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삶 4
엄마와 종종 고향인 충주에 갈 때가 있다. 엄마의 본산이 월악산이기 때문에 기도하러 가는 길에 들려보기도 하는데, 우리끼리 갈 때는 꼭 할머니, 할아버지 묘에 들려 인사를 남긴다. 고향인 이곳이 많이 바뀌어도 그때 추억이 진하게 남아서 길가다가 엄마의 반가운 외침과 옛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이제는 많이 바뀌어 옛 모습이 거의 남지 않았어도 엄마의 눈엔 옛 시절의 모습이 진하게 떠오르는 듯하다.
그중 호암 저수지를 지날 때면 엄마가 항상 할아버지와의 낚시 이야기를 나눈다. 할아버지는 낚시를 좋아해서 자주 나가곤 했는데 비린내가 싫었던 할머니가 낚싯대를 다 꺾어버리곤 했다고 한다. 이런 할머니의 기세에도 아랑곳없이 새 낚싯대를 사 엄마까지 데리고 낚시를 가곤 했는데 주로 붕어나 잉어 등 민물고기였고, 잡은 즉시 손질해서 엄마 입에도 넣어주곤 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딸 다섯 중 넷째를 가장 애지중지해서 꼭 데리고 다니곤 했는데 엄마 생각에는 아마 할머니의 잔소리를 줄이기 위한 방패였던 것 같다고 한다. 낚시를 떠나 돌아올 때면 꼭 저수지 주변에서 팔던 딸기나 과일 등을 사서 딸들과 할머니에게 뇌물로 주었다고 한다. 흥 많고 술도 좋아하는 할아버지는 기분 좋게 술 취한 날이면 동네 어귀에서 파는 통닭을 꼭 사 왔는데, 기름지고 고소한 냄새에 하나둘씩 일어나 마루로 모였었다고 한다.
기름이 다 배여서 투명해져 있는 누런 종이를 떼어가며 통닭을 기분 좋게 먹고 잠을 자려고 하면 할아버지는 가장 노래를 잘하는 딸에게 용돈을 주겠다며 꼭 노래를 시켰다고 한다. 배부르고 기분 좋아진 딸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재잘거리며 노래를 하면 이마에 착! 용돈을 붙여주며 껄껄 웃었다고 한다. 흥 많고 호탕했던 할아버지의 웃음과 딸 다섯의 재잘거림은 지금도 엄마의 기억에 자리 잡고 있다.
손재주 좋던 할아버지는 딸들을 위해 집에 장미부터 앵두 등 수많은 꽃을 심었다고 한다.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을 딸들의 방 둘레에 심어 사계절 동안 환하게 빛났다. 그 시절 남자들보다 더 기골도 장대하고 멋쟁이였던 할아버지는 이런 귀여운 방식으로 딸들을 향한 사랑을 표현했다. 장미 넝쿨을 딸들 방으로 올라가도록 꾸미며 할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한적한 낚시터에서 잡아 올린 물고기의 싱싱한 맛, 포근한 아버지의 품에 안겨 집에 가는 길에 샀던 딸기의 달콤한 맛, 밤중에 졸린 눈을 비벼가며 호호 불어 먹던 통닭의 고소한 맛, 재잘거리는 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호탕하게 웃으며 이마에 붙여주던 500원짜리 지폐, 창문을 열면 예쁘게 빛났던 장미. 오랜 추억 속에서도 엄마의 기억에 소중하게 간직된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