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다 싫어요

by 한수

가끔 그럴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싫을 때요. 그것이 무엇이든 흥미는커녕 작은 눈길조차 줄 수 없습니다. 주변의 말도 듣기 싫습니다. 귀찮아서 그런 것 같지만 그것보다는 조금 더 복잡한 기분입니다. 나의 온몸이 몸부림치며 외칠 겁니다. “다 싫다고!”


나도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그저 그랬습니다. 집에 손님이 오셔도 삐쭉 인사만 하고는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버릇없어 보였겠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내 마음을 주체할 방법을 나도 몰랐으니까요. ‘이건 아닌데’ 하는 불편한 마음이 있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았어요. 그것이 점점 심해지더니 어느 날은 나 자신도 싫어졌습니다. 아무것도 못 하고 그냥 가만히 있는 나를 보며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나는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가 아닐까?’ 이런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정말 괴로웠어요. 무서웠습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더 힘들었습니다. 원인을 모르니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도움이 필요했지만 손 내밀 줄도 몰랐고요.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기에 많이들 그러는가 보더라고요. 괜히 화가 납니다. 어른들에게 대드는 일이 잦아요. 그럴 일도 아닌데 말이죠. 많은 일들에 충동적으로 행동하곤 하지요.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성장이라는 변화 과정에서 보일 수 있는 행동이라고 해요. 그러니 그 많은 십대들이 ‘중2병’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게 되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중학교 2학년 학생들에게 괜히 미안하네요. 그때는 사춘기의 평균 나이가 그즈음이었나 봅니다.


지금보다 어릴 때는 아직 세상을 잘 모릅니다. 물론 세상이 잘 보이지도 않고요. 호기심이 충만하기는 하지만 어른들 말은 잘 따르는 시기라서 무언가에 대한 자신만의 의견이나 가치관을 정립하기에 조금 이른 것 같기도 합니다. 세상을 경험하고 있지만 그 양이 얼마 안 되지요.


하지만 아이는 계속 자랍니다. 결국 여러분과 같은 십대 청소년이 되지요. 그리고 이제는 전과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혼자 씻고 혼자 가방을 쌉니다. 혼자 밥을 차려 먹기도 하지요. 학교나 학원에 데려다주지 않아도 돼요. 때론 데려다주는 게 창피하기도 합니다. 친구들과 있는 게 가장 좋습니다. 크고 중요한 일은 어른들의 허락을 받지만, 전처럼 일일이 보고하지는 않습니다. 서서히 어른들의 시선을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자신만의 경험이 쌓이면 뭔가 거대한 내적 변화를 겪게 됩니다. 내게 중요한 것, 내가 원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어른들과 공유하기 힘든 비밀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흉내 내 보곤 해요. 다양한 친구를 사귑니다. 마음이 맞지 않으면 다시 멀어지기도 해요. 결국 정말 마음에 맞는 친구들이 생깁니다. 그 친구들과 많은 것을 함께 합니다. 이제는 내가 속한 그 무리의 방식에 익숙해져서 그것이 모두 옳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른들이 하는 말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어른들의 방식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모두 이상합니다. 내가 어린아이도 아닌데 여전히 나를 통제하려고 하는 것만 같아서 싫습니다.


나는 그랬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비슷한가요? 그렇다면 축하합니다. 아주 낯설고 힘들겠지만,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자, 계속해 볼게요.


이제 어릴 때처럼 어른들의 말이 다 옳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전에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나도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이건 틀렸고 저건 나랑 안 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내가 잘 모르는 것도 너무 강요하면 싫습니다. 어른들은 나를 고려하지 않고 너무 본인 위주로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과 선생님, 그리고 다른 어른들에게 반항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들지만 때로는 반항하는 나의 모습이 멋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간혹 내 생각이 모두 옳다고 느껴지기도 하고요. 이상한 건, 그러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이유 없이 답답해집니다. 선택해야 하는데 뭐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혼란스럽습니다.


청소년 시기에는 몸이 그러한 것처럼 사고력도 급속도로 확장하는 것 같습니다. 정리가 잘 안 돼요.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성장하거든요. 해저 깊은 곳으로 잠수할 때나 깊은 곳에서 올라올 때는 몸이 적응할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움직인다고 하잖아요. 청소년기는 그럴 시간을 주지 않는 것 같아요. 마구 몰아치는 거지요. 진정될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합니다. 한꺼번에 쏟아진 그것들과 마주하고, 버릴 것과 가질 것을 구분하려면 말입니다. 어른들이 여러분의 이유 없는 반항이나 투정을 꼬치꼬치 지적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그겁니다. 여러분이 그 시기를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거든요. 여러분이 힘들지 않기를 바라지만, 때로는 피할 수 없는 과정도 있으니까요. 스스로 이겨내는 경험도 필요하니까요.


네 맞습니다. 아주 힘든 거예요. 여러분은 이런 상황이 처음이잖아요.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것과 마주할 때는 두려움이 앞서는 게 당연합니다. 그러니 일단은, 이상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아주 많은 사람이 이미 겪었고, 지금도 주변의 친구들이 겪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합니다. 그렇다고 별일 아니라는 건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데 별일 아닐 수 없지요.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너무 당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필요할 때는 언제든 손을 들어 도움을 요청하세요.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습니다. 힘들다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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