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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아 Jan 21. 2021

일본에서 인도인에게 한국어로 점보기

일본 고베에서의 일이다. 당시 나는 만나기로 한 친구보다 하루 일찍 도착하여 하릴없이 도시를 쏘다니고 있었다. 고베는 삼청동이나 부암동같이 예스러운 분위기가 멋있었다. 키타노 이진칸의 유럽풍 건물들이 있는 마을로 올라가는 골목들엔 예쁜 카페나 가게들이 많았다. 독특한 디자인의 옷, 잡화, 소품들은 길가는 이의 발길을 붙잡았고, 고불고불한 골목길들은 호기심을 자아냈다.



그러다 예술가들의 거리라는 한 골목에 닿았다. 문득 한 갤러리 앞에서 발이 멎었다. 입구 앞에 높인 입간판이 생뚱맞아 보였던 것이다. 한 눈에도 일본인은 아니어 보이는 한 사내의 사진과 함께 대표작인 듯한 그림. 힌두 사원에서 봄직한 코끼리 얼굴에 팔이 여러 개 달리고, 장신구가 주렁주렁 달린 여성의 모습. 호기심에 열 평 남짓한 작은 갤러리에 발을 두세 걸음 들여놓았는데, 갑자기 사진 속 그 사내가 툭 튀어나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어눌했지만 분명한 한국어였다.

“에? 안녕하세요.”


반사적으로 인사를 하긴 했지만, 내가 한국인인지 어찌 알고 다짜고짜? 게다 상대를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는 한중일 출신도 아니지 않은가. 그는 인도인이라 했다. 오래전에 일본인 여성과 결혼을 했고, 한국에도 자주 간다고, 한국 친구들도 많다면서. 내가 한국인임을 맞춘 것이 스스로 흐뭇하고 뿌듯했는지, 그는 신이 나서 몇 마디 한국어를 섞어가며 자신과 자신의 그림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부적’을 보여주겠다며 갤러리 안쪽으로 안내했다.


‘부적? 내가 아는 그 부적? 아니면 어떤 영어 단언가?’ 갸우뚱하며 머뭇거렸다. 결국 관계자처럼 보이는 일본 여성들이 차를 마시고 있는 안쪽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가 말한 부적은 정말 한국어 ‘부적’이었다. 다만 흰 종이에 빨간 글자가 적힌 부적이 아닌, 부적과 같이 불운을 막고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 그림이라고 했다. 그림은 별자리와 생년월일 그리고 이름을 가지고 그린다고.


‘영업하나?’하는 생각에 대충 보고 나가야지 하는 마음을 읽었는지, 그는 재빨리 free임을 강조했다.

“사라고 보여주는 게 아녜요. 벌써 주문이 1~2년씩 밀려서 더는 못 받아요. 여기 앉은 숙녀들도 다 내 팬.”

그러면서 자기 프로필이 담긴 엽서를 보이고 한국에도 전시를 한 적이 있노라고(=이상한 사람 아니라고) 소개했다. 이어 내 운을 ‘공짜로’ 봐주겠다며 이름과 생년월일을 물었다. 여전히 미심쩍었으나 뭐 믿져야 본전이지 하고 답을 했다.


음……, 하는 그가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후 그의 풀이에 따르면 나는 다음 해(2019년)까지는 일이 잘 풀리지 않다가 2020년부터 승승장구할 것이며, 행운의 숫자는 10, 행운의 요일은 토요일, 그리고 행운의 색은 스카이 블루였다. 그러면서 맑은 하늘을 보거나 바다를 보면 상태가 좋다고.



그는 또 차를 권했는데, 나는 곧 영업이나 불편한 대화로 이어질까 봐 초초해졌다. 약속이 있다며 재빨리 자리를 떴다. 실제로 친구를 만날 시간이 다가오기도 했고. 두어 시간 뒤에 친구와 만난 나는 웃기는 경험을 했노라며 깔깔대며 이야기를 풀어냈다.

일본에서 한국어로 인사하는 인도인이 점을 봐준 일이라니!

지금은 힘들지만 1~2년 내에 일이 풀릴 거라니 너무 빤한 고진감래식 점괘가 아니냐며, 하늘과 바다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며 흉을 봤다.


한참 웃던 우리는 아저씨의 대응이 같은 지 시험해 보기로 했다. 우연인 양 친구만 갤러리로 보내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기로 한 것. 아니나 다를까, 인도인은 역시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그러면서 방금 다른 한국인을 만났다는 얘기까지 늘어놓았다. 자신의 신상을 소개했으며, 점을 봐주겠다고 청했다. 같은 패턴. 그러나 친구에겐 내후년에 풀릴 거라는 말은 없었고, 행운의 요일은 목요일이랬는데 친구는 목요일이 제일 바쁜데 하며 투덜댔다. 행운의 색은 갈색이라 풀이했다. 친구는 갈색 옷이 많은 편이고, 나는 거의 없는 편이었는데(하늘색은 제법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친구와 내가 선호하는 색은 잘 맞춘 셈이었다.  화가라 그런가. 어찌 됐든 이후의 전개가 궁금했지만, 소심한 친구 역시 거기까지 듣고 불안해져 줄행랑을 쳤다.


그저 특별한 여행 에피소드였던 일이 자꾸 생각났던 것은 2019년의 일들이 너무나 엉키고 엉망이 되었기 때문 같다. 어차피 2019년은 지나고 2020년은 오겠지만, 근거 없는 믿음으로라도 희망을 바라고 싶어서. 믿진 않았지만 믿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가 승승장구할 거라던 2020년은 코로나가 잡아먹어 허무하게 가버렸다. 그래도 그런 뜬금없는 덕담이나 타로카드, 토정비결 혹은 점 등에 기대서라도 길할 날을 바라며 삶의 무게를 꾸벅꾸벅 져 내는 것이 인간의 심리는 아닐지. 돌아보면 또 '꽝'인 로또에도 즐거운 상상을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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