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에게 관심 없는 어른들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어른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미래의 주인공이잖아요. 생각과 행동이 톡톡 튀고 에너지가 넘치잖아요.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많은 어른이 여러분을 보고 미소짓고 있어요. 모르는 사람조차도요. 기운찬 그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거든요.
여러분의 축 쳐진 어깨를 보면 다들 안타까워합니다. 건강해야 하는데, 놀아야 하는데, 하하 호호 웃으며 지내야 하는데, 하면서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면 엄청 놀랄 거예요.
사실 멀리 갈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누군가의 자녀이고 조카이며 손주잖아요. 언니, 오빠, 형, 누나, 동생이잖아요. 그리고 없어서는 안 될 친구이기도 하고요.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더없이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관심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건 사람이 모두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나한테 관심이 있다면 이 정도는 해 주겠지?’ 생각합니다. 혹은 ‘나에게 그 이상은 하지 않는 걸 보니 관심이 없는가 보다’ 합니다. 저는 그랬는데 여러분은 어떤가요?
자연스러운 생각이기는 하지만 가끔은 의도적으로라도 그 마음을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 사이에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주된 요인이거든요.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어 그 감동을 나누고자 책을 선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몇 번 선물해 보았어요. 그러다 문득, 책 선물이 그다지 뜻깊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선물이 그 사람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뒤늦게 한 거예요. 그들 중 누군가는 이렇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어요. ‘나보고 책 좀 읽으라는 건가?’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고른 그 책이 싫을 수도 있지요. 나 역시 선물 받은 옷을 한 번도 입지 않고 버린 경험이 있습니다. 내 스타일이 아니었거든요. 그러고 보면 좋은 뜻인데도 전달이 안 될 때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선물을 줄 때 상대의 입장을 조금 더 고민해 봐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집에 늦게 들어가게 된 어느 날, 언제 들어오냐는 어른들의 물음에 “나를 어린아이 취급한다” 대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의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어 “운동해라”, “공부해라”, “그런 건 하면 안 된다” 하시는 것도 그저 나를 통제하려는 것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듯 보여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관심’은 그런 게 아니거든요.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만 그런 건 아닙니다. 관심을 줄 때도 그래요. 각자 본인이 생각하는 관심의 형태가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어른이 이런 마음을 갖습니다.
‘맛있는 걸 먹으면 좋아할 거야.’
‘꼭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것 같으니 게임은 자제시켜야겠어.’
‘가족끼리 너무 단절되면 안 되니 방문은 열어 놓으라고 해야지.’
그러다가 너무 간섭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가끔은 돌변하기도 해요.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게 기다려 줘야지.’
어른들은 이렇게 여러분에게 다가갑니다. 물론 여러분이 그 의도대로 받아들이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기분의 편차도 크고 또 나름의 생각도 있으니까요. 간혹 무작정 반항하고 싶은 마음도 생길 테고요. 그러니 어른들 입장에서는 답답합니다. 의아하지요. ‘나는 잘하려고 하는데 왜 화를 내는 거지?’
때로는 여러분과 어른들의 기준 혹은 방침이 바뀌기도 합니다. 어제까지는 어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오늘이 되니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 뜻을 이미 알고 있었다면 ‘이제부터 그 의도대로 받아들여야지’ 다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기다려도 오지 않아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어제, 이미 어긋나 버렸거든요. 내가 준비한 그 시점에 상대방이 그만둘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어쩌면 지난 일로 인해 나름대로 고민의 시간을 가진 어른들이 행동 지침을 바꾸었을지도 모릅니다. 마음과 마음이 닿는 건 언제나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뭘까요? 나는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의도가 없었는데 받는 사람의 기분이 별로일 수 있습니다. 어떤 날에는 좋은 의도였음에도 불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요. 마침 그날 그때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어른들이 여러분에게 관심이 없다고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관심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시도를 하지만 그 의도대로 전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여러 이유로 자제하고 있는 모습도 때로는 무관심으로 비치거든요. 그 시절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기에 죄송한 마음이 드네요. 그 마음을, 그 의도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어른들에게도 잘못은 있습니다. 자신의 기준이 여러분에게도 적용된다고 단정 지은 것에서 이미 틀렸습니다. 십대 시절을 거쳐오면서 어른의 가치관과 아이들의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이미 겪어 봤으면서도 같은 실수를 하는 것이니까요. 어른들은 나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다며 투정 부리고 섭섭해했는데, 어른이 된 지금 나 역시 똑같은 어른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일이 설명할 시간이 없다”, “어른이 되고 보니 어른들 말이 다 맞더라” 하는 말로 변명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합니다.
사람을 이해하는 게 어려운 일이기는 합니다. 나의 기준이 아니라 상대방의 기준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지요. 분명 나의 기준, 나의 가치관과 다를 거예요. 그러니까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잘되지는 않을 거예요. 그동안 가지고 있던 생각을 바꾸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이미 많은 사람이 실패했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시도하지만, 생각보다 높은 벽을 만나 주저앉지요. 다른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의아한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십대 친구들에게 다가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시작은 이랬습니다. 눈빛과 몸짓으로 호감을 표현합니다. 따뜻함을 유지하되 ‘오로지 너만 바라보고 있다’는 인상은 주지 않으려 했습니다. 부담을 주면 안 되니까요. 더하여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낼 의향’이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거부를 뜻하는 너의 자그마한 제스처에도 그만둘 거’라는 조심스러운 면도 비추어야 했지요. 그런 나의 의도가 제대로 전해지기를 바랐어요. 물론 받아주지 않은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친구들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가가지 못했음에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런 나에게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 어색한 태도와 짜증 뿐이었다는 게 또 속이 상하기도 했고요.
솔직히 그 순간에는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나는 노력에 대한 대가를 받고자 했던 것 같아요. 그땐 나름대로 꽤 노력 중이었거든요. 반갑게 인사를 하고, 모르는 것을 친절히 설명해 주고, 먼저 다가가 가볍게 장난을 걸어도 시큰둥한 반응뿐이니 흥이 나지 않더라고요. 심지어 먼저 장난을 걸어 오는 친구가 있어 그 장난을 받아쳐 주었는데 되레 화를 내더라고요. 그 종잡을 수 없는 태도는 늘 나를 당황스럽게 했고 나의 사기는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물론 그것이 그 친구들의 본심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늘 자신의 마음처럼 행동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마음가짐 자체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요. 조절하기 어려운 생각과 행동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은 어른 중에도 많습니다. 바람직한 행동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못됐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잖아요. 게다가 그런 마음으로 인해 누구보다 힘든 사람은 여러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거든요. 잘하고 싶은데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그 괴로움을 나는, 어른들은 알고 있습니다.
각자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의도를 오해할 수 있음을 헤아려 주세요. 어렵겠지만 한 번쯤은 감추어진 모습까지 살펴봐 주기를 부탁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보거나 느낀 그것이 어른들의 진짜 의도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알게 된다면 어른들도 꽤 놀랄 거예요.
무언가를 잘 하고자 할 때, 사람은 평소보다 더 고민하게 됩니다.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늘어나요. 잘하고 싶으니 그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리될 때까지 고민합니다. 하지만 완벽해질 수가 없어요. 애초에 완벽이란 있을 수 없고, 고민이 깊어질수록 고려해야 할 사항들은 점점 많아질 테니까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이런 생각들이 반복됩니다.
‘잘못되면 어쩌지?’
‘조금 더 나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
잘하고 싶은 마음에 한 발 떼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시간이 길어진 만큼 이제 와서 그 고민을 딱 멈추기도 아깝고요. 어떤 어른들의 머릿속은 지금도 꽤 복잡할 거예요.
이 마음, 조금만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어른들이 용기를 얻고 한 번 더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또 다시 실수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어제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관심과 어른들이 생각하는 관심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근본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언젠가는 꼭 만나게 될 거예요. 서로가 눈을 크게 뜨고 귀를 기울이면 조금 더 빨라질 수도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