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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슈 Feb 05. 2022

봄이 온다

봄은 되어가는 것. 나다움도 되어가는 것.

어제는 입춘이었다. 요즘 지독하게 봄에 꽂혔다. 그 이유는 여럿이 있는데, 시작은 친구의 생일이었다. 1월에 생일인 이 친구의 한자 이름을 뜻풀이 하면 '봄이 온다'인데, 친구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처음 만났던 어린 시절에는 항렬을 쓰는 그 이름이 촌스럽게 여겨졌다. 나이가 들어 다시 곱씹으니 참으로 낭만적이다. 입춘이 되기 전, 겨울에 태어난 아이. 곧 봄이 온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라니.


며칠 전 새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태어난 해의 띠의 기준이 입춘이라는 것이다. 올해는 임인년이지만, 입춘이 지난 후에 태어난 아기들만 호랑이띠라는 사실. 음력이 기준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1년의 시작 절기는 입춘인 것이다. 우리가 기념하는 신정 1월 1일, 구정 1월 1일도 아닌 입춘. 그 말은 즉슨, 1년의 시작은 봄이라는 것. 그래서 우리는 좋아지는 시기에 '아랍의 봄'처럼 봄을 붙이고,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봄에 화사함과 시작을 비유하나 보다. 봄은 시작이니까.



그리스 로마 신화에도 봄을 이렇게 묘사한다.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에게는 딸 페르세포네가 있는데, 어느 날 지하의 신인 하데스가 딸을 납치해 지하의 여왕으로 삼는다. 딸을 잃어 상심한 데메테르는 대지를 돌보지 않고 결국 땅은 황폐해진다. 그리하여 제우스는 하데스를 설득해, 페르세포네를 어머니가 있는 지상으로 돌려보내고 3개월 정도를 지하에서 하데스와 보내는 것으로 합의한다. 페르세포네가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오면 봄이 되고, 다시 지하로 돌아가면 겨울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봄은 그런 의미인 것이다.



그러다 이어령 선생님의 인터뷰를 topclass 200호 특집에서 보게 되었는데, 이렇게 질문하셨다.


봄은 있는 건가요, 되는 건가요?



봄은 자연 속에 있는 게 아니냐는 인터뷰이에게 이어령 선생님은 봄이 여름이 되고, 여름이 가을이 되는 것이지 봄이 있는 게 아니라고 답한다. 산과 강은 늘 존재하니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봄은 그렇지 않다고. 있다는 존재론이고 되다는 생성론이라고. 이처럼 자연 속에서 인간은 계속해서 변하는 존재이니, 나다움을 나는 아이큐가 몇이다. 무엇이다와 같은 결정론으로 존재를 규정하지말고 생성론의 관점에서 내가 무엇이 되어간다는 나다움을 찾아가라고 조언한다. 겨울이 봄이 되듯이. 되어가다가 방점이다.



이제 정말로 봄이 온다. 입춘도 지났고, 싹이 움튼다. 꽃눈도 분화했다. 한 해가 시작되었다. 나의 21년은 어떠했는가. 객관화를 하자면 요행을 바란 어린아이 같던 한 해였다. 많은 걸 경험하고 성장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요행을 바랐다. 실패를 겪고나니, 불안한 마음에 요행을 바라지 말고 용기내어 직면하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방금 이 글을 쓰면서, 건명사학 1기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올해 연하장에 써넣은 글귀처럼, 삼인행 필유아사. 세 사람이 길을 걸어가면 선생은 반드시 있으니, 건명사학에서 1년간 수학하며, 나도 스승이 되고 스승을 만나며, 존재하지만 되어가는 나로 나다움을 찾아가길 다짐한다. 되어가는 존재로 살아가기를.


2022년 2월 5일 입춘이 하루 지난 날 쓰다.




봄이 온다. 여름이 되고,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된 다음 다시 봄이 온다. 순환한다. 돌아돌아서 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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