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첫 사장

빵과의 첫사랑에 빠져.. 이제.. 첫 사장까지 해버린..

by 오가닉씨

점심시간이었다. 서늘한 그의 얼굴에 허어연 빛이 비쳤다. 어쩜 그리 표정이 없었는지 모니터 빛이 그의 얼굴을 반쯤 가려버렸다.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대체되는 인력'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내가 없어도 누군가가 자리를 채워 내가 하던 일을 똑같이 해내고, 나도 누군가의 자리를 채워 그 일을 해내는 쳇바퀴에 대하여 말이다. 단 한 번도 그런 삶의 방식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모두가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그게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 선배의 얼굴에 드리운 모니터 빛의 그늘로부터 도망치기로 했다. 멀리, 가능한 한 저 멀리.


7년을 몸 담은 회사로부터 과연 탈출이었을까, 독립이었을까? 탈출과 독립. 다른 것 같아도 당시 내 상황에서는 한 끗 차이였다. 여하간 탈출인지 독립인지 모를 그 행보엔 '첫 사장'이 동행했다. 호기롭게 빵집을 연 것이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내 인생에 자영업이란 아예 없는 단어일 줄 알았다. 넉넉하진 않아도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과 잘릴 걱정 없는 자리에 그럭저럭 만족하고 살았다. 그저 워라밸이 좋으면 장땡이었다. A부터 Z까지 모든 걸 기획하고 책임지는 롤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다. 오히려 중간 관리자가 되는 게 두려웠을 정도였다. 이런 내가, 내가…. 인생 첫 사장이 되었다.


물론 빵에 대한 열정이 갑작스러웠던 건 아니다. 잠깐의 외국 생활과 여러 차례 여행으로부터 접한 식사빵에 대한 호기심이 발단이었다. 후식으로 채우는 디저트가 아닌 '식사로서의 빵'을 경험한 건 이색적이었다. 바게트가 처음 인기 끌기 시작했던 때를 기억하는가. 파리바게트에서 판매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바게트를 사면 꼭 생크림을 같이 사야만 했다. 그때만 해도 그랬다. 밋밋하고 딱딱한 빵은 부드럽고 달콤한 생크림이라도 발라 간식으로 둔갑시키는 것이 당시 정서였다.

그러다 얼굴보다 커다랗고 ㅡ과장 좀 보태ㅡ배낭보다 무거웠던 빵을 마주했을 때의 충격이란. 주머니 사정이 얄팍했을 때는 이 빵 한 덩어리로 못해도 네 끼는 해결할 수 있었다. 잼과 버터를 발라먹으면 그 자체로 충분했고, 햄과 치즈를 넣으면 샌드위치가 되었다. 애매하게 남은 딱딱한 몇 조각은 올리브유나 버터 휘휘 두른 팬에 구워 와그작와그작 과자처럼 먹었다. 이뿐이랴, 수프에도 적시고 그릴에도 눌러서.. 하여간 아낌없이 주는 빵이었다.

취업 이후의 여행에서야, 빵도 멋진 요리의 핵심 재료라는 걸 알게 됐다.


지금이야 유튜브나 구글을 통해 전 세계의 다양한 레시피를 찾을 수 있지만, 십 년 전만 해도 이러지 않았다. 이탈리아 할아버지가 치아바타를 굽는 영상은 당최 몇 번이나 돌려봤는지 모르겠다. 덕분에 우리 집 주방은 종종 밀가루 폭탄을 맞았고, 나는 이대로 이탈리아어를 깨우치나 싶었다(그때는 번역 기능도 꽝이었다). 그저 그의 손짓에 의지해 감각을 익혔다. 영상에서는 분명 쉽게 하는데, 역시나 한계가 있었고 나의 결과물은 꽝이었다. 한없이 늘어지는 반죽을 단 몇 번만의 손길로 단단하고 탱탱하게 그 힘, 그 기술, 그게 그렇게 신기했다. 가능하다면 그 기술을 터득하고 싶었다. 그때쯤 아카데미에 등록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고백하겠다. 한때 나 자신은 물론이고, 체계만을 따르는 이 사회 구성원 모두를 싸잡아 우습게 본 적이 있다. '비효율적인 에너지 소모'에 관한 논문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생각을 했고, 사람을 관찰했다. 그러니까 회사에서 망상을 참 많이 했다. 그 정밀 관찰 대상 중 하나는 나였다. 나도 스스로를 잘 알고 있었다. 비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인간을 순서대로 세운다면 분명 내가 맨 앞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서도 일 등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조직이 나를 잘 써먹지 못한다고도 생각했다. 대체 조직은 왜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못하게 하는가. 말보다 발이 빨라야 하는 일에도 말이, 문서가 먼저인 것들 투성인 상황이 갑갑했다. 핑계라고 해도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나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내가 제일 우스운 인간이었다. 반성한다.


내가 제일 우스운 인간임이 확실해진 건 사장이 되고 나서부터였다. 기획부, 행정부, 집행부 등. 이 세 부서 수장 모두 나였다. 정말 나 하나였다. 그렇게 원하던 대로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이 된 것이다. 그렇게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체계'가 갑자기 간절해졌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손을 대면 대는 족족 힘없이 무너지는 젠가탑 같았다. 이뿐이랴. 갑자기 아프면 그야말로 큰일이 난다. 전날 반죽을 하고 발효하기 때문에 다음날 출근하지 못하면 다 내다 버려야 한다. 썰기도 해야 하고 포장도 해야 한다. 시즌마다 아이디어를 내야 하고, 그렇게 새 메뉴가 나오면 이름을 짓고 포인트를 찾아 설명해야 한다. 인스타그램을 운영하고 예약도 받는다. 갖가지 연유로 돈을 넣고 빼면서 매달 적정한 규모를 유지해야만 한다. 내가 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 지금도 잔뜩 쌓여있다. 이 모든 게 체계가 잘 잡히지 않아서인 것 같다. 잘못된 선택을 한 걸까?


긴가민가 할 때마다 떠올리는 장면이 있다. 커다란 오븐이 이리저리 꺾여 지금의 자리에 놓이던 그 순간을 말이다. 덩치 좋은 아저씨 세 분 조차 들 수 없어 겨우 수레에 들려온 오븐과 믹서, 발효기 그리고 여러 가지 집기가 작업실에 채워지던 때에 빼도 박도 못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아찔했다. 이제 무를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된 거다. 각 부서의 수장인 나와 너와 내가 지칠 때 이 아찔함을 되새긴다. 진짜 막막한 상황은 이때였다고, 그래도 지금은 나름의 체계를 잡고 꽤 나아지지 않았냐고 하는 자문에 붕 뜬 마음이 좀 가라앉는다.


결국 대체될 수 없는 인간에의 대한 욕망과 욕심의 끝은 첫 사장이었다. 나는 내가 그렇게 열심히 하는 인간인 줄 몰랐다. 빵집을 열고 한 1년 동안은 꿈에서조차 빵을 구웠을 정도니까. 내가 은근히 부지런한 면이 있다는 것도 빵집 주인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매사에 설렁설렁, 대충, 잘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하여간 좀 잘못됐다 싶어도 그냥 인생의 '삑사리'정도로 생각했던 인간이라 첫 사장의 행보는 여러모로 놀라웠다. 하지만 지금 작업장에서의 나는 온 감각이 삐죽삐죽 솟은 멍게가 따로 없다.

첫 사장의 혹독한 대가는 아직 치르는 중이다. 그래도 '나 아니면 세상에 없을 빵'이라는 생각에(아무리 같은 레시피여도 사람손을 정말 많이 타는 게 빵이다) 어깨와 광대가 솟는다. 어디 가지 말고 건강하게, 오래도록 이 자리에서 빵을 구워달라는 손님들의 진심은 첫 사장이라는 선택이 백 퍼센트 옳았음을 공고히 한다.


내 첫 사장은 첫사랑보다 더 강렬했다. 앞으로 '대체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나의 욕심이 얼마나 더 큰 시련을 가지고 올 지 잘 모르겠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언젠가 이 짐을 맘 편히 내려놓을 날이 오면 좋겠다. 나의 모토이자 손님이 원하는 '가늘고 길게'의 결을 따르는 지속가능한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은 아니어도 훗날을 위해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keyword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