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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urbet Aug 19. 2018

내 심장은 기억하고 있다

포트투갈, 신트라

포르투갈 신트라

내 심장은 기억하고 있다


리스본에 도착하자마자 나의 여행의지를 굴복시켰던 지독한 감기몸살이 하룻밤을 푹 자고나니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작별 인사도 없이 그렇게 떠나버렸던 첫 사랑의 열병처럼, 리스본과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어쨋거나 다행이었다. 난 다시 여행의지가 생겨났다.


이제 어디로 가볼까?  리스본에서의 첫 여정은 말할 것도 없이 날 이 곳으로 떠나게 했던 사진 속의 그 궁전으로 가볼 생각이다. 나를 한 순간에 사로잡아 이 멀고, 낯선 나라 포르투갈로 이끌었던 그 사진 속의 장소. 그 곳은 바로 리스본 근교의 "신트라"라는 도시에 위치한 "페나궁전"이었다. 


리스본에서 약 30km, 국철로 4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에 위치한 신트라는 예로부터 포르투갈의 귀족과 왕족들에게 사랑받았던 휴양 도시였다. 



포르투갈 귀족들의 휴양지, 신트라



그런 까닭에 옛 포르투갈 왕족의 별궁과 귀족들의 휴양 별장들이 모여 있기도 하다. 신트라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한 영국의 시인 바이런은 신트라를 "에덴동산"이라 극찬했다고 한다. 페나 궁전은 이 아름다운 신트라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해발 450미터의 산 정상에 자리잡고 있었다. 


신트라 역에 내리니, 역 바로 앞에서 페나 궁전까지 이동하는 셔틀버스가 있었다. 셔틀버스는 아직 고요한 마을의 아침을 깨우지 않으려는 듯, 유유히 마을 골목을 빠져 나와 꼬불꼬불 산길을 올라간다. 


산 정상을 향해 빙글 빙글 돌아 약간의 현기증마저 느껴지려 할 때 쯤, 드디어 눈 앞에 알록달록 원색의 조화가 밝게 빛나는 페나 궁전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때 마침 구름 사이를 헤치고 나온 햇살은 페나 궁전을 환하게 비춰주었고, 구름은 스스로 물러날 때를 아는지 시나브로 사라지고, 그 뒤로 숨어 있던 파란 하늘이 멋진 배경으로 남게 되었다. 


하얀 도화지에 빨강, 파랑, 노랑의 삼원색 물감으로 동화 같은 그림을 그려 놓은 듯, 페나 궁전은 하늘과 맞닿은 그 정상에 마치 그림처럼 그렇게 우뚝 서 있었다. 


동화속에 나오는 배경은 모두 작가의 상상력에서 나온 허구일 뿐이라 믿어 왔던 나의 고정 관념이 완전히 깨져버린 순간이었다. 작가의 상상력 역시 별나라가 아닌, 인간의 현실 속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이 분명해지는 순간이었다. 



동화 속 그림 같은 궁전




페나 궁전은 독일의 루트비히 2세의 사촌, 페르디난두 2세가 독일의 건축가들을 포르투갈로 불러들여 지었다고 한다. 독일의 루트비히 2세는 현존하는 유럽의 성 중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퓌센의 노이반슈타인 성을 지었는데, 아마도 두 사촌 간의 미적인 취향이 매우 남달랐던 모양이다. 


그렇게 지어진 페나 궁전과 노이반슈타인 성은 현재까지도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으로 손꼽히고 있으니, 이 둘이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동화속의 배경은 세상에 없는 허구일 뿐이라고 믿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페나 궁전에 오르려면, 셔틀버스에 내려서 가파른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야 한다. 평소 운동이 부족한 탓에 다리에 힘이 빠지고, 숨이 턱턱 차오르지만, 별 수 없다. 그냥 꾸역 꾸역 한 걸음씩 올라가는 수 밖에. 


그렇게 오르다보면, 어느 순간 페나 궁전의 망루에 오르게 되고, 이 곳에서는 신트라를 너머 광활한 대지를 지나 저 멀리 대서양까지 이어지는 광활한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내 심장은 기억하고 있다



덜컹 덜컹 철로 위를 달리 듯, 가슴이 쿵쾅 쿵쾅 울리기 시작했다. 

'아, 이 울림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설렘, 놀람, 감탄, 벅찬 감동?  아 도대체 모르겠다. 단지 이 순간이 너무나 아름다울 뿐이다. 


인간은 본래 순간 순간의 아름다움에 감동하며 살아왔다. 조그만 일상으로부터, 때로는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자연의 현상으로부터, 그 모든 순간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며, 그 아름다움에 감동하며 살아 온 것이 우리 인간이었다. 


그런데, 자연을 떠나 인류의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오랜 세월 지속되어 온 산업화와 기술의 발전은 인간 본연의 감동으로부터 우리를 멀리 떼어 놓았다. 감성이 메마른 시대, 일상의 감동이 없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현대인들은 과연 행복한가?  


이 아름다운 장면의 울림 속에서 나는 수 십년간 잠자고 있었던 내 안의 감성을 깨워내고 있었다. 그래서, 내 가슴이 그렇게 울리고 또 울렸는지도 모르겠다. 그 후로도 여행은 늘 그렇게 내가 잊고 있던 보물들을 하나 둘 찾아내어 나에게 돌려주는 시간이었다. 



지금 이 순간이 최고다



파란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곳, 페나 궁전.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이 곳이 최고다. 


바로 아래 왕족들의 휴양지였던 에덴동산, 신트라가 있고, 저 멀리 신대륙을 향해 펼쳐진 대서양의 바다가 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동화처럼 예쁜 성, 페나 궁전에 서 있다. 


이 순간의 한 장면, 17시간의 장거리 비행을 거쳐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로 부족함이 없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보았던 그 사진 속의 풍경, 그 이상으로 나는 충분히 감동하며 깨닫고 있으니 말이다.


그 순간, 이보다 더 아름다운 시간은 이 세상에 없을 것만 같았다. 

쿵쾅 쿵쾅, 내 가슴은 여전히 울리고 있었으며, 그 순간의 감동을 내 심장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2006.10

Sintra, Portugal

By Courb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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