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호바람을 불며 출근하는 길
내가 인생을 너무 대충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젊음이라고 하는 한나절을 나는 그저 메뚜기처럼 드러누워 하염없이 흐르는 인생이라는 물길에서 그저 흐르고 있는 것만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이렇게 끝이 나 버리는 것일까.
지금까지 잘 살아왔던, 균형 있던 삶이 한 삶의 이벤트로 인해 무너져 버린 기분이다. 돌아보면, 5년 전 겨울이 내게는 그랬었다. 청천벽력과도 같이 생겨난, 믿을 수도 없던 그 황망함. 그렇게 한 사람을 떠나보내면서 나는 나의 꿈도, 그리고 삶의 목표도 절망이라는 휘발유에 녹여 내려보냈었다. 희망차고, 야망으로 가득찼던 젊은 날의 나는 그렇게 사라지나 보았다. 붙들고 있었던 희박한 희망. 촛불과도 같았던 그 희망마져 꺼져버린 것 같다. 내게 남은 것은 까만 잿가루와 태양조차 없는, 재로 가득찬 하늘뿐이라 생각되었다. 황망하게 홀로 남은 이 곳에서, 나는 무엇을 하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아프리카로 다시 돌아간다 한들 내가 거기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일이 아니라더라도, 내가 살아가는 목적을 그 곳에서 다시 찾는다는 것은 신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나의 목표를 다른 사람에게서 찾겠다는 허무한 야심과 같다. 그게 가능하기는 한가.
이렇게 또 일년을, 나는 보내게 될까, 생각하던 12월의 아침이었다.
역삼역 앞에는 매일 아침마다 운동복 차림으로 전단지를 나눠주는 인생의 중반쯤을 살아온 분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 분들이 나눠주는 전단지의 내용들은 대부분이 내겐 관심사가 아닌데다, 내가 원치 않아도 기어코 끼어 주는 그 종이들을 나는 대부분 즉시 구겨 버린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었다.
그 어떤 인간의 생이 아름답지 않고 숭고롭지 않을 수 있으랴.
전단지처럼 구겨버린 그 것이 그 누군가의 삶일 수 있을까. 나는 그 누군가의 꿈을 이렇게 구겨버리고, 짓밟고 지나간 적이 있었던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 않을까. 나의 꿈도 이렇게 구겨진 전단지처럼, 나의 꿈의 가치도 나는 내버리고 있지는 않았나.
나의 아버지의 삶도 그러했다. 그가 정작 인생에서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은...
그도 인생의 한 방황자요, 그저 살아가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생이 택해주었던 철강업에 목숨을 바치겠다는 의지로 살아온 인생길의 방랑자 중 하나일 뿐이다. 꿈이 없다고 해서 한 사람의 삶이 숭고롭지 않고 의미가 없는 삶은 아닌 것이다.
한 손에는 전단지를 들고, 홀리듯 초첨 잃은 눈으로, 물결에 흘려가듯 사람들 사이로 걷다 회사 앞까지 왔다.
회사 앞, 여느 때와 같이 구두수선집 개시를 하는 아저씨가 멀리서 봐도 딱딱히 굳은 주름 손 사이로 호호 바람을 불며 구두집 문을 열고 있다. 흰 머리칼에 이마에 깊게 문신된 주름들이 그가 살아온 삶의 물결을 보여주는 듯하다. 출근길에 똑딱이는 구두굽 소리. 흩어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아저씨의 기대어린 눈초리에서 나는 삶의 희망을 결혼반지마냥 약지에 끼고,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들도 있구나,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