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날은 기분이 되게 좋고 또 어떤 날은 이유도 모르게 바닥보다 더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항상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던 상황인데 그날은 왠지 마음이 상하기도 합니다. 자신감이라는 녀석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있고 없고의 차이가 너무 심해요. 자신감이 있을 때의 나는 꽤 관대합니다. 뭐든 열심히 또 즐겁게 합니다. 반면 자신감이 사라지면 기운이 빠집니다. 마음도 좁아져요. 모두 무의미해 보입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지요.
조금 길지만 내 이야기를 해 볼게요.
나는 한 학년에 한 반만 있는 작은 초등학교에 다녔습니다. 건물은 단층이었고, 건물보다 조금 긴 운동장이 있었어요. 전교생을 합쳐 봐야 이백 명이 채 되지 않았으니 사방을 누비며 뛰어다니기에 부족함은 없었습니다. 학년이 바뀌어도 반이 바뀔 일이 없으니 낯선 상황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때의 나는 참 발랄했습니다. 거리낌이 없었어요. 몇몇 눈에는 너무 튀는 아이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학생 수가 어마어마했습니다. 입학 당시 1학년 학생 수가 400명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모든 학년의 수가 그와 비슷했다면 전교생이 천 명이 넘었을 테니 나로서는 기가 죽을 만했습니다. 게다가 주변을 위협하며 다니는 몇몇 사나워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으니 절로 고개가 숙어졌어요.
학기 초 어느 날 점심시간에 운동장에 나가서 축구를 했습니다. 수비를 보던 자리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 갑자기 공이 오길래 뻥 차버렸지요. 하지만 그 공은 우리의 것이 아니었어요. 화가 난 얼굴로 달려 온 2학년 형이 나의 배를 걷어차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 하나의 운동장에서 학년별로 경기가 이뤄지고 있었다는 걸 깜빡했던 겁니다. 나는 그 후로 체육 시간을 제외하고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꼭 그것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시기상으로 보자면 나는 중학생 때부터 아주 조용해졌습니다. 초등학생 때처럼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겁이 났던 것 같아요.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학급 회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날은 정말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온갖 고민 끝에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그런데 모든 친구들이 몸을 돌려 나를 보고 있는 겁니다! 목소리는 떨리고 얼굴에 열이 올랐습니다. 가까스로 이야기를 마치고 앉았지만, 진정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중고등학생 시절의 자발적인 발표는 그 한 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요.
십대 후반부터는 꽤 오랜 시간 동안 키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친한 사람들과 있을 때는 별생각 안 들었지만 조금이라도 낯선 사람 옆에서는 작은 내 키가 신경 쓰이는 겁니다. 키 작은 게 잘못된 것도 아니고 안쓰러울 일도 아님을 알지만 왠지 위축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꽤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성인이 된 후 어느 날 지하철에서 내리기를 기다리는데 주변이 꽉 막힌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어요. 모두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사람들이었습니다. 왠지 아찔하고 답답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꽤 우스운 장면은 아니었을까 싶어 부끄러운 마음마저 들더라고요.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몇 가지에 대해서는 기죽지 않습니다. 나만의 기준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기준을 나의 것으로 둔갑시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몇 가지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류와 강도 그리고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다를 뿐이지요. 그리고 열등감을 보면 그 사람이 지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이의 그것은 외모입니다. 지적인 능력일 수도, 소유한 물건의 값비싼 정도일 수도 있겠네요. 누군가에게는 SNS에 올린 게시물의 ‘좋아요’ 수일 테고요.
그것은 돋보이고 싶은 마음을 대변합니다. 나아 보이길 바라는 거예요. 특별히 누군가를 나보다 못한 사람으로 두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내가 잘나 보이길 바라는 겁니다. 열등감은 그 마음에서 뻗어 나온 한 갈래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열등감의 상당수는 외부 자극에 의해 발생합니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이란 없음을 알면서도, 모두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넓은 집에 사는 사람, 늘 해외여행을 다니는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 외모가 출중한 사람, 말을 잘하는 사람, 외향적인 사람을 보면서 ‘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걸 바라고 치켜세우기 때문입니다.
같은 상황에 자주 노출되면 사람은 그 상황을 옳은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 그들의 바람은 나의 바람으로 둔갑합니다. 새로운 욕망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은 나쁜 게 아니지만, 내가 그걸 원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키가 크고 몸이 좋아야 하나요? 잘생겨야 해요? 넓은 집만 좋아요? 꼭 말을 잘해야 하나요? 반드시 유명 브랜드의 옷을 입어야만 하는 건가요? 그 정도의 기준에 도달해야만 어떤 자격이 생기게 되나요? 그렇다면 그 기준은 어떻게 정해지는 걸까요?
가끔 나 자신을 돌아볼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요.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
따르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기준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럴 수 있어요. 한 사회에는 공유해야 할 가치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개개인의 취향 혹은 추구하는 방향까지 같아야 할 필요는 없는데도 말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준이 사실은 내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가져왔을지도 몰라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비교하는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거든요. 나는 결국 못난 사람이 되기 마련입니다. 현재의 나보다 나은 곳을 바라보는 게 발전하는 방향이라고들 하지만 그걸 어떻게 적용하느냐는 다른 문제입니다. 굳이 다른 사람과 비교함으로써 자신감을 떨어뜨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바라보는 곳을 버리고 혼자 다른 곳을 향한다는 것은 세상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니까요. 다들 관심을 두고 있는 그것에 무관심하다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겠지요.
타인을 기준 삼고 같아지려 하는 걸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과 같아지는 게 나의 가치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것이 나를 편하게 한다면, 그것이 진정 ‘나’의 목표라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것이 좋다기에, 그렇게 해야 한다기에 정신없이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의아할 때가 있거든요.
‘내가 왜 여기에 있지?’
주변 눈치를 살피는 나의 마음에 쫓겨 여기까지 왔는데 사실은 내가 원하던 게 아니었음을 깨달았을 때 말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중요한 무언가가 있을 거예요.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하거나 그 안에 속하지 못하면 뒤처지는 것 같겠지요. 하지만 한 발짝 떨어져 생각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정말 나의 것인지 살펴봐야 해요. 혹여 어떤 떠밀림의 결과라면 고민해 볼 일입니다.
모두가 같은 색깔의 옷을 입을 필요는 없습니다. 저들과 나는 다른 사람이잖아요. 나만의 삶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남들 한다고 다 좋은 건 아닙니다. 그들이 하지 않는다 해서 ‘해서는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성격과 생김이 다른 것처럼 각자가 원하는 삶의 방향 또한 다를 수 있습니다.
남들을 따르든 새로운 것을 개척하든 지금 이대로를 고수하든, 그 결정의 주인이 여러분이라면 괜찮습니다. 같은 선택이라도 남이 해 준 것과 내가 한 것은 다르니까요. 그 누구보다 여러분에게 소중한 것을 찾았으면 합니다. 그것이 가장 가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것을 선택한 여러분을 칭찬해 주세요. 사실은 참 어려운 일이거든요.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 만큼요.
그들의 꿈을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의 기준을 나의 기준으로 삼지 마세요. 자신이 바라는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주도적으로 행동하면 남들과 비교하며 의기소침해지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