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을 열면,
딱 5년만, 진짜 죽었다 깨도 딱 5년만 버티자고 했었다. 아직 반년이 더 남았지만 저 멀리 보이던 모퉁이에 겨우 닿아 도는 느낌이다. 지난 5년간 나는 이 골목의 새벽을 열어왔다. 뻑뻑한 주차장 셔터를 올리는 물리적이고 구체적 행위는 힘이 세다. 단 1분이라도 알람을 어겨버리고 싶은 순간, 나는 절로 내려가는 셔터를 상상한다. 1분만 늦어도 하루 전체가 늦어질 거라는 기우. 그렇게 달을 보고 출근했고 해를 보고 퇴근했다.
불안했다. 일주일에 네 번. 새벽 적막을 깨고 텅 빈 도로를 달리면서 나는 늘 불안함에 달아올랐다. 오늘은 빵이 언제쯤 다 팔릴지, 지금 가면 몇 시가 돼야 집에 갈 수 있을지, 발효 중인 반죽엔 문제가 없을지, 손님에게 실수를 하지 않을지 등. 십 분 남짓한 그 사이, 하여간 오만가지 세상사를 차에 싣고 달렸다. 비가 와도 싫었고 눈이 와도 싫었다. 흐리고 뿌연 날, 무거운 공기가 감도는 날도 싫었다. 왜 하필 도로는 회색인가. 하여간 우울하고 어정쩡한 것은 다 싫었다. 밝고 또렷해야만 했다. 그것만이 그득그득 들어차야 했다.
이 좁은 골목에서 새벽에 마주치는 이들과 구면인지 오래지만 살갑지는 않다. 나도 그렇고 모두 일 분 일 초가 아까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그 이른 새벽에 나왔으랴. 남들이 눈을 뜨기 전에 모든 걸 마쳐야 하는 상황인 거다. 이런저런 물건의 배송도, 쓰레기를 거두는 것도, 요구르트를 나르는 것도, 빵을 굽는 것도 말이다. 그래도 이따금 나는 그들에게 시원하고 따뜻한 음료를 건넸다. 잠깐이지만 가로등 불빛 아래 수줍은 웃음이 오간다.
그러다 뒤돌아 서 가게 문을 열면 이런저런 궁금증이 머릿속을 맴돈다. 이들도 나처럼 새벽이 버겁고 힘들까. 불안할까. 그 커다란 트럭은 대체 어떻게 이 좁은 골목을 요리조리 잘도 가는 걸까. (나도 나지만)그들은 대체 몇 시에 자고 몇 시에 일어났을까. 한 번에 일어나게 하는 효과적인 알람을 쓸까 혹은 비법이 있을까… 그 짧은 새 별안간 별 생각이 든다.
제빵사인 나를 포함해 환경공무원, 새벽 배송기사 등 여하간 새벽에 출근하거나 퇴근하는 이들을 ‘새벽반’이라 칭했다. 가끔 웃긴 상상도 해본다. 이 골목 한가운데에서 우리 새벽반의 수고에 대해 소리치고 방방 뛰어다니는 우스꽝스지만 절절한. 해가 뜨기 전까지는 드러나지 않는 아무도 모르는 일에 대하여 말이다.
하지만 망상은 여기까지. 오늘도 갈길이 멀다. 커튼을 제치고 작업실에 들어가 장장 여덟 시간의 여정을 시작한다.
그래도 옛날에 비해 지금은 제법 자리를 잡아 단골손님도 늘고, (감사하게도)빵이 남아돌 걱정은 하지 않는다.그럼에도 불안함은 여전하다. 많이 변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불안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은 무탈히 빵이 다 팔리는 것 밖엔 없고, 그래서인지 역설적이게 나는 불안을 갈망한다. 다시 말해, 하루를 말끔히 집어삼키려면 불안해야만 한다. 지금도 달을 보며 출근하지만 여유가 생긴 지금은 종종 해를 등지고 달리기도 한다. 좀 더 빨리 걷기로 한 것이 이렇게 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의 새벽은 길고 밤은 짧다. 저녁 여덟 시엔 누워야 마음이 편했다. 심지어 한여름이면 밖이 아주 밝을 시간이다. 누군가는 도란도란 저녁을 즐기고 있을 때 나는 눈을 감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조금의 빛도 들지 않게 이불속을 파고들었다. 눈은 감고 있지만 지친 몸때문인지 잠은 쉬이 들지 않았다. 하긴 삼십 년을 넘게 또랑또랑하게 보낸 시간인데 그럴만도 하다. 그럴수록 이불속에선 그날의 환희와 감동, 불평과 불만, 반성이 난무했다. 그리고 내일의 불안까지 여전했다.
다시 새벽이다. 알람 두어 번이 울리면 반드시 일어나야만 한다. 다시 주차장 셔터를 올리고 종종걸음으로 가로등불 밑을 지난다. 가게 문을 열고, 커튼을 제쳐 그렇게 또 여덟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때가 되면 얇은 커튼 한 장을 박차고 나가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여덟 시간의 지난함은 이 얇은 커튼 한 장이 말끔히 가려준다. 모든 종류의 질척임과 찌질함, 빈곤한 용기, 실수, 실망과 고민, 그리고 불안 마저. 여하간 커튼을 제치면 없던 일이 된다. 멋지지 않을 내 뒷모습에도 개의치 않았다. 내 양손 끝에 놓인 빵의 시선을 따르는 이들, 내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는 이들. 이들은 어쩌다 나의 빵집을 찾게 됐을까. 두 눈을 보고 밤을 새워 묻고 싶은 것 투성이다.
괜찮다면, 내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