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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tami Aug 30. 2020

빗방울 사이 흐르는 노래

늦은 밤 꾹꾹 눌러 쓰는 일기

#익어가는 밤, 일기 

밤은 고요함 속에서 익어가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끈적끈적하고 어두운 감정들을 무한반복으로 재생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싶지 않다고, 이 생각들을 떨쳐 버리고 잠이나 잘 수 있게 해달라고 SOS를 요청 했지만, 이 생각을 떨치고 어떤 생각을 하는게 좋은 것인지 알지 못한다. 이러한 생각이 아니라면 어떤 생각을 하며 즐겁게 숙면을 하고자 하는지, 내가 원하는 것을 더이상 알지 못한다.

어쩌면 이런 어두움 속에서 울부짖고 고통스러워 하는 내 모습이 익숙해져서인지도 모른다. 마치 잘 구운 젤네일처럼, 어두움이 내 본면의 모습에 착 달라붙어 일심동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이 전의 나는 어떤 온도의 감정을 느꼈는지, 그 감정은 정열적이며 발그레한 붉은 색이었는지, 벌판을 내달리는 푸른 바람같았는지, 시들어버린 생선비늘 같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고 빠르고 느리게 변화하며, 사람들은 여전히 수백년동안 고통 받았던 같은 원인으로 고통하고 신음하며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한다. 이 끈적끈적하고 끝이 보이지 않게 뱅글뱅글 돌아가는 삶의 궤도에서 난 뭘 해야 할까. 

사람들은 장난감 병정처럼 착 착 앞으로 걸어 나아가는데, 나는 다리 부러진 게 마냥 옆으로 조금 걷다가 무너지고 만다. 두려움의 커텐이 나의 몸을 칭칭 감고 저 깊은 나락 속으로 감겨 떨어지는 기분이다. 

나 또한 앞으로 나아가야 하나, 꼭 앞으로 앞으로 걸어야만 하는 이유가 뭘까. 

다들 떠나고 혼자 어둠 속 놀이터 뺑뺑이에 남겨진 것만 같다. 나의 감정, 나의 생각, 나의 영혼의 무게를 나눌 친구도 없이. 세상은 돌아간다.  

나는, 아픈 걸까? 아니면 나는 그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복잡하고 어려운 생각을 많이 하는 걸까? 

다른 사람들에 비해 감정의 깊이가 클 뿐일까?   



인생이, 산다는 것이, 성냥갑 같이 작은 네모난 공간에 실려 어디론가 흘러가고, 우리 모두 세상의 파도에 휩쓸려 우리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모르고 죽음에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주식을 이야기하고, 부동산 투자에 대해 열띤 대화를 하고, 하루 종일 물질적인 자산에 대한 고민 계산기를 두들겨 댄다. 어떤 사람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변 사람들을 흉내내며 주식을 사고, 부동산 투어를 하고, 곁눈질을 하며 배 아파한다. 나는, 주식 바보라고 불리며 구석에서 뚫린 내 가슴에 손을 얻는다. 뚫린 가슴에는 공허의 안개가 있다. 공허는 늘 나와 함께 한 오래된 친구이자 연인이다. 오래된 책의 누런 냄새처럼, 큼큼한 공허함의 냄새가 내 어린 날의 기억에서도, 지금의 내 모습에서도 나기 때문이다. 내 영혼은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으로 굶주렸고, 절망하지 않고 희망 또는 그 넘어 무언가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소리없는 투쟁을 하고 있다. 


난 언제쯤 공허학교에서 졸업하고, 의미를 찾아 어른이 될 수 있을까.  


풍요로운 물질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새로운 전체주의에 휩쓸려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수동적으로, 주변에서, 또는 정부에서, 문화정치적으로 선호되거나 강요되는 삶을 따르고, 수용하며 살아간다.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인간의 영혼이 좀 더 완성화 될 수 있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인생은 B와 D 사이의 C, 라던 사르트르의 말처럼 세상을 살아가며 끊임없이 선택과 선택을 마주하고 있다. 선택이 주어지는 갈림길에서 내 마음속은 매번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으로 가득하다. 


언젠가 나도 알을 깨고 나와 다른 세상으로 날아갈 수 있을까. 난 나의 자아를 초월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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