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나의 정원이자 테라스. 수요일마다 열리는 장터에서 바질과 고무나무를 데려왔고, 나한송은 '선물이야'라는 감동으로 나의 정원에 입성했다. 초반엔 이 테라스에는 자전거 한 대와 독서를 위해 마련한 캠핑의자 하나만이 덜렁 존재했지만, 뒤이어 테이블과 보조의자도 들어왔다. 도란도란 밤바람을 맞으며 이야기하던 대화의 공간이 되어주었고, 이제는 함께한 흔적은 책 한 권이 되었다. 나는 여기에 앉아서 늘어지게 누워서 책을 읽으며 지난날을 상기해보곤 한다.
내가 이 집에서 가장 사랑하는 공간. 테라스에서 바람과 햇살을 맞으며 의자에 누워 책을 읽는 공간. 마침 구도가 알맞아 그림을 그린다. 마린 블루색의 테이블을 그리기 시작해 조금 더 새파란 보조의자를 얹고, 편안히 늘어진 내 다리를 그리고, 다리 위에 걸쳐놓은 책을 그리고 주변에 놓인 바질, 고무나무 그리고 나한송을 그린다. 2021년 9월 9일의 정원.
그리고선 생각해본다. 그림을 그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내가 너에게 그림을 그려준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
그림을 그린다는 건. 그 장면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의 발현이다. 그림을 그리게 된다는 건, 오랜 관심과 관찰을 드러내는 동작이다. 그래서 나는 내게 그림을 그려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너를 그린다는 건, 내가 너를 그만큼 깊이 있게 관심 있게 봐왔다는 표현이므로. 좋아하는 마음만큼 그리게 되니까.
사진을 찍는데 손가락 한 번의 터치가 전부지만, 그림을 그린다는 건 눈으로 본 걸 마음으로 본 뒤에 눈을 감고 떠오르는 상을 그려내는 것. 그만큼 품이 드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많이 좋아했는지, 얼마나 예쁜 눈으로 보았는지, 얼마나 오래 간직하고 싶었는지. 여러 마음이 보인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와중에 그림을 그려줬던 그 사람을 떠올린다. 그리고 다시금 내게 그림을 그려주었던 사람을 떠올린다. 그림을 그릴 연습장을 사준 사람을 떠올리고, 그림을 그릴 색연필을 사준 사람을 떠올리고, 그림을 프로필 사진으로 게재해준 사람을 떠올린다. 내 그림으로 하루를 즐거이 보내는 사람을 떠올린다.
최근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피카소 140주년 전시에서 다른 대작 사이에서도 유난히 <마리 테레즈의 초상>이 눈에 오래 남았다. 그 그림에 사용한 색채는 밝았고 그림선은 가벼웠다. 움직이지 않는 그림이 움직 여보였다. 그가 얼마나 예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는지 보았다. 나도 저런 마음이 보이는 그림을 그려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 예쁜 사랑을 하고 싶다.
그날 전시에서 가장 좋았던 문구는
'나는 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을 그린다.'
였다. 그에 더불어 나는 마음이 보이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아니,
마음이 보이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가 아니라 되고 있다.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후로 나는 오래 기억하고 싶은 것을 정말로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자전거 여행을 하며 좋았던 길과 대화와 햇살과 평화로운 마음을 모두 기억해서 돌아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일상에서 예쁨을 잘 알아채는 사람이 되었다.
그림을 그린다는 건 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장착하는 것과 같다. 후에 나의 그림사를 쭈욱 훑어보면, 내가 그날 어떤 생각과 고민을 했는지 드러날 것이고 나의 생이 그림책처럼 지나갈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나의 하루을 사랑하고 있다. 지수패드에 채워진 그림으로 언제든 그 순간으로 소환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