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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아 Aug 23. 2021

이 넓은 세상에서 하나의 직업만 경험하긴 너무 아쉬워

에필로그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다. 여행을 좋아한다는 이도, 그다지 흥미가 없다는 이도 있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사는 동네를 떠난 경험이 있다. 거기가 옆 동네든, 다른 도시나 시골이든, 산과 강, 바다 혹은 바다 밖의 다른 나라이든. 살면서 한 지역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너무 답답하지 않을까? 코로나19로 발이 묶여 타의로 욕망이 좌절된 이, 예컨대 나는, 세계에 차단됐다는 사실에 연인과 헤어져 차단당한 마냥 상처 받은 기분마저 들었다. 특정할 수도 없는 대상에게. 혹시 자의로 어느 장소를 거의 떠나지 않는 이도 있을 텐데, 조물주라면 그를 보며 이렇게 애가 탈 것 같았다.

“얘, 널 위해 이렇게 멋진 폭포도 만들고, 희한한 절벽도 세우고, 하늘에는 오로라를 펼치고, 땅에는 온천을 솟게 했는데, 왜 거기만 있는 거니?”


이런 여행자의 피, 역마살이 과하게 흐르는지, 나는 직업 영역에도 같은 마음이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직업이 있잖아. 하나만 선택하긴 너무 어려워. 하나만 경험하긴 너무 아쉽지! 물론 그 욕심으로 처음 일을 시작할 때부터 그만둘 날을 정해놓는다거나, 일부러 이직을 일삼지는 않았다. 변화란 언제나 두려운 법이라 나 역시도 웬만하면 마땅한 자리에 뿌리를 깊이깊이 내리고 그야말로 ‘안정’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어떤 시련이 다가왔을 때, 버티는 힘은 역시 부족했다. 일터에서 뿐 아니라 일상의 시간마저 괴롭게 만드는 상사랄지, 도무지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일을 만나면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어느새 ‘이제 어떡할까’를 고민했다. 기왕의 설계도를 고칠 생각보다는 항상 새로운 도화지를 꺼내 들었다. 결과적으로 직장뿐 아니라 직업마저도 이리저리 옮기고 말았다.


한 직장에서 10년, 20년 꾸준하게 일해온 사람을 보면, 본인들은 인정하려 하지 않지만, 오래 무언가를 버텨온 이의 내공이 느껴져 절로 숙연해지기도 한다. 스스로 갖지 못한 어떤 끈기랄지, 저력이 부럽다. 그러나 사람마다 개성도 다르고 욕망도 다르니, 제 몫의 살아가는 모양도 다를 수 있다. 


이 매거진에서 펼칠 이야기는 어쩌면 변명 같은 어쩌면 모험 같은 직업여행담이다. 어떤 일들을 해왔나. 그 여러 일들을 어떻게 시작하고 마쳤나? 각각의 자리에서 벌어진 흥미로운 일은 뭐가 있나? 순간순간 마음 졸이거나 머리 싸맨 적도 많았지만, 지나고 나니 이젠 눈빛을 반짝이며 나누기 적당한 ‘썰’이 되었다. 부디 이 이야기가 당신에게도 세헤라자드의 아라비안 나이트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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