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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아 Aug 31. 2021

'국어교육과'에서 시작한 직업 여행

직업 탐험의 얘기를 늘어놓으려면 아무래도 진로의 첫 갈림길이 되는 대학 진학부터 시작해야겠다. 첫걸음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였다. 이 선택은 일종의 타협이었다. 최상위는 아니어도 그럭저럭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던 나는 별다른 취미도, 특기도 없었지만 고3 때 야자시간에도 소설책만큼은 열정적으로 탐하던 문학소녀였다. 마음이 자연스레 ‘문학창작과’로 향했다. 대부분의 부모와 마찬가지로 ‘안정적인 직장’을 부르짖던 엄마는 교대에 가길 원했지만.


안정적 직업의 일등주자인 교사와 불안한 직업의 대표인 작가 사이는 너무 멀어 수능 성적표가 나올 때까지도 좁혀지지 않았다. 얄궂게도 수능 성적은 문창과에 가기엔 넘치고, 서울교대에 가기엔 모자랐다. 나로서는 넘치는 점수는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엄마 입장에선 억울한 듯했다. 끝내 내가 어린애들을 가르치기는 적성에 안 맞는다며 극구 거부한 데다, 엄마도 딸을 경인교대나 강원교대가 위치한 외지에 보내기가 망설여지기도 했던지라, 엄마는 서울 소재 대학 ‘사범대’로 방향을 틀었다. “네가 좋아하는 ‘국어’ 쪽이지 않냐, 특차 지원 한 군데만 ‘국어교육과’로 넣어라, 정시는 네 맘대로 해라”, 하는 설득에 마침내 넘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합격했다.


지금은 없어진 ‘특차’ 전형은 정시 전에 딱 한 학교만 넣을 수 있었고, 합격 후 등록을 포기하면 다른 대학 응시가 불가능했다. 재수는 싫었으므로 울며 겨자 먹기로 입학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주 절묘한 수였다. 이후 나의 밥벌이 역사는 계속 이러한 타협의 과정이었다. 불안하고 막막하지만 하고 싶은 일과 어느 정도 생활이 보장되는 일 사이. 이렇게 틈틈이 글을 쓰며 등단을 조용히 꿈꾸듯 여전히 문학소녀의 꿈은 버리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투신하듯 집필에만 몰두하지도 못했다. 꿈과 생활. 느리지만 두 마리 토끼를 잡기를 바랐다. 대학에서의 배움은 둘 모두에게 유익했다.


이후 일화에서도 나오겠지만, 학과 공부는 교사의 길 밖에서도 유용했다. 교육심리학, 교육사회학, 교육행정학 등 앞에 ‘교육’만 붙었을 뿐 각종 학문을 종합해놓은 교육학은 많은 영역의 배경지식을 쌓아주었다. 부모가 될 사람이라면 꼭 알았으면 하는 지식도 참 많았다. ‘국어’ 관련 배움은 더 쓸 만했다. 기술직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일에서 문서작성 능력은 필수다. 학생 때는 제일 만만하지만 사회에서 다들 자신 없어하는 ‘국어’를,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능력을 탐구한 것은 좋은 무기였다. 무엇보다 생각보다 ‘교원자격증’은 쓸모가 많았다.


‘붕어빵을 구워도 대졸자가 만든 건 다르다’란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단지 ‘맛’만을 말하는 건 아닐 게다. 재료를 선택하거나, 투자하고 계산하는 방식. 점포와 지역을 바라보는 방식. 사소한 무엇도 다를 수 있다. 요즘같이 대학이 취업학원이 돼버린 시대엔 맞지 않은 말일 수 있다. 그래도 대학이 추구해야 하는 바는, 또 대학생이 얻고자 하는 바는 취업 이상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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