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뭘 원하는지 아세요?

by 한수

어린 시절 친구들과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물론 말 그대로 버릇일 뿐입니다. 불가능하니까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 수는 없잖아요. 짐작 정도만 하는 거죠.


다른 사람의 생각, 느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당연하지요. 나는 그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몇 번의 예상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냥 운입니다. 친한 친구나 가족이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어쩌면 ‘알고 있다’고 느끼는 그것은 경험을 통한 추측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 사람은 지금과 유사한 상황에 항상 혹은 자주 그렇게 대응해 왔으니까요. 오늘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 보였으니까요. 작년에 그렇게 말했으니까요. 그러니 ‘지금도 그럴 것’이라고 예상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볼 때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경험과 논리로 예상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종종 너무나 진지하게 누군가 나의 진짜 마음을 알아봐 주길 바란다는 데 있습니다. 입은 꾹 다물고 있으면서 말이죠.


상대방이 나의 마음을 알 방법은 딱 하나입니다. 당사자인 내가 솔직히 말하는 겁니다. 알아주길 바라는 만큼 표현하는 거예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그때 왜 그랬는지, 지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야 합니다. 나 자신을 알릴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상대방에게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솔직해지세요. 바라는 것이 있다면 말하세요. 입 밖에 내지 않는다면 누구도 그 사실을 알 수 없습니다. 오늘도 그저 짐작할 뿐이에요. 맞을까 틀릴까 불안해하면서요.


어떤 연예인을 좋아하나요? 학교에서 친한 친구는 누구지요? 왜 그 친구를 좋아하나요? 주말에는 뭘 하고 싶어요? 꿈이 뭐예요? 왜 그렇게 되고 싶은데요? 지금 기분은 어떤가요? 말해 주세요. 우리 어른들은 여러분에 대해 알고자 합니다. 이해하고 공감하고 싶으니까요. 필요하다면 도움이 되고 싶으니까요. 그러니 있는 그대로 말해 주세요. 이왕이면 구체적으로요. 돌려서 말하면 못 알아들을 수도 있으니까요.


사람은 그것이 무엇이든 판단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 결론을 내 버립니다. 드러나지 않은 중간을 상상력으로 채워 버려요. 결론까지의 과정이 반드시 논리적일 필요도 없습니다. 이유가 뭐든 간에 마침표를 찍어야 속이 후련해지는가 봅니다. 그래서 풀리지 않는 무언가에 대해 매우 진지한 태도로 이렇게 얘기합니다. “분명히 어떤 의도가 있어.” 이해할 수 없거나 해결되지 않는 것을 그대로 남겨두는 걸 못 견디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어떻게든 여러분을 판단할 겁니다. 바라든 바라지 않든 상관이 없습니다. 듣기 좋을 수도 있고 너무나 거북할 수도 있어요. 지나온 길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결과에 대한 것일 수도 있지요. 여러분이 원하거나 추구하는 모습과는 별개로 판단하고 결론을 낼 겁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각자 내린 판단의 근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표현하지 않는 여러분을 두고 누군가는 ‘입이 무거운 속 깊은 사람’으로 볼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말하는 걸 귀찮아하는 사람’으로 볼 겁니다. 입바른 말을 하면 ‘할 말은 하는 사람’이 될 수도 ‘버릇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어요.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이라고 할지도 모르고요. 나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각자의 기준으로 짐작하고 재단한 여러분의 모습을 담아두고 있을 겁니다.


문제는 어른이 될수록 더 빠르고 더 강하게 단정짓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축적된 경험이 많아질수록 확신을 갖게 되거든요. 물론 나름의 변명거리는 있습니다. 우리는 늘 무언가에 관해 결정해야 합니다. 그를 위해서 현재 상황에 대한 판단이 있어야 하지요.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시간이 없습니다. 결국 빠르게 혹은 급하게 결정합니다.


어른들이 여러분에게 손을 내미는 것도 하나의 결정입니다. 당연히 고민하게 되지요. 어떤 기준이나 방향은 필요하거든요. 상황, 성격, 성향 등에 따라 달리 행동해야 할 것 같으니까요. 하지만 역시나 시간이 충분치 않습니다. 그래서 몇 개 되지 않는 희미한 단서일지라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결정하는 거예요. 물론 단편적인 정보로 판단한다는 게 이미 잘못된 것이지만요.


편하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지도 않고 잘도 이런 말을 하고 있네요. 오해 없길 바랍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과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조합해서 하나의 결론을 만들어 내는 데 선수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정보의 종류나 양이 많고 적음은 관계가 없다는 것도요.


하지만 어른들도 깨달아 가는 중입니다. 그동안 여러분을 너무 몰랐음을, 혹은 너무 아는 척했음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어른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재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우리를 보며 ‘말이 전혀 안 통하는 꼰대’라고 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음 또한 알고 있습니다.


이제 와서 대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들 틀어진 그 마음을 돌리는 게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 사이의 두꺼운 벽을 부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실감하고 있습니다. 살짝 손 내밀고 잠시 기다려 주세요. 여러분이 뭘 원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 마음을 듣고 싶습니다. 그러니 어리석은 어른들에게서 고개를 돌리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어른들이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조금만 힘을 보태 준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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