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기 그라운드 핸들러의 삶은 예측하기 어렵다.
딜레이는 일상이라 비행이 있는 날이면 전날까지도 출퇴근 시간을 가늠하기가 힘들고
비행기가 무사히 도착했나 싶다가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이 터지곤 한다.
이 날은 오전 입항 편이 있는 날이었다.
미국에서 오는 비행 편이었기 때문에 한국 시간으로 전날 저녁 6시에 미국에서 출발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직전 공항에서 전세기가 뜨면 한국에 예상 도착 시간을 확인한다.
비행기는 일정대로 잘 도착할 예정이었다.
아침 5시, 아무도 없는 김포공항에 출근을 했다.
ETA(Estimated Time of Arrival)는 8시, 한국인 승객 1명, 미국인 3명이 있는 비행 편이었다.
별일이 없다면 항공기는 8시에 한국에 랜딩 하여 손님들은 바로 터미널을 빠져나가고
승무원들 또한 1시간 이내로 비행기를 점검하고 호텔로 향할 터였다.
항공기 랜딩 시간이 다가오자 법무부, 세관, 검역 등 공항 관계부처의 직원들이 한 명씩 도착했다.
이윽고 비행기가 무사히 내리고 손님들은 웃으며 터미널로 들어섰다.
나는 곧장 다가가 여권을 걷어 인적사항을 확인했다.
가방에서 작은 파우치를 꺼내 여권을 꺼내주는가 싶더니
계속 안을 뒤적거렸다.
"Oh My God. I got a wrong passport."
응? 내가 잘못 들었나? 여권을 잘못 가져왔다고?
미국인 세명은 가족이었는데 그중 한 명이 다른 가족의 여권을 들고 온 것이었다.
그럼 출발은 어떻게 했지??
미국은 전세기를 탈 때 사진만 보여줘도 탑승이 가능하단다. 그래서 아무런 제재 없이 출발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만약 여권을 가지러 다시 돌아간다면 적어도 10시간이 걸릴 터.. 법무부 직원은 실물 여권이 있어야만 입국이 가능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다들 처음 겪어 보는 상황이라 당황한 채 서로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럼 이곳에서 누군가가 미국에서 여권을 들고 와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아니면 대사관이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린 뒤 도움을 청해야 하나? 아 오늘 일찍 퇴근하긴 글렀다..
승객이 여권을 두고 온 일은 나도 처음 겪는 일이라 선배님에게 물어봤지만
그 역시 처음 겪는 일이란다. 그렇지.. 이게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지.
승객들은 여기저기 아는 사람들을 총 동원하여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한국인 승객이 있던 터라 이 모든 상황에 대해서 우리가 통역을 해주지 않아도 된다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렇게 각자 해결 방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법무부에서 해결책을 내놓았다.
임시 승인을 하고 72시간 내에 대사관에 가서 임시 여권을 발급받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면
입국을 시켜주겠다는 것이었다.
아마 해당 법무부 담당자도 처음 겪는 일이라 여기저기 방법을 알아본 듯했다..
뭐가 됐든 실물 여권이 도착할 때까지 승객을 차디찬 공항 터미널 어딘가에 있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그제야 나도 안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법무부에서 다른 직원이 나타나 컴퓨터 화면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클릭을 하더니 종이 한 장을 프린트해 줬다.
일단 이걸 들고 바로 대사관으로 가라고 했다. 임시여권은 금방 나올 것이니 발급을 받고 나면 곧장 김포공항 2층 민원실로 가서 입국 절차를 완료해야 한다고 했다.
승객들은 국내에서 일정이 빡빡한 듯 보였지만 입국을 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를 표하며 바로 대사관으로 향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2~3시간 정도 후에
승객은 임시 여권을 가지고 다시 김포 국제공항으로 돌아왔다.
조그마한 민원실에 앉아 입국 절차를 기다리는 동안 눈이 내렸다.
This is Korea's first snowfall! You are very lucky today!
잠시 조용히 가라앉은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준 첫눈이었다.
승객들은 마침내 환하게 웃으며 휴대폰을 꺼내 들어 사진을 찍었다.
차가웠던 공간에 작은 따뜻함이 번졌다.
오늘도 이렇게 평화로운 하루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