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AEK Miyoung Sep 16. 2015

단편 <너무 소중했던, 당신> 작업기_#16(2)

영화제와 첫 시사회. 이제 마침표. 

 여성영화제 이후 <너.소.당>은 세계 곳곳에서 열린 영화제로 여행을 떠났다.


- 서울국제여성영화제&옥랑문화재단 2012

- 인디애니페스트2013 

- Animated Eden in Penrith 2013, 영국

- Belo Horizonte International Short Film Festival 2013, 브라질

- KDIAF Kuandu International Animation Festival 2013, 대만

- Hermosillo’s International Film Festival in Sonora 2013, 멕시코 

- CINEMED International Mediterranean Film Festival in Montpellier 2013, 프랑스 

- Film Festival on gender equality "Women on stage" in Malaga 2013, 스페인

- International Festival of Animation Arts "Multivision" 2013, 러시아

- Golden Orchid International Animation Festival 2013, 미국

- PISAF 2013

- Alcine ShortLatino Film Market in Madrid 2013, 스페인

- Up-and-coming Film Festival in Hannover 2013, 독일 

- BUtiful Young International Film Festival 2013, 영국

- Forum des Images in Paris, 프랑스

- Future film festival 2014, 이탈리아

- International Children's Film Festival 2014, 폴란드

- Trois Jours Trop Courts 2014, 프랑스


덕분에 나도 직접 가보지 못한 곳곳을 내 영상은 가게 됐다. 그곳에서 나 대신 여러 사람들을 만났을 것이다. 


 2013년 10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Sedicicorto(세디치코르토) 영화제 역시 <너무 소중했던, 당신>이 참여했던 영화제 중 하나였다.


앙굴렘 떠나기 직전, 이곳에 참석하기 위해 이탈리아 볼로냐 근방 Forli로 갔다. 작업실과 앙굴렘 집 정리로 일정에 무리가 가긴 했지만 이번처럼 그리 큰 규모의 영화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참여 감독에게 숙소와 이동 경비를 지원해주는 영화제는 흔치 않기도 했고, 프랑스-이탈리아는 그리 먼 거리도 아니니 이때가 아니면 언제 또 이탈리아 영화제에 참석해보나 싶은 마음에 내린 결정이었다. 

저가항공기를 타고 파리 보배공항에서 볼로냐로 궈궈~
볼로냐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해가 진 밤이었다.

볼로냐에 내리자 이미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볼로냐에 마중 나온 영화제 측 차를 타고  1~2시간가량 Forli로 이동했다. 숙소에 내려 잠을 청한 뒤 다음날 아침 움직이기로 한다.

주최측에서 받은 식권과 영화제 팜플렛+ID카드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다.
영화제가 열리던 장소 안내판.

 날씨가 나빠 생각처럼 막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주최측이 나눠준 지도와 팸플릿을 참고해 더듬더듬 행사장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Forli는 그리 낡지도 새롭지도 않게 적당히 고즈넉하고 아담한 도시였다.


 영화제는 유럽 쪽에서 만들어진 단편영화들을 주로 상영하고 있었다. 그리 많이 접하지 않은 단편 영화들이 어려우면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텍스트보다 영상의 흐름- 이미지 만으로도 영상을 읽을 수 있어 생각보다 훨씬 보기 편했다. 참신하고 재미있는 영화들이 많아 단편 영화를 보는 묘미를 새삼 알게 됐다.


 매일 저녁~밤 늦게 이뤄지는 상영 때마다 사람들이 상영관을 가득 메웠다. 

 섹션 상영 전 상영관.

나처럼 외국에서 참석한 감독이 그리 많지 않았던 터라 영화제 기간 동안 여러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졌다. 

엄.. 물론 이런 공식 인터뷰자리는 예상밖이라 당황당황..;;; 

 개인적으로 기꺼이 즐길 수 있었던 영화제 중 하나였다고 기억한다. 

스텝들은 영화제 내내 열정적이었고 또 사려 깊었다. 낯선 외국인 감독을 위해 그들만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주는 모습이 늘 감동이었다. 유머러스한 이탈리아 스텝들과 의미없이  주고받던 농담도, 영화를 사랑하는 그 지역 젊은 감독들과 서툰 불어와 영어로 이야기를 나눴던 것도, 또 독특한 풍미의 이탈리아 커피와 허름하지만 진짜 맛있었던 동네 젤라또 가게 역시 즐거운 추억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과 이 영화제를 쭉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그곳 '사람들'을 엿볼 수 있었던 시간 속에서 나도 모처럼 감독으로써  온몸으로 영화제를 즐길 수 있었다.  



 앙굴렘을 떠나 귀국 전까지는 파리의 한 민박집에서 머물기로 했다.

프랑스 = 파리

인데, 내게 '파리'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잠시 들르는 공간인 경우가 대부분 이었다. 아마 일반 여행객들보다 파리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귀국 전에 '레알 빠리'가 무엇인지 알아볼 요량으로 그리 일정을 잡았건만, 실상은 그곳에서 주는 음식 잘 먹고 잘 자고  그저 푹 쉬다가 한국으로 와버리고 말았다. 멀어진 나의 '레알 빠리'체험기여..


 파리에 머무는 동안 프로덕션이 있는 Saint Laurent le Minier에 다녀오기로 했다. 프랑스 남부 Montpellier 근방의 도시. 차로만 방문 가능한 외진 도시라 그간은 메일로만 프로덕션 사람들과 소식을   주고받아왔다. 귀국 전 스튜디오 사람들도 직접 보고 또 이 기간에 맞춰 프로덕션에서 <너. 소. 당>의 시사회를 함께 열어주어 겸사겸사 그리로 가게 됐다.     

     

화려한 빛깔의 몽펠리에 트램

몽펠리에 기차역에서 차를 타고 산 건너 물 건너 구비구비 길을 돌자 프랑스에서 흔치 않게 높은 산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도착 후 차에서 내려 제일 처음 만난 풍경은 한 뼘짜리 광장에서 공을 차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흡사 6,7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낡은 영화를 보는 듯한 위화감이 들 정도로 이토록 작은 동네를 와본 건 처음이었다.                                                                                                                                             

광장에 세워져있던 동상

 

 프로덕션 사람들과 처음으로 얼굴을 맞대고 인사를 나눴다. 이 도시에서 30년 넘는 시간 동안 명맥을 이어온 애니메이션 프로덕션 'La Fabrique'. 메인 프로듀서인 '자비에'와 배급을 담당하는 그의 부인 '온나', 그리고 사무 업무를 보는 '바이올렛' 세 사람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내가 여기를 방문한 첫 '한국인'이 아니냐 물었더니 예상외로 두 번째라는 대답을 들었다. 첫 번째 한국 방문객은 놀랍게도 북한 애니메이터였다고.


 함께 저녁을 먹고 나는 스튜디오 옆에 딸린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다. 다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사방에 가로 막힌 산 때문에 전화 신호조차 잡히지 않은 이곳에서 홀로 밤을 보내게 됐다. 무섭다거나 하는 느낌 전혀 없었다. 되려 마을을 쭉 타고 내려오는 얕은 시냇물 소리가 청아하게 공간을 매우는 느낌이 싫지 않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동네를 한바퀴 쭉 돌았다.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져 있어 해가 늦게 뜨고 또 일찍 지던 곳.
아침. 아직 꺼지지 않은 가로수.
마을의 작은 골목. 마을에 하나뿐인 빵집에서 빵도 사먹었다.


저녁 시사회 전까지 시간이 있었고 그 전에는 마을 여기 저기를 돌며 사진도 찍고 산책도 했다. 시냇가를 따라 짧은 돌다리들이 멀지 않은 간격으로 놓여 있는 게 인상 깊었다. 낡아 보였지만 세월에 빛바래고 귀퉁이가 무뎌진 돌다리의 모습이 그곳의 풍경과 꼭 들어맞았다. 

 

오래된 돌다리.
예쁜 하늘색 문과 붉은 덩쿨.


이런 장소에 몇십 년의 역사를 간직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해마다 애니메이션에 열성인 학생들이 방문을 오거나, 프로젝트별로 애니메이터들이 내가 머물렀던 그 방에서 숙박을 하며 작업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몇십 년간 그분들이 직접 제작에 참여한 영상과 자료, 오래된 작화지와 애니메이션 제작 기구들은 그곳의 산 역사가 되어 공간 곳곳을 채우고 있었다. 그 열정이 정말 반짝반짝 빛이..났다. 

                                                                                                                                                                                     

프로덕션에서 지내던 고양이. 이름이 '미네'였던 걸로 기억되는데 정확치 않다. 애교 많던 이 냐옹이는 잘 지내고 있을까.
프로덕션쪽 돌다리만 조금 독특했다. 프로덕션  2층에서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 좀 더 사진을 많이 찍어왔었더라면 좋았을텐데.


2013.10.19
그날 저녁, 회사 식구들과 함께 자비에의 차를 타고 바닷가 옆  CinéPlan영화관으로 갔다.  바다 갯벌 쪽에 특이하게도 홍학떼가 무리 지어 앉아 있었는데 그 경관이 정말 대단했다. but 이 어리석은 자는 그것을 사진으로 남겨오지 못하고 말았다.(멍청한 녀석 같으니!!) 

  CinéPlan영화관은 독특하게도 내부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커다란 창이 나 있었는데, 영화 상영이 시작되면 검은색 발을 내려 빛이 가려지게끔  설계되어있었다. 그곳에서 <너무 소중했던, 당신>과  EMCA재학 중 만든 <고래>, <늪;꽃을 사랑한 어느 새 이야기>이 함께 소개되는 상영회가 열렸다. 나처럼 소규모 필름을 만드는 사람에게 이렇게 여러 작품을 동시에 선보일 수 있는 자리가 주어진다는 게 그리 흔치 않은 일이라 상영 내내 몹시 떨리고 흥분됐다. 많진 않지만 자리를 채워준 그 지역 주민들과 애니메이션 관련 작가들과도 조우할 수 있었던 멋진 순간. 아쉽게도 이 순간을 남긴 사진도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아마 프로덕션 쪽에서 찍은 사진이 있었을 테지만 그것도 확실치는 않다. 아마 앞으로도 영영 이 사진은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상영 후 관객과의 짧은 대화를 끝내고 사람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찍은 사진은 다행히 남아있다. 따뜻한 공기로 가득했던 저 시간들을 오래 오래 맘에 새겨두고 싶다. 

온나와 플로렌스
영화관 관장님과 프로듀서인 '자비에'

 


 다음날 바로 파리로 가는 기차를 탔다.


며칠 더 지내다 가라던 자비에의 제안은 다음으로 미뤘다. 다음 만나게 되는 곳은 프랑스가 아니라 한국이 아닐까-라며 뚜렷하진 않지만 '꼭 있을 다음'을 기약했던 게 생각난다. 서둘러 파리로 돌아왔던 그 길 이후 12월, 자비에는 갑작스런 심장 마비로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향년 48세. 마음 벅찬 만남 이후 갑작스러운 헤어짐이 내게도 큰 충격이었다. 이후로도 프로덕션과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다. 갑작스러운 비보 이후 스튜디오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아졌을게 자명했다. '온나'는 되도록 프로덕션을 예전같이 꾸려나가기 위해 애쓰고 있었고 내게 배급 관련해서도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진행할 거라 전해왔다.


 작년 6월에 프랑스 Annecy Animation festival에는 지난해 작고하신 애니메이션계 큰 별들을 추모하기 위한 특별 섹션이 마련되어졌다. 자비에 역시  그중 한 '별'이었고, 그의 추모작으로 <너무 소중했던, 당신>이 상영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많은 작품들 중에 왜-, 라는 물음에 평소 자비에가 많이 좋아했기 때문에-라는 답변을 온나로부터 들었다. 그 말이 많이 감사했고 또 많이 서글펐다.  


 프로덕션 쪽과는 작년 이맘때 이후 완전히 연락이 단절되어 버렸다. 작년 Saint Laurent le Minier 마을에 거대한 홍수가 들이닥쳤고 그로 인해 마을을 관통해 흐르던 시냇물이 범람해 돌다리는 물론 주변의 건물, 마을의 전체가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프로덕션 건물 역시 일부가 파손되었고 각종 중요 서류와 기기들도 범람한 물과 함께 떠내려갔다는 소식을 끝으로-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받은 메일 속에는 홍수로 인해 처참하게 변한 마을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그곳에 더 이상 예전에 사진 속에 담았던 소담스러운 마을의 모습은 없었다. 한동안 내 마음 역시 검은 잉크가 물 속에 번지듯 스물스물 어둠으로 번져갔다.


삶은 그렇게 이율배반적이다.

아름다움에 취한 순간 날카로운 가시들이 살을 파고든다. 


그 후로 <너무 소중했던, 당신>의 배급도 어떻게 이뤄지고 알 길이 없었다. 급한 대로 몇몇 영화제는 내가 직접 배급을 하기도 하고 그를 통해 한국에 있는 영화제에 참석하기도 했지만 성과가 그리 크지는 않았다. 작년 연말 네이버 측의 제안으로 네이버 TV캐스트 개인 채널을 만든 것 이후로 <너무 소중했던, 당신>의 공식 일정은 끝이 났다. 

네이버 TV캐스트 채널 http://tvcast.naver.com/miyoung



 2년 반 직접 작업을 했던 시간보다, 그 이후의 시간들을 견뎌내는 게 훨씬 힘들었다고 기억한다. 이제 내꺼라고 꼭 끌어안고 있던 것을 바닥에 내려 놓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 내 것으로만 두고 싶어 떼를 쓰기도 했지만 이제 더 이상 이 영상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이것을 보고 단 몇 명이라도 즐거움과 행복을 느꼈다면, 내가 오랜 기간 작업을 통해 꿈꾸고 바랐던 것이 이뤄진 것이라 여긴다.




 <너무 소중했던, 당신> 작업기는 여기에서 끝을 맺습니다.   

 글의 말미가 생각보다 씁쓸해진 것이 혹 이 작업기에 애정을 가졌던 분들께 폐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모자란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

 


 

 

 

이전 18화 단편 <너무 소중했던, 당신> 작업기_#16(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