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뭘 할 수 있을까요?

by 한수

우리 집과 텃밭 그리고 텃밭 건너 앞집은 일곱 살이 되기 전까지 내가 아는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유치원을 다니면서 학교라는 세상이 생겼습니다. 초등학생, 중고등학생을 거치면서 또 조금 넓어졌지요. 하지만 그뿐이었습니다. 이동 거리가 조금 길어진 것이 다였어요. 나의 세상은 여전히 좁았습니다. 언제나 끝이 보였으니까요.


물리적인 공간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마음가짐, 수용력, 상상력, 생각의 범위와 깊이 등 모든 것에 대한 거예요. 내가 경험하지 못했거나 경험하기를 거부했던 것은 나의 세상을 좁게 만들었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세상의 크기를 물었다면 보이지 않는 어딘가를 가리켰겠지만, 여전히 나는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응원합니다. 세상으로 나가세요. 세상을 경험하세요. ‘높이’ 또 ‘멀리’ 나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경험을 가진 것과 아닌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사물이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 어떠한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몇 년 전, 초등학생인 한 친구와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대화의 주제는 직업으로 옮겨졌고, 대화에 심취한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할 수 있는 일이야. 다 사람이 만든 거잖아.” 마음이 동할 계기 하나를 마련해 주고 싶은 마음에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습니다. 물론 대화는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마음이 콩닥거린 건 나 자신이었습니다. 내가 했던 말을 곱씹었지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책 한 권이 있습니다.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누군가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글을 썼고, 다시 읽고, 고쳤어요. 글이 다 완성되면 이제 책의 모양을 생각해야 합니다. 책의 크기는 어떻게 할지, 글을 어떻게 배치할지, 글씨는 어떤 크기로 할지 등을요. 그림을 넣을 수도 있겠네요. 그러면 누군가 그림을 그렸겠죠. 이제 인쇄를 해야 합니다. 어떤 종이에 인쇄할지 정하고, 종이를 주문합니다. 인쇄소에서는 글과 그림을 종이에 찍어냅니다. 표지에 코팅을 합니다. 울퉁불퉁한 무늬를 넣기도 해요. 그다음에는 제본입니다. 본문과 표지를 모아서 하나의 책으로 만드는 거죠. 이제 책이 완성됐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완성된 책을 서점에 보냅니다. 서점에서는 책을 받아 좋은 자리에 배치합니다. “여기 이런 책이 나왔어요” 알리기도 합니다. 출판사에서도 책을 홍보하지요. 글을 써서, 사진을 찍어서, 때론 영상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알려요. SNS에 올리기도 하고, 잡지에 광고도 내고, 광고를 전문으로 하는 누군가와 계약을 맺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도록요. 주문이 들어오면 책을 포장해서 배송합니다. 책이 안 상하도록 조심스럽게요.


각 과정에는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작가, 편집자,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인쇄 기술자, 제본 기술자, 서점 직원, 마케팅 담당자, 배송 기사가 있어야 해요.


대충만 봐도 참 많은 과정을 거치지요? 그렇다면 게임은 어떨까요? 영화는요?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은 수많은 과정 즉 사람을 거쳐 탄생합니다.


놀라운 일이지만, 사실 이 정도는 누구나 유추할 수 있습니다. 집이, 과자가, 자동차가, 스마트폰이 ‘뚝딱’하고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종종 생각을 멈춥니다. 이면을 보려 하지 않아요.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것을 ‘세상을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껏 가져왔던 나의 생각이나 행동이 틀렸을 가능성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즉, ‘나의 무지’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것, 더 나은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언제나 새로워져야 하는 건 아닙니다. 언제나 바꾸어야 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언젠가는 애써 새로운 것을 찾아다녀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유야 다양하지요. 대안이 없어서, 현재가 불만족스러워서, 지금이 나쁘지는 않지만 변화가 필요할 것 같아서 그럴 거예요. 하지만 마음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은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요. 우리는 종종 무언가를 또 누군가를 비판하고 비난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기 전이라면 보류할 필요가 있습니다. 알지 못해서 혹은 알려고 하지 않아서 잘못 판단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생소하면 무조건 별로라고 치부하는 거예요. ‘듣도 보도 못한 거’라고 틀린 건 아닌데 말이죠. 게다가 내가 모른다는 이유로 배척하는 건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수명이 천 년이 된들 모든 걸 알 수는 없을 테니까요.


사람은 종종 몸과 마음이 따로 돌아다닙니다. 내일이 시험날인데도 책상에 앉으면 휴대폰과 컴퓨터에 자꾸만 눈길이 가잖아요. 그래서 컴퓨터 앞으로 자리를 옮기면 또 시험이 걱정일 테고요. 결국 아무 것도 못하게 됩니다.


지금 이곳(혹은 이것, 이 사람)에 집중해야 합니다. 공부하든 놀든 하나만 하세요. 돌아봐야 아무 소용 없습니다. 공부하는 시간에 집중하면 후회 없이 놀 수 있고, 노는 시간에 집중했으면 그 시간 되돌아보지 않게 되거든요.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무조건 넓은 세상으로 나가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에요. 언제나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방향성도 각자의 선택이니까요. 다만, 언젠가 여러분이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지점에 다다랐을 때 고려할 수 있는 범위가 더 깊고 넓으면 좋겠습니다. 두 개의 길, 열 개의 길이 아니라 천 개, 만 개의 길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겁니다. 물론 선택에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또 그만큼 신중해질 것입니다. 나에게 적합한 길을 가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보이는 곳보다 조금 더 멀리 보세요. 지금 서 있는 곳에서 한 발 더 내디뎌 보면 좋겠습니다. 지금과는 다른 무언가를 원한다면 말입니다. 시야를 좁게 만들어 버리는 세상의 저항에 여러분의 힘까지 보탤 필요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