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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Jan 21. 2021

나는 아직도 나를 잘 모른다

일상의 흔적 127

1월 19일, 여전히 제주제주한 날씨. '나'로 산 지 30년, 오래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나를 100% 알 수 있을까?

기분 좋은 하루다. 날도 좋았고 고객사 인터뷰 일정까지 수월하게 조율되어 행운 가득한 날이었다. 어느 정도 쌓였던 일도 천천히 마무리되고 여유로운 업무시간을 보냈다. 한낮의 햇살이 따뜻해 살짝 잠이 올 것 같은 점심땐 주변 해안가까지 산책도 다녀왔다. 여유롭고 느긋한 하루, 오늘은 행운이 밤까지 이어져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았다. 긴 겨울밤, 잠들 준비 하면서 지인과 전화를 했다.


소소한 하루의 일상을 나누던 중 지인이 물었다. '남들이 얘기해준 것이 아닌, 내가 생각하는 내 매력 3가지'에 대해 말할 수 있냐고 했다.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실 처음엔 내 입으로 스스로를 칭찬하는 문장을 꺼내놓는 게 부끄러웠다. 제일 처음 든 감정은 '당황'과 '어색', '부끄러움'이어서 지인에게 먼저 말해달라고 순서를 넘겼다. 막힘없이 3가지 매력을 언급하는 지인이 신기했다.


지인이 말한 매력 3가지는 내가 생각해도 인정하는 장점이었고, 본인의 매력을 잘 알고 부끄러워하는 기색 없이 담담하게 말하는 목소리가 나에겐 어쩐지 생소했다. 내 매력에 대해서도 좀 더 생각해보고 싶었지만 사실 잘 떠오르지 않았다. 흠,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처럼 무던한 것? 어떤 이야기든 잘 들어주는 점? 생각이 단순해서 잘 자는 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있었으나 명확하지 않아 말하지 못했다.


스스로를 아껴주고 소중히 대하라며 다른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날리고 본인도 모르는 장점을 찾아 우쭈쭈를 잘해주는 나인데, 정작 스스로를 돌아볼 줄 몰랐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송송'을 만난 지 30년, '나'로 산 지 30년이지만 여전히 난 나를 모른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나에 대한 숨은 면까지 돌아보려고 애쓴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나'로 살아가는 것은 어렵다.


내일 출근을 위해 통화를 끝내고 고요한 어둠을 마주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나보단 다른 사람의 기호를 맞추는 것에 익숙했다. 더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날도 있었고 바쁜 부모님을 이해해야 하는 날들도 꽤 있었기에 내 기호보다는 다른 사람의 기분과 관심을 더 살폈었다. 하지만 엄마를 닮아 적당히 성깔과 고집을 부릴 줄 아는 어린이였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희생은 전혀 아니었다. 그저 선택지에 내가 싫은 것이 없으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는 태평한 태도가 있었을 뿐이다. (물론 다소 귀찮았던 마음도 한 스푼)


성인이 되어 온전히 내 세상이 만들어지고 나서야 나를 제대로 마주볼 수 있었다. 나에 대해 알고 싶어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어떤 음식과 향을 좋아하는지,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어떤 분위기의 자연을 좋아하는지, 어떤 여행을 좋아하는지, 어떤 꽃을 좋아하고 어떤 걸 할 때 가장 기분 좋은지, 어떤 일이 왜 하기 싫은지, 다양한 경험을 하며 나에 대한 빈칸을 채워나갔다.


그렇게 내 취향은 파악했는데 내 장점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스스로를 사랑하지만 어쩐지 다른 사람에게 나를 어필하는 건 부끄럽다. 늘 내 눈에만 내가 사랑스러운 거 아닐까 하는 쭈구리 같은 마음이 튀어나와 칭찬을 막는다. 뒤척뒤척 한번 시작한 생각은 꼬리를 물고 길어진다.


흠, 생각해보니 내 매력 중 가장 확신할 수 있는 건 단순함 아닌가. 어떤 일이 벌어져도 흐르는 대로 태평하게 상황을 보는 여유로움. 이런 끝 모르는 고민은 별로 내 취향도 아닐뿐더러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보다 더 오랜 시간이 흐른다고 해도 본인을 100%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여전히 나는 어렵고 모를 존재다, 늘 변하니까. 언젠가 나도 당당하게 내 매력 쯤은 줄줄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일단 오늘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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