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 개의 언어를 한다.
한국어, 일본어, 영어
이 세 가지 언어는 내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내 머릿속을 맴돌며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넘나든다.
Trilingual
즉, 세 개 언어를 할 수 있는 사람. 쉽게 말해, 모국어 포함해서 두 개 이상의 언어를 추가로 잘 말하고, 읽고, 쓸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한국어, 영어, 일본어 이렇게 세 가지 언어를 할 수 있으면 trilingual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Trilingual들은 꿈 속에서도 이 세 가지 언어를 모두 사용할까? 가끔 동료들에게 농담처럼 묻곤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끔씩 떠오르는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대화가 어느 순간 한국어에서 영어로, 다시 일본어로 바뀌었던 것 같은 순간들이 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도 나는 꿈 속에서 그 언어의 전환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세 개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꿈에서도 그 세 언어를 모두 사용할까?
그 물음은 언뜻 단순한 호기심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꿈이라는 미지의 영역과 언어라는 인간 사고의 기반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 꿈이라는 것은 의식과 무의식이 교차하는 경계에서 발생하는 신비로운 현상이다. 그렇다면,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세 개의 언어는 꿈 속에서 과연 어떻게 모습을 드러낼까?
여기 흥미로운 언어학적 사실이 있다. 연구에 따르면, 다국어 구사자는 각 언어를 사용할 때 서로 다른 신경망을 활성화시킨다. 뇌는 각 언어를 구분하여 처리하지만, 꿈 속에서는 그 경계가 흐려질 수 있다. 무의식은 통제된 의식보다 더 자유롭게 작동하며, 언어 간의 경계도 모호해지기 마련이다. 그 결과 꿈 속에서 두 번째, 세 번째 언어가 처음에는 마치 모국어처럼 스며들다가도, 이국적인 감각이 물씬 풍기는 순간이 찾아온다.
내가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첫 번째 세계는 당연히 한국어다. 한국어는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익혀온 언어이며, 그 안에는 나의 정체성과 뿌리가 녹아있다. 평범하게 나누는 대화, 친구들과의 소소한 농담, 일상 속에서 주고받는 말들 모두 한국어로 이루어진다. 한국어로 소통할 때 나는 아무런 제약 없이 내 생각과 감정을 가장 진솔하게 표현할 수 있다.
한국어는 나에게 집과 같은 언어다. 이 언어를 사용할 때 나는 가장 나다운 모습이 된다. 복잡한 표현 없이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동표들과의 대화에서, 한국어는 그 자체로 따뜻함을 준다. 특히 미묘한 뉘앙스나 어투, 감정이 깃든 단어들은 한국어로 표현할 때 비로소 가장 자연스럽고 생생하게 전달된다. 한국어는 나의 모든 감정의 뿌리를 형성하는 언어이자, 내 사고의 기본 틀을 제공하는 언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나는 한국어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두 번째 세계인 영어는 내가 학습하고, 연구하며, 또 국제적으로 소통할 때 필요한 언어다. 영어는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언어이며, 나에게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해외에서의 업무 미팅이나 이메일 작성, 외국인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영어는 자연스럽게 내 입에서 흘러나온다. 비록 한국어만큼 편안하지는 않지만, 영어는 내가 국제적인 연결을 만들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가는 도구로서 그 가치를 발휘한다.
영어를 사용할 때 나는 마치 세계의 중심에 선 느낌을 받는다. 영어는 나에게 전혀 다른 차원의 감각을 열어준다. 다양한 문화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할 때, 그들과의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것이 바로 이 언어다. 언어학적으로 보면, 다국어 사용자들은 언어마다 다른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고 한다. 영어를 사용할 때 나는 그 문화적 특성과 논리적 구조를 받아들여,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 속에서 나는 세계를 좀 더 넓게, 또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
일본어는 나에게 예술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언어다. 그리고 현재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다. 섬세하고도 깊이 있는 표현,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문화적 배경은 내가 현실 속에서 일본어를 사용할 때마다 그 아름다움을 새삼 깨닫게 만든다.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나는 단순히 언어만 익힌 것이 아니라, 그 언어가 담고 있는 일본의 역사와 철학, 그리고 문화 전반에 대해 더 많은 이해를 얻게 되었다.
일본어로 소통할 때, 그 언어는 나에게 한층 더 정교한 사고를 요구한다. 정중하고도 섬세한 표현들은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도 나를 더 집중하게 만들며, 그만큼 언어의 깊이를 깨닫게 한다. 예를 들어, 일본어의 존경어나 겸양어는 그 자체로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중시하는 일본 문화의 핵심을 보여준다. 이 언어를 사용하면서 나는 단순히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통해 사람들과의 관계를 보다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형성해 나가고 있다.
내가 세 개의 언어를 사용할 때, 그 언어들은 현실 속에서 자주 자연스럽게 섞이기도 한다. 하루 중에는 한국어로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다가도, 바로 영어로 업무 메일을 작성하고, 일본어로는 미팅을 하거나 일본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이렇게 언어들이 뒤섞이는 순간, 나는 각 언어의 경계를 넘나들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가끔은 영어로 생각하다가도 그 생각을 한국어로 정리하기도 하고, 일본어로 떠오른 표현을 영어로 번역해야 할 때도 있다. 이 세 가지 언어는 마치 퍼즐 조각처럼 서로 맞물리며 나의 일상을 구성한다. 언어는 단순히 말하는 수단이 아니라, 나의 삶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그 자체다. 각 언어가 주는 문화적 배경과 사고방식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을 다양하게 만들어주고, 그 덕분에 나는 매일 조금씩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세 개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단순한 기술적 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세 개의 서로 다른 세계를 이해하고, 그 세계 속에서 나를 확장시켜 나가는 과정이다. 한국어는 나에게 가장 깊은 뿌리를 제공해주고, 영어는 나에게 세계적인 시각을 열어주며, 일본어는 나의 사고와 표현을 정교하게 다듬어준다. 이 세 가지 언어는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들이 합쳐질 때 나의 삶은 더욱 다채롭고 풍요로워진다. 이 언어들을 통해 각각의 문화와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나 자신도 더 넓은 시각을 얻게 되었다. 세 개의 언어는 나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해주고,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세 개의 언어로 살아가는 것은, 곧 세 개의 세계를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세계들 속에서 매일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가능성 속에서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 덕분에 남들보다 세 배 더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