 사장님과 손님들을 보면 이 불황에도 다정함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이 와닿는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골목의 다정함이 절정에 달할 때가 있다. 함박눈이 오는 날이다. 그런 날은 이 좁은 골목이 사람으로 미어터진다. 폭설 시 모든 1층 거주자는 해당 건물 앞 눈을 치워야 하는 의무가 있다. 제일 먼저 골목에 도착하는 내가 아무리 눈을 치워도 눈이 계속 내리면 또 어마하게 쌓인다. 새벽엔 촌각을 다투는 지라 밖에 나가 제때 눈을 치우지 못해서, 편치 않은 마음으로 나가면 우리 집 앞 눈이 치워져 있다. 그제야 합류하려고 삽을 찾으러 가면 그새 무섭게 우리 가게 앞부터 먼저 치워주신다. 그런 날은 그야말로 건물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 좁은 골목의 눈을 치우는데, 딱히 서로의 경계가 없어 보인다. 감사한 마음에 연장이라도 잘 채워놔야겠다 싶어서 염화칼슘과 빗자루, 눈 쓸어 담는 기구는 나름 최신형(?)으로 갖춰놓고 있다. 다정한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지만 충분히 다정하다.
특히, 서점 사장님과는 가게를 시작할 때부터 잘 지내왔다. 종종 퇴근 도장을 찍으러 가, 사사로운 이야기를 나누어야 비로소 진짜 마감을 한 느낌이 든다. 여름엔 가게 앞 데크에 앉아 더운 바람을 맞으며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고 겨울엔 덜덜 떨면서 잠깐이나마 온기를 나눈다. 바로 옆 초밥 사장님도 빼놓을 수 없는 정다운 이웃이다. 서점사장님과 나는 그분을 '샘말로 파수꾼'이라고 칭한다. 같은 건물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무척 덥거나 추울 때 생길 수 있는 상황을 꼼꼼히 대비하는 분이라 덩달이 든든하다. 맞은편 파키스탄 음식점의 주방장님과 마주치면 한껏 웃으며 인사를 나눈다. 처음엔 지나치게(?) 명랑한 나를 보면서 꽤 낯설어하는 듯했지만 이내 적응한 듯 보였다. 종종 한국어로 통화해야 할 때 나를 찾아오곤 하신다.
살갑진 않아도 그냥 옆집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될 때가 있다. 회사로 치면 동료와 같은 거다. 나의 경우는 직원도 없고(물론 엄마가 계시긴 하지만) 혼자 일을 하다 보니 가끔 동료가 절실할 때 골목을 배회한다. 따분할 것 같아도 요새는 보기 드문 '인류애'를 충전할 수 있는 골목이기도 한다. 매일 같은 안부를 물어도 지루하지 않다. 서로의 가게를 나설 때 '많이 파시라'는 쩌렁한 울림엔 다정함이 뚝뚝 묻어난다. 이렇게 또 하루하루 쌓다 보면 다시 골목은 까르르 웃음만이 맴돌 거다. 그렇게 믿는 편이 낫다.
치치를 만난 이후로 나는 가게에 참치캔을 사다 놨다. 이런저런 골목의 사정상 아예 사료나 참치캔을 두기는 어렵지만, 앞으로 치치와 같은 처지의 녀석을 만나면 급한 불을 끌 수는 있을 테다.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