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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평 Jun 29. 2020

지금 핫한 앤틱그릇 브랜드/패턴은?

우리집에 있는 이 잔, 소장가치는요?

*주: 헤더와 본문 이미지 중 일부 출처: getty image


이번에는 앤틱수집 생활 20년차에 자주 듣는 질문 몇 가지를 꼽아봤습니다.  몇 가지가 열 가지가 되고, 열 가지가 스무 가지가 되었습니다. 원래 글 못 쓰면 문장이 길어집니다. 어쩔 수 없이 질문을 하나씩 쪼개어 올리게 됐습니다. 송구합니다. 


앤틱그릇을 모으기 시작한 사람, 혹은 이미 상당수 모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소장가치', '지금 뜨는 브랜드' 같은 주제들이 튀어나옵니다. 휴대폰 사진첩을 가만히 보다가 사진 하나를 보여주며 묻습니다. 


"저... 이게 몇 년 전에 소장가치가 있다고 해서 산 잔인데... 지금은 가격대가 얼마에 형성되어 있나요?"

"3년 전에 5만원에 산 잔인데요. 지금은 8만원 정도 할까요?"


[1890년대 생산된 영국 버슬렘(Burslem) 빈티지잔, 개인소장]

그릇을 실사용품이 아닌 골동품으로서의 가치로 평가하는 옥션하우스의 기준과 일반시장의 기준은 다릅니다. 당연히 동양권과 서양권에서 선호하는 브랜드와 패턴의 차이도 분명하고요. '핫한 브랜드나 패턴'을 묻는 질문에는 얼마간은 소장가치에 대한 궁금증도 깔려있을 겁니다. 


좋은 소식과 그닥 안 좋은 소식이 하나씩 있습니다. 매도 먼저 맞는 편이 낫다고, 후자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앤틱그릇의 가치는 매우 완만한 추이로 오릅니다. 소설책의 초판이나 저자사인본, 유명인사의 소장품 같은 경우에는 아이템의 생산자, 소유자에게 특정한 이슈가 생길 때마다 그 가치가 폭증합니다. 노벨상을 수상했다거나, 희대의 사건에 휩싸였다거나, 혹은 그것을 주동했다거나 할 때마다 말이죠. 


한 예로, 웨지우드(Wedgwood)는 영국왕실의 이슈를 모티브로 한 한정판을 꾸준히 선보입니다. 지금은 왕실에서 퇴출됐지만 한때는 인기가 좋았던 사라 퍼거슨 공작부인의 서명을 새긴 그릇도 여러 번 출시했었지요. 공작부인의 서명을 새긴 플로렌틴 플레이트를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왕실 기념일, 로열 웨딩이 있을 때마다 각종 기념접시, 피겨린, 보석함을 제작해서 선보입니다. 하지만 너무 자주 선보이다보니 한정판으로서의 가치가 예전보다 많이 떨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1986년도 기사, 당시의 약혼기념잔은 현재 20~40달러선에 거래되고 있다.]


이렇듯 앤틱그릇이 아이템 외의 부차적인 조건 때문에 그 가치가 오를 경우의 수는 희박합니다. 간혹 그릇회사들이 말 뿐인 한정판이 아닌, 그야말로 '진짜 레어 한정판'을 극소량 생산했다면 이야기는 좀 다르지만요. 문제는 그런 그릇은 이미 새제품일 때부터 고가라는 점입니다. 

[날때부터 비싸기로 으뜸, 로얄코펜하겐 '플로라 다니카(Flora Danica)']

좋은 소식이자 너무도 당연한 소식 하나, '오를 녀석의 가치는 반드시 오른다'입니다. 앤틱그릇의 가치 상승세는 완만하다고 말씀드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곡선의 기울기는 조금씩 높아집니다. 몇 가지 조건이 보태지면 금상첨화입니다. 


a. 현재 단종된 그릇일 것(추가 생산물량이 없을 것)

b. 보존 난이도가 높은 그릇일 것(온/습도에 따른 변화가 크거나, 심한 이형(異形)이어서 파손위험이 높은 것)

c. 애초에 비싼 그릇일 것(빈티지 단계를 지나 100년 이상된 앤틱 단계에 들어서면 대개 최초 판매가를 상회)


실사용 목적으로 빈티지 그릇을 구입하는 분들에게 소장가치를 언급하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 먼 미래의 꿈을 이야기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빈티지/앤틱그릇의 가치상승만으로 수익을 내는 외국의 골동품 가게들을 둘러보면 짧게 잡아도 20년, 길게는 40~50년 이후의 가치를 생각하고 그릇을 매입합니다. 근시일 내에 재고를 털어야 하는 그릇은 '지금의 인기'를 고려해서 매입합니다. 


그래서 저는 굳이 앤틱그릇 가게나 박물관을 열 생각이 아니라면 '소장가치'에 연연하지 말 것을 권합니다. 몇십 년에 걸쳐 느릿느릿 오르는 가치를 노심초사 관망하기보다, 우선순위로 자신의 취향을 고려하는 편이 정신건강에는 훨씬 좋습니다. 그래도 기왕이면 유망주를, 이라고 하시는 분을 위해 현재 앤틱시장에서 핫한 브랜드/패턴 몇 가지를 추려봤습니다. 국내의 빈티지 그릇시장과는 판도가 전혀 달라, 생소한 이름도 있을 겁니다. 그렇구나, 정도로만 참고하시고 혹시 이런 이름이 보인다면 한 번 더 살펴보시면 되겠습니다. 


1. 마졸리카(Majolica) 

1400년대부터 1600년대까지 대유행한 석회질 토기를 가리킵니다. 백색의 바탕, 그에 대비되는 화려한 색감의 페인팅이 특징입니다.  화학성분의 백색 유약으로 표면을 고정시켰는데, 이 성분이 백색을 더욱 돋보이게 했습니다. 마졸리카라는 이름은 스페인의 항구도시 'Maiolica'에서 유래했다고도 하는데, 이곳에서 이탈리아로 자기가 수출됐습니다. 영국에서 마졸리카가 인기를 끈 것은 19세기입니다. 

[마졸리카의 앤틱접시들, 웨지우드도 합류했다.]


특유의 표면처리 방식 덕분에 15세기에 만들어진 마졸리카 접시가 지금껏 원형을 보존한 경우도 많습니다. 경매장에 종종 등장하는 '진짜배기' 앤틱 마졸리카 접시를 보면 그 자체로 예술품입니다. 27cm 크기의 플레이트 한 장 가격이 단번에 300유로까지 치솟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2. 윌로우 패턴(Willow Pattern)

[윌로우 패턴 광고 광고 전단지. 냅킨까지 윌로우!]

국내에는 '블루 윌로우(Blue Willow)'라는 패턴으로 알려져있는데, 실은 '윌로우 패턴(Willow Pattern)'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붙은 이름입니다. 윌로우는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반, 유럽 문화계에 폭넓게 영향을 미친 중국풍 취미 '시누아즈리(chinoiserie)'의 산물입니다. 영국이 이 패턴에 주목한 것은 18세기 후반이고, 이후 스포드(Spode), 민튼(Minton), 처칠(Churchill) 등에서 윌로우 패턴 그릇을 만들어냅니다. 


필수 디테일은 오벌형 프레임, 수변 풍경, 우측에 자리한 정원, 거대한 2층 누각, 아치형의 창이나 입구입니다. 중국에서 내려오는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모티브가 되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중국의 풍경에 영감을 받은 것이 맞고, 이후에 극적인 스토리를 더하기 위해 기원을 얹은 것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생산시기도 길고, 내로라하는 브랜드들이 합류했던 윌로우 패턴은 보통 경매장에 피스보다 컬렉션(collection)으로 올라옵니다. 10~20피스 정도의 소규모 컬렉션이 아닌, 초대형 그릇장에 가득 들어찰 정도의 100~150피스의 컬렉션입니다. 


경매가 열리는 텀이 주기적이고 준비성이 철저한 옥션하우스에서는 평균 정도의 컨디션 체크를 하고 스튜디오 컷을 찍어서 올리지만, 열에 아홉은 트레이에 우르르 쌓아서 랏 넘버(Lot Nubmer)가 적힌 팻말과 함께 테이블 위에 그대로 올라옵니다. 언뜻 보기에는 멀쩡해보이던 윌로우 패턴 랏인데, 막상 낙찰받고 수령해보면 트레이 아래에 데미지 피스가 가득 깔려있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렇더라도 일단 이 패턴이 등장하면 참가자들은 영혼의 눈으로 재빨리 컨디션을 체크합니다. 잘만 하면 아주 오래된 윌로우들을 건질 수 있으니까요.


3. 비스윅 포터리(Beswick Pottery)

[비스윅(Beswick)이 대중화에 성공한 계기, 베아트릭스 포터의 '피터 래빗' 피규어 시리즈]

역시 생소한 브랜드일 겁니다. 1894년에 시작된 비스윅은 각종 피겨린 제작으로 서서히 이름을 알리다가 농장동물 시리즈, 베아트릭스 포터의 '피터 래빗' 피규어 덕분에 빵, 터집니다. 회사 자체는 몇 차례 부침을 겪어서 1960년대에는 로얄 덜튼에 매각됩니다. 피터 래빗 피규어가 덜튼사에서 제작된 것은 이후 비스윅이라는 브랜드 판권이 완전히 매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비스윅의 말 피겨린, 소형]

유명세를 타게 해준 건 피터 래빗 시리즈였지만, 사실 비스윅 포터리가 진가를 발휘한 것은 '농장 동물(farm animal)' 시리즈, 그 중에서도 말입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비스윅의 동물 피겨린 중 말은 그 퀄리티가 독보적입니다. 아주 작은 말 피겨린도 30~40유로, 제 팔뚝만한 말은 400유로까지 올라갑니다. 물론, 덜튼사로 넘어가기 전 시기의 말이 더 비쌉니다. 



4. 앤틱 타일류(Antique Tiles)

[왼쪽, 가운데는 델프트(Delft), 오른쪽 민튼(Minton) 앤틱 타일. 가장 왼쪽은 17세기에 만들어진 타일이다.]


유럽이 동양에 비해 자주 사용하는, 그리고 은근히 신경을 많이 쓰는 건축/인테리어 자재는 바로 타일입니다. 한 가지 타일로 주방을 마감하는 한국과 달리, 외국은 포인트가 될 만한 타일 몇 장을 끼워넣는 편입니다. 이렇게 꾸민 빈티지풍의 주방이 얼마 전부터 다시 인기를 끌고 있고요. 민튼, 빌레로이앤보흐, 델프트 등, 한국으로 따지자면 행남자기, 광주요, 우일요 같은 곳에서 만들어낸 타일 같은 것이 가가호호 붙어있습니다. 


처음 경매 품목에서 '앤틱 타일'이라는 단어를 본 순간, 오타가 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스크린에 뜬 타일의 문양, 색감을 보자마자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습니다. 빛바랜 오렌지색과 갈색이 어우러진, 고작 두 장 짜리 민튼 앤틱 타일은 제 심장박동수처럼 빠르게 경매가가 올라갔습니다. 오랜 세월 내내 칩 하나, 크래이징 하나 없이 완벽하게 보존된 타일이었거든요.


그 다음부터는 경매장에 감당할 수 있을 선의 앤틱 타일이 올라오면 빠짐없이 비딩가를 적어냈습니다. 누구나 보는 눈은 비슷한지, 제 마음에 드는 녀석은 100파운드를 거뜬히 넘어서더군요. 언젠가 시간여유가 되면 한장씩 컨디션 체크를 해서 어울리는 프레임을 골라 표구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입가가 씰룩거립니다. 


5. 와일만(Wileman), 쉘리 퀸앤(Shelley Queen Anne)

아, 하고 무릎을 탁치며 반가워하는 분이 많을 겁니다. 국내에도 팬층이 많은 브랜드입니다. 이 둘은 온전한 컨디션의 트리오가 나타났다하면 배송비까지 10만원 이상 생각해야 합니다. 10만원에서 출발, 30만원을 웃도는 세트도 허다합니다. 종종 와일만 사진을 보신 분이 "이건 왜 이렇게 비싼가요?" 물으시는데, 실물을 보여드리면 얼마간 납득을 하십니다. 무엇보다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사용할 목적으로 만든 잔이기는 하지만, 만듦새나 패턴의 섬세함이 어지간한 예술품과 맞먹습니다. 전부 단종되었고 복각(reproduction)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도 한몫합니다.  


꽃처럼 피어나는 셰이프의 와일만 잔이 있다면 컨디션을 눈여겨보세요. 절대가는 꽤 비싸겠지만, 마음에 든다면 소장할 가치는 있을 겁니다. 쉘리에는 여러 셰이프가 있습니다. 데인티(Dainty)의 컬러별 잔도 물론 굉장히 고가이고, 블랙 데인티 잔은 600달러를 훌쩍 넘기기도 합니다. 경매장에서 핫한 쉘리는 단연 퀸앤입니다. 퀸앤 셰이프 잔 특유의 벽면같은 단면은 '패널(panel)'이라고 합니다. 패널의 컬러, 거기에 그려진 모티브에 따라 패턴명이 달라집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온전한 컨디션의 퀸앤 컬렉션은 몸값이 가파르게 뛰는 중입니다.

[쉘리의 퀸앤 셰이프 중 '블랙 리프티(Black Leafy)' 패턴]


6. 웨지우드의 앤틱 버설트(Basalt) 차이나, 유광 화병류

웨지우드하면 플로렌틴, 하고 자동재생이 되지만 소장가치를 따지면 이 분들에게는 한참 하수입니다. '버설트(Basalt)'는 현무암이라는 뜻으로, 웨지우드 버설트는 1800년대에도 이미 제작이 된 시조새입니다. 무채색만으로도 엄청난 아우라가 뿜어져나와, 웅장한 버설트 화병 하나만으로도 집 한구석이 박물관이 되어버립니다. 


'유광(lustre)' 화병류는 보기만 해도 어질어질합니다. 이를 데 없이 정교한 페인팅, 신비로운 색감을 보고 홀린 듯 비딩하는 사람을 여럿 봤습니다. 컨디션과 사이즈에 따라 화병 하나가 1,000~2,000파운드를 가뿐히 넘어가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웨지우드만 언급했지만 민튼의 앤틱 화병도 앤틱컬렉터들 사이에서는 뜨거운 관심대상입니다. 


[왼쪽부터 웨지우드의 유광 화병, 볼, 오른쪽은 버설트 화병]


7. 올드 이마리(Imari pattern)

이마리는 아시다시피 일본 아리타현에서 만들었던, 밝은 색감의 자기 양식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 초까지 유럽으로 대량수출되면서 선풍적 인기였는데요. 보통 이마리라고 하면 바탕에 깔린 푸른색, 여기에 붉은색과 금색, 검정색의 윤곽선으로 채색하고 위에 유약을 입히는 식이었습니다. 유럽에서 이마리 패턴 그릇을 처음 생산한 회사는 네덜란드의 델프트(Delft), 독일의 마이센(Meissen), 이후에는 더비(Crown Derby)에서도 이마리를 만들었습니다. 


[왼쪽부터 더비(Derby)의 이마리 컬렉션, 촛대, 오른쪽은 18세기 일본의 이마리 양념통]


십번까지 채울까 싶었는데, 이십번까지도 쓸 수 있을 것 같아 여기서 접겠습니다. 로얄코펜하겐의 플로라다니카, 로얄덜튼의 아르데코 시리즈, 스태포드셔의 올드 칼리코, 앤틱 노리다케 등, 앤틱그릇계의 핫한 이름은 무궁무진합니다. 


"북유럽은요?" 물으시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같은 유럽이지만 본차이나의 고장인 영국과 달리, 북유럽 앤틱의 가치는 '디자이너'가 상당 부분을 좌우합니다. 웨지우드는 패턴 디자이너를 따로 명시하지 않는 편이지만, 아라비아핀란드나 구스타브스베리에는 '간판 디자이너'가 엄연히 존재합니다. 스티그 린드버그(Stig Lindberg)의 이름이 들어간 순간 물범 피규어는 빠르게 판매되고, 잉케리 레이보(Inkeri Leivo)가 낳은 아라비아핀란드의 빈티지잔은 그 가치가 식을 줄 모릅니다. 북유럽 디자이너 스토리는 이번 시리즈가 끝나면 다뤄볼 생각입니다.


다음에는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혹은 사연있는 앤틱/빈티지잔을 들고 오겠습니다. 구독과 댓글, 조용히(음흉하게) 지켜보며 힘을 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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