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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슈 Jan 25. 2021

밤 운전, 그리고 차를 닦는 마음

운전과 세차

땅거미가 내려앉은 초저녁에 운전으로 잠깐 길을 나서면, 차분한 마음으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그래서 밤 운전을 좋아한다.

그동안 나는 걸었고, 달렸고, 산에 올랐고, 자전거를 탔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혼자에게 집중하기 위해서. 그런 행위에 비해 운전이 나름 특별한 점은, 슈필라움의 존재다. 자전거도 타는 건 매 한 가지이지만, 외부와 분리된 공간이 생기지는 않는다. 자연 속에서의 운동은 오롯이 나의 신체만이, 내가 가진 공간의 전부이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운전은 슈필라움에 더해 이동까지 할 수 있다. 그 안에서 나는, 조금은 피곤한 몸의 긴장을 내려놓고, 활기찬 얼굴 대신 약간의 미소를 띠며 액셀을 밟는다.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서.


그런데 이런 지금의 평온함이 어찌 하루아침에 이뤄졌겠는가.


주차할 걱정에 길을 나서지 못한 적도 있었으며, 좌회전 신호 후 바로 우회전해야 할 때 어떻게 차선 변경을 해야 할지, 얼마나 재빠를 수 있을지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이드미러에서 뒤 차가 어느 정도 달려와야, 어느 정도의 간격을 두어야 차선을 바꿔도 안전할지. 주차장에서 어떻게 옆 차를 건드리지 않고 나갈 수 있을지. 후진 주차 시 어떻게 후진을 자유자재로 전진하듯 핸들을 조작할 수 있을지. 운전석에서 사이드미러와 백미러의 정보를 어떻게 다 받아들일 수 있을지. 등등


도로를 달리다 보면, 나의 그랬던 시절이 불쑥불쑥 떠오른다.

도로에는 그런 나의 미숙함이 곳곳에 묻어있다.


참 빠르게도 성장한다. 운전이 인생과 똑같다더라, 하고 말하진 못하겠다. 사실 운전이 인생보다 쉬우니까.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이만큼의 속도로 성장하지는 못하겠지만, 운전도 인생의 일부이니, 일부가 성장한다면 전부도 어느 정도 성장하는 것 아니겠나.


도로에서 길을 잘못 들어서도, 기껏해야 몇 분 느려질 뿐이다. 조금 더 직진해서 유턴해서 돌아오면 그만이다. 좌회전 신호를 받아야 되는데 또 직진 차선에 서버렸다면, 일단은 직진을 하면 된다. 흔한 말로 길은 어디로든 이어지니까.

운전을 하며, 내 인생을 이렇게 대입해보곤 한다. 시간이 걸려도 다른 길을 조금 타더라도 가긴 가는 거야. 그리고 아무리 액셀을 밟아도 5분 정도 빨리 갈 수 있더라. 조바심을 안고 5분 빨리 도착하느니 편안하게 갈란다!


문득, 이제 운전이라는 분야에서 1부 능선을 넘어섰다는 생각이 든 건, 더는 목적지로 떠나는 과정에서의 고민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티맵에 검색을 해본 다음, 내가 갈만한 동네인가 고민하는 시간 말이다. 이제는, 목적지만 찍고 별말 없이 달려간다. 별일 아니더라. 이제는 소요시간을 중점으로 본다. 밤 운전하듯 차분한 마음으로 길을 따라가다 보면 도착해있더라.


초보들이여 결국 잘하게 될 테니.

떠나라.





오늘은 매번 타고 이동만 했던 차를 씻어주러 다녀왔다. 이용자에서 주인의식을 가진 동반자가 되었다고나 할까.


스노우폼을 쏘고, 때가 벗겨지기를 기다린 다음, 스펀지로 박박 문질렀다. 그다음 고압건을 쏘며 거품을 씻어냈다. 고압건은 강한 힘만큼 방아쇠를 잡을 때마다 나를 뒤로 밀어냈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을 온몸으로 느껴가며 서툰 몸짓으로 거품을 씻어냈다. 그다음, 에어건을 이용해서 물기를 닦아내려고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물기를 제거하고 있는데, 물기가 사라지지 않길래(대충 하고 마른 수건으로 닦으면 되는 일이었다.) 또 결제를 하고 에어건 사용시간을 늘렸다. 그런 일의 반복이었다.


세차가 처음이다. 손에 익지 않은 일. 동선도 꼬이고, 그래서 돈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내 모습이 좋다. 다음엔 더 능숙해질 테니까. 예정된, 미래가 보장된 미숙이다.


마른 수건으로 반쯤 남은 물기를 쓱싹쓱싹 닦아냈다. 차문을 열어, 문틈 사이를 박박 문질렀다. 더러워진 수건만큼 마음이 씻겨진다. 반들반들해진 차를 바라보는데, 잘 씻겨놓으니 참 이쁘고 그걸 해낸 나 자신이 뿌듯하다. 세차를 함께하고 나서야 비로소 차에 대한 깊은 연결감, 유대감이 생기나 보다. 나도 모르는 새에, 군데군데 상처가 많았던 친구였다. 이 상태를 잘 유지해야겠다는 결심과 함께 공동체가 되었다.


발 패드를 분리해내어, 기계식 세탁기에 넣고 물세탁을 한다. 30초가 남길래 건조를 시작했는데, 그새 30초가 지나고 발 패드는 기계식 세탁기에 갇혀버렸다. 어쩔 수 없이 또 추가 결제를 하고 나머지 발 패드를 다 말리니 또 1분이나 남았다. 아무래도 다음엔 첫 결제 시간 내에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초보 비용이 좀 들었다.


잘 건조된 발 패드를 다시 차에 끼워 넣는다. 아무래도 이제는 신발을 벗고 타야 될 것 같다. 그만큼 세차를 하기 전과 하고 난 다음의 온도차가 크다. 예전에도 함부로 한 건 아니었지만, 이제는 더 귀한 마음으로 차를 대한다. 더 철저하게 신발에 묻은 흙을 털고 차에 오른다. 세차를 하며 소중해졌다.


운전으로 넓힌 나의 반경.

어디까지 나를 데려가 줄 지 기대되는.


같이 성장해가는 '차'와의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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