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리지 않아요

by 한수

친구와의 약속. 옷을 챙겨 입다가 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칩니다. 왠지 이전과 달라 보여요. “많이 컸네.” 혼잣말을 합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흐릿하지만 그때와 비교해 훌쩍 자란 건 확실한 것 같아요. 아는 것도 많아지고 제법 어른스러운 생각도 하게 되니 더욱더 그렇게 보입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경험도 꽤 쌓였어요. 아직은 어른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하지만 어리게 보이는 건 왠지 자존심이 상합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입은 옷은 너무 어려 보입니다. 앞으로 이 옷은 입지 말아야겠어요. 조금은 성숙해 보이는 옷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갑니다. 저만치에서 어린아이들이 지나갑니다. 나지막이 중얼거립니다. “완전 꼬맹이네.”


잠시 내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떤지 궁금해지네요. 다 컸다고 생각하지는 않을지언정 ‘어리지는 않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조금은 섭섭하게 들리겠지만 용기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여전히 어려요. 어쩌면 앞으로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어린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겁니다. 어른들이 보기에 여러분은 아주 어려요. 나보다 나이가 적으면 어린 거잖아요. 그러니 어른들이 여러분을 아이처럼 대하는 거예요. 차가 오면 가로막아 보호하려 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려 하면 제재하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도와주고 싶어 해요. 보호본능이 생기는 겁니다. 언제까지 그럴 거냐고요? 글쎄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스무 살이 되고 서른, 마흔이 되어도 그보다 더 오래 살아온 사람들 눈에는 여전히 어려 보이거든요. 물론 여러분은 이렇게 말하고 싶겠지만요. “저는 이제 애가 아이라고요.”


사람이 그렇습니다. 객관적인 기준보다 주관적인 기준이 앞서는 경우가 많아요. 거기에 첫인상도 한몫합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처음의 인상, 느낌을 가진 채로 상대방을 보게 됩니다. 나도 많이 경험했지요. 누군가를 기억할 때는 늘 처음 봤을 때의 인상을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에요. 저절로 기억납니다. 그래서인지 매일 보는 사람인데도 처음 받았던 느낌을 바꾸기가 힘들었습니다. 그 사람의 다른 모습 혹은 달라진 모습을 겪으며 나의 인식이 바뀌는 듯하지만, 매일매일 그를 대하면서 첫 느낌도 강화되는 것 같았지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벗어나는 게 좀처럼 쉽지 않았어요.


어른들, 특히 가까운 어른들이 여러분을 보는 마음도 그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여러분을 꼬물거리는 아기로 기억합니다. 혹은, 자기주장 분명한 똑 부러지는 어린아이를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그게 여러분의 첫인상입니다. 알에서 갓 부화한 병아리는 처음 본 대상을 따라다닌다고 하죠. 그런 걸 ‘각인(刻印)’이라고 한대요. 습득 시간은 짧지만 지속 기간은 아주 길어요. 어른들도 그래요. 그 만남에서 알을 깨고 나온 게 여러분만은 아니거든요. 첫 만남의 기억은 꽤 오랫동안 아주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한번은 고향 마을의 어르신 한 분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군대는 다녀왔고?” 군대에서 제대한 지 십오 년은 되었을 때였어요.


여러분이 늘 어린아이로 보이는 게 어른의 입장에서는 당연합니다. 나보다 어리고 경험이 적잖아요. 세상의 다양한 일들에 대한 대처 능력을 배우고 있는 단계라면 더 작아 보입니다. 그 깨끗한 마음에 생채기가 나기 시작했다면 더욱 연약해 보이겠지요. 삶의 과정으로 단련되는 것 중의 하나가 ‘견디는 힘’인데, 어른의 눈에 비친 여러분은 여전히 ‘힘을 키워 가고 있는 중’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상할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절대 어리지 않으니까요. 그렇죠?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합니다. 어른들의 그 태도는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겁니다. 자꾸 눈이 가고 신경이 쓰이는 겁니다. 여러분이 다치는 게 안쓰러운 거예요. 당연히 보호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겠어요? 그래서 감싸는 겁니다. 막는 거예요. 때로는 답답할 거란 걸 알면서도 당장은 보호가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더 자라서 성인이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해낸다고 해서, 누구보다 윤택해 보이는 삶을 산다고 해서 사라지는 관심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성숙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언젠가 경제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독립을 하게 되더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누군가에게 여러분은 늘 어린아이입니다. “밥 잘 챙겨 먹고, 차 조심하고.” 내가 늘 듣는 말입니다.


위한다는 건 그런 겁니다. 나에게 있는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지요. 그건 여러분을 응원한다는 표현입니다. 사랑의 한 형태일 뿐 다른 의도는 전혀 없음을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그 관심이 과하여 여러분의 삶을 망가뜨리거나 여러분의 선택권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삶의 주인이 여전히 여러분이라면, 기분 좋게 받아도 됩니다.

이전 11화내가 뭘 원하는지 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