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집에 있었으면 좋겠어
그날도 바쁜 아침이었다. 8개월 된 둘째를 챙기면서 초2 아이의 아침도 챙겨야 하고 나도 챙겨야 하는 삼중고의 시간. 6시부터 일어나 복닥거려 보지만 아이는 아이대로 보채고 나는 나대로 준비가 늦어서 버둥거리는 시간이었다.
퇴근을 하고 나면 일단 에너지가 소진되기 때문에 저녁에는 아이 밥 먹이기, 숙제 챙기기, 두 아이 씻기기와 나 씻기 정도만 해놓고 아이들을 재우면서 잠이 든다. 빠르면 10시 30분, 늦으면 11시, 12시. 모든 일과가 끝나고 잠들었다가 아침이 되면 그나마 에너지가 충전되는데, 그 힘을 가지고 밀린 집안일을 시작한다. 빨래도 돌리고, 건조기에 넣어둔 빨래도 개고 마른 그릇을 챙겨 넣고 아이 아침거리를 준비한다. 그러다 보면 둘째가 깨는데 밤새 축축해진 엉덩이를 씻기고 아침을 먹이고 나면 첫째가 일어난다.
대충 차린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우주가 말했다.
“엄마, 회사 끊으면 안 돼?”
끊는다는 건, 자기가 다니는 학원처럼 ‘그만둔다’는 뜻이었다.
“왜? “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엄마가 있으면 좋겠어!”
“우주야, 그럼 네가 다니는 학원 중에 딱 한 곳만 다닐 수 있어. 그럴 수 있어? “
그러자 우주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엄마, 그러면 로또 1등 되면 제일 먼저 회사부터 끊어, 알겠지?”
띠용-!
어제 같이 목욕탕 다녀오는 길에 바로 옆집에 있는 복권집에 가서 로또 한 장을 샀더랬다. 그때도 이거 뭐 하는 거냐며, 1등 되면 좋은 거냐고 묻던 우주였다. 잠시 아이에게 로또를 알려줘도 되나.. 생각했었는데 우주는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것저것 묻다가 나더러 “엄마는 1등이 되면 뭘 가장 먼저 하고 싶어?”라고 하길래 속도 없이 “엄마는 넓은 집으로 이사도 하고, 차도 바꾸고 싶은데?”라고 답했다.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우리는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우주는 학교를 마치고 학원을 3곳 다닌다. 이것도 사연이 긴데, 1학년이 26명씩 7 반인 학교에서 1, 2학년 합쳐서 돌봄반은 딱 3반이고, 1학년때 여기 신청했지만 추첨에서 떨어졌다. 그래,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방과 후 수업도 정원이 제한되어 있어 신청은 했지만 모두 떨어지고 말았다. 그때는 내가 전생에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건가 했었다.
덕분에 나는 작년 학기 초에 1주일간 휴가를 내고 아이의 학원을 찾아다녔다. 방과 후 수업은 선생님들께 일일이 전화해서 결원이 생기면 제발 넣어달라고 부탁에 부탁을 한 덕분에 2과목 수업을 들을 수 있었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보낼 수 있는 미술학원과 피아노학원을 연속으로 붙였다. 학원이 끝나면 집에 오는데, 내 퇴근 전까지 30분 정도는 혼자 있는 시간이 생겨버렸다. 어린이집을 다닐 때는 6시 넘어서까지 돌봐줘서 그나마 이런 일은 피할 수 있었는데 초등학생이 되니 이것은 오롯이 부모의 몫으로 돌아왔다.
학교에 전화를 해서 사정도 해보았다. 당시 한참 동안 듣고 있던 돌봄 담당 선생님은 학교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는 말과 함께 “어머니, 그럼 ‘작은학교’로 전학을 시키는 것은 어떠세요?”라고 하셨다. ‘작은학교’는 근처에 시골 학교에서 돌봄도 방과 후도 잘 되어 있는 곳인데 그곳으로 보내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내 사정이 딱하니 생각해서 해주신 말씀이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아침부터 스쿨버스 태워서 보내고 끝나고 또 타고 오고, 거기서 또 새로운 친구를 사귀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교육청에도 전화를 했다. 이 정도면 진상학부모겠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교육청에서는 ‘돌봄은 어쩔 수가 없고, 방과 후 수업은 선생님께 일일이 전화를 하셔서 사정을 해보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답을 얻었다. 네, 아이고~ 감사합니다ㅠㅠ
이 긴 과정을 거치며 우주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교육시장으로 내던져졌고, 2학년이 되어서는 ‘방과 후 수업’ 대신 영어를 추가하게 된 것이다. 2학년때도 돌봄 교실은 신청했지만 떨어졌다. 정말 다행인 것은 우주가 지금 다니는 모든 학원을 재미있어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걸 아직까지는 너무 즐거워한다는 사실이다. 하늘은 나에게 좋은 시스템을 주지는 않았지만 좋은 아이를 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우주와 나는 그렇게 학원에 적응을 해버렸지만 거기에 들어가는 교육비는 순전히 우리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냉정하게 말하면 둘째 아이 돌봄 비용에, 아이학원비까지 따지면 나는 그냥 집에서 쉬는 것이 이득이다. 기름값도 아끼고 불필요한 사회생활까지 할 필요가 없어지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직장을 그만두면 우리가 하고 있는 일 들 중에 많은 부분은 그만두거나 줄여야 하기에 솔직하게 사실을 말해 주었을 뿐인데 이게 약인지, 독인지도 모르게 돌아와 버렸다.
다행히 그날 산 복권은 생애 처음으로 5,000원에 당첨이 되었다.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나도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로또라 굉장한 의미가 있다.
우주는 모르겠지만 로또가 된다면 아니 되지 않더라도, 내가 제일 하고 싶은 일은 ‘회사를 끊는 일’이다. 어찌 보면 우주의 사교육과 둘째 돌봄 비용이 바쁜 아침을 이겨내고 나를 직장으로 내모는 힘이기도 하다. 매일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내릴까 말까를 고민하다가도 ‘그래, 오늘만 벌고 가자’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는 것을 아이는 모를 것이고, 앞으로도 몰랐으면 좋겠다.
우주는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가 반갑게 맞아주길 바란다. 학원차가 타기 싫을 때 언제든 전화를 하면 엄마가 데리러 오고, 같이 분식점도 하고 장난도 치며 집까지는 걸어서 오고 싶은 날도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든다. 아이가 엄마가 있는 집을 그리워하는 날이 얼마나 될까. 그 시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남았을까. 8살, 9살인데 혼자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간식까지 챙겨 먹는 걸 생각하면 참 대견하다 싶다가도 짠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수없이 생각이 많아진다.
5시. 학원이 끝나는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우주가 전화를 걸어온다.
“엄마, 회사 아저씨한테 말하고 일찍 오면 안 돼?”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엄마가 엘리베이터 앞에 나와주면 좋겠어. “
“응, 오늘은 안 될 것 같아. 대신에 엄마가 빨리 갈게, 조금만 기다려.”
집에 가면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와다다다 달려 나와 나를 꽉 안는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긴지 한참을 신발장 앞에 서 있어야 한다. 이토록 따스한 아이를 안으면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지는 않지만...... 좋고, 미안하고, 뭉클해진다. 대단한 모성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눈앞에 없으면 항상 내 마음은 아이의 뒤에 있다. 학교를 보내놓고도, 집에 아이를 두고 나와도 지금은 뭘 하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시간을 잘 보내고 있는지 항상 궁금하고 온 신경은 그쪽에 가 있다. 그래서 가끔 문자로 사진을 보내주거나 친구와 분식점에 간다고 미리 전화를 해줄 때 그렇게 안심이 되고 마음이 좋을 수가 없다.
아이가 성장한다고 달라질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스무 살, 서른 살 그 이상이 된다고 해도 내 마음은 그 언저리를 왔다 갔다 하면서, 아이가 나를 찾아주길 기다리며 서성일 것 같다. 매일매일 무탈한 하루를 보내고 와서 “응! 엄마 오늘도 재밌었어!”라고 신나게 답해주길 바라면서. 그런 엄마는 이번주도 간절한 마음으로 로또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