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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소비자 좀 그만 울려요.(2)

산후조리원에 대한 단상

by BAEK Miyoung Mar 16. 2025

두 번째 소비. 산후조리원 예약건에 대하여


요즘 대부분의 산모들은 출산 후 향하는 곳은 집이 아닌 산후조리원이다. 이제는 그것이 특이한 사례라고 할 수 없는, 일반적인 절차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다. 그럼에도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가족 내 의견이 분분하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것을 아주 일반화하기에는 아직 이른 일인지 자문하게 되기도 한다. 지난 출산으로 반추해 보면, 물론 내 경우 나와 남편이 기거하는 집이 한국에 없다는 특수한 상황임을 감안하고서라도 출산을 한 산모에게 산후조리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의견에 이견은 없다. 출산 후 산모가 몸을 회복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아이를 돌보는 법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 출산 이후 일정 기간 산모와 아이를 24시간 케어해 줄 가족 구성원이 대부분 없다는 점에 있어서 그러하다. 더구나 요즘은 출산 연령대가 예전에 비해 많이 높아져 산모가 몸을 회복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함은 물론, 남편 이외에 산모 가장 가까이에서 그를 돌봐줄 수 있는 친정 부모님의 연령대도 높아졌으니 결국 가정 내에서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타인과 기관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어졌다. 얼마 전 생일이 지나 만 39세의 산모가 된 지금, 솔직히 출산 이후 내 몸이 얼마큼 상할지 벌써부터 두려워질 때가 많다. 물론 이러한 우려는 나뿐 아니라 내 삶의 동반자, 남편 역시 비슷하게 지니고 있다. 누군가 연애를 글로 배운다고 했던가. 결혼 전 남편은 여성의 임신과 출산 과정에 대해 책으로만 알음알음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자신이 보았던 책 '대지(저자:Pearl Buck)'를 인상 깊게 본 남편은, 책 속 여자 주인공이 집에서 홀로 아이를 낳고 곧장 농사를 짓는 모습을 인상 깊게 보게 된다. 그래서 첫 임신 당시 내가 몸을 사리는 것을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다. 남편은(밭일을 하지는 않더라도) 임신한 여성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임신은 유산으로 끝났고, 두 번째 임신은 하혈과 양수 누출로 내가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후에야 남편은 임신이라는 것이 책에서 나오는 그것과는 아주 다른 일이라는 것을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임신뿐 아니라 아이를 가진 모든 가정, 그리고 아이를 가지게 될 모든 가정이 임신과 출산에 있어 각자의 사정과 어려움이 따른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했다. 이렇게나 삶에 있어 직접적인 경험이 중요하다. 이후로 남편은 산모가 몸을 사리는 것, 몸을 보호하는 것, 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 어떠한 토도 달지 않을 뿐 아니라 전적으로 산모의 상황과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산후조리원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출산 후 반드시 가야만 한다는 것이 남편의 의견이다.

 

병원 근처에 있는 산후조리원을 알아보기 시작한 건 임신 10주 차에 들어설 무렵이었다. 정보들을 검색하면서 나는 약간 충격을 받았다. 해운대 부근에는 생각보다 산후조리원이 몇 없었기 때문이다. 해운대뿐 아니라 부산 전체에 산후조리원의 숫자가 많지 않았다. 부산에 젊은 인구가 유출되고 전체 연령대가 높아졌다는 말이 괜한 염려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병원 직속 산후조리원은 없어 최대한 가까운 장소로 알아보려니, 내가 고려할 수 있는 장소가 2~3곳 밖에 되지 않았다. 지역을 넓혀 차로 30분 내로 이동할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해 보아도 적당한 장소가 많지 않았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게다가 두 번째로 충격적인 부분이 있었으니 그것은 비용이었다. 2주 기간 동안 일반실에 머무는 가정하에 보통 300만원~400만원 이상의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무슨 VIP급으로 예약을 하려면 돈 천만 원이 우스웠다. 이러나저러나 내가 예상했던 가격에 비해 턱없이 높은 가격이었다. 언니의 추천으로 알아보게 된 산후조리원의 경우, 비용이 얼리버드 할인을 받는다고 해도 400만원 이상이 든다고 했다. 그 사실을 듣고 깜짝 놀란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곳을 추천해 준 언니도 가격을 듣고 크게 놀라워했다. 그곳은 언니가 첫째 조카를 출산했을 당시 알아보던 산후조리원 중 한 곳으로, 당시(2016년)만 하더라도 2주에 200만원이 채 되지 않는 비용을 안내받노라 했다. 2016년과 2025년, 9년 사이 전반적인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같은 건물, 같은 서비스를 제공받는 가격이 2배 이상 오르게 된 것은 수상쩍은 일이었다. 그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게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나라에서 지급하는 임신출산지원금의 유무이다. 언니가 출산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첫 만남이용권' 제도가 없었다. 해당 제도는 출산을 한 모든 가정에 200만원 상당의 바우처를 제공하는 출산 장려 정책 중 하나로, 2022년에 신설되었다.(둘째 출산의 경우 300만원.) 그러니까 국가에서 제공받는 바우처를 활용하면200만원가량 상승한 산후조리원 비용을 개인적인 부담이 없이 충당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첫 만남 이용권 제도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첫 만남이용권은 출산 시 최초 1회로 지급되는 바우처로 정부에서 출산 축하 및 초기 육아비용을 지원하기 위해서 국민행복카드로 사용할 수 있는 지원금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생필품을 포함한 아동 양육에 필요한 의복이나 식료품, 가구 등의 물품을 정부 지원금으로 결제 가능한 유통점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 가능하다. 다만 결제 시 할부나 정기결제는 이용하실 수 없으며, 유흥·사행 업종 등 업종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_출처: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


그러니까 첫 만남 이용권은 출산 직후 가정 내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양육 비용에 보탬이 되고자 만들어진 제도라는 것이다. 아이의 기저귀를 사고, 분유를 사고, 아기 용품을 사는데 주저하지 말라, 격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원금이라는 것이지 산후조리원 비용으로 홀랑 쓰라고 만들어진 비용 같지는 않아 보인다. 산후조리원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앞서 일장연설을 했으니, 산후조리원에 해당 바우처를 사용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적정 수준도 아닌, 책정된 지원금만큼 산후조리원의 가격이 나란히 상승한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기껏 만든 정부의 지원금이 도대체 누구의 이익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일까. 모르긴 몰라도 이렇게 사용하라고 만들어진 제도는 아닐 것이 분명하다.


조리원 가격 탓에 한참 시무룩해있던 차에 얼마 전 뉴스에서 본 공공산후조리원이 떠올랐다. 공공산후조리원이란, 민간 산후조리원이 부족한 지역 산모들의 불편 해소와 장애인 등 취약 계층, 다자녀 가정 산모·신생아의 건강 증진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관련 정보를 찾아보는데 세상에 마상에...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인 부산에는 공공산후조리원이 없다! 정책적으로 고려된 적도 있었던 모양이지만 전반적인 저출생으로 크나큰 적자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유야무야 없던 일이 되었다고 한다.(왔더...?) 산후조리원에 꼭 가야 하나, 이제는 나 스스로 반문하게 된다. 일주일이 넘도록 다른 궁리도 해보고, 더 저렴한 조리원도 물색해 봤지만 솔직히, 이번에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나는 그것을 필요로 하고 다른 선택지는 없으니- 아이패드를 구매했을 때처럼, 또 철저하게 항복하는 소비자가 되어야만 한다.

처음 알아보았던 산후조리원에 전화를 해 예약을 하고 예약금을 보냈다. 이후로도 마음이 놓이거나 즐겁지가 않다. 못내 필요치도 않은 사치를 부린 사람인 것 마냥 자꾸만 쪼그라드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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