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를 찾아서
1.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우리에게 가끔 짐이 되기도 한다
아프리카를 떠돌기 시작한 지 근 3년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해외에서 살기는 벌써 13년을 살았지만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닌터라 내게는 집도, 주소도 없었다. 오직 엄마와 아빠가 사시는 곳이 내 집이요, 주소였다.
매번 해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우체국에서 큼직한 박스들을 내려놓으며 나는 망설였다. '집 주소가 뭐였지?' 주소는 언제나 엄마와 아빠가 당시 거주하고 있던 주소, 이사 다니실 때마다 바뀌던 어색한 새 주소였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야 할 곳, 방향이 늘 정해져 있던 적도 없었다. 다음 행보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기에 늘 부모님께 의지를 해야 했고, 매일 꾸깃꾸깃한 일기를 쓰고,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들과 애틋한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 글들을 버리지 못하는 나의 짐은 부모님 댁에서 점점 부피가 커져만 갔다.
집으로 돌아와 꼬박 이틀을 깨지도 않고 먹고 자기만 했다. 실신한 사람처럼 곤히 잠을 잤고 아침과 점심, 저녁 식사 전마다 쓰러져 잠을 잤다. 오랫만에 한국으로 돌아왔으니 책을 읽으려고 했지만 끊임없이 깊숙히 밀려오는 잠의 물결에 난 이기지 못하고 매번 침대에서 눈을 감고 뜨기를 반복했다. 이틀 밤을 자고 비실비실한 내가 처음 해야 했던 일은 부모님의 이사짐을 덜기 위해 내 물건들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창고에서 발견한 박스 세 개를 합친 길이는 내 키보다도 더 컸고, 나보다 두 배는 웅장했다. 굵게 쌓인 먼지 테두리를 닦고 개봉한 박스들 안에는 지난 21년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 국민학교에 처음 입학해서 쓰기 시작한 일기부터 시작해 최근 1년 전까지 남겼던 수많은 기록들이, 수많은 서신들과 내 꿈과 생각을 담아 적었던 노트들이, 이곳 저곳을 여행다니며 모았던 카드들이. 지난 몇 년간 이 과거들과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노년이 되어 과거의 추억들이 그리워질 때 상기시켜줄 뭔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매번 귀국할 때마다 박스에 넣어두고 멀리 처박아 두는 것이 현재의 나를 상처받지 않게, vulnerable하지 않게 과거로부터 보호하는 방식이었다. 살다 보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 혹은 통째로 편집하고 싶은 몇 년의 시간이 있다. 암흑기.
늘 밝고 웃음과 깨알같은 애교스러움이 넘쳐나는 나라고 자부하지만, 2013년 8월부터 2014년 8월까지의 1년 1개월동안의 시간은 내 인생필름에서 잘라버리고 싶은 시간들이다.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이어지는 기억들은 쉽게 버려졌다. 워낙 오랜 시간을 박스에서 지낸지라 변색과 먼짖냄새로 열고 싶지 않았고, 노년에 초등학교 때의 친구를 추억하고 보고싶어한다는 건 궁상스러웠다. 고등학교 때 썼던 일기들은 좀 덜 쉽게 버려졌다. 혼자 지내야 했던 시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눈물을 쏟으며 썼던 일기들이라 마음이 찡하고 아파왔지만, 일기 내용의 반 이상은 방세를 포함한 여러 지출들, 그리고 내가 벌은 수입을 끊임없이 계산하고 있는 것들이라 더 이상은 기억하고 싶지도, 보고싶지도 않았다. 3년이 넘는 시간동안 아빠가 내게 친필로 보내줬던 편지들도 꽤나 방대하게 나왔다. 편지를 읽게 되면 눈물이 나고 슬플 것 같아 열지 못하고 그대로 보관하기로 했다.
쉽게 박스에 있는 내용물들을 나는 버리지 못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현기증에 머리가 아파왔다. 과거는 현재를 살아가는 나를 비참하게 만들기도 한다. 과거 나를 응원했던 사람들의 흔적, 그리고 그 잔해. 나를 믿겠다, 너는 할 수 있다며 후원의 손길을 보내주었던 사람들의 편지가 현재를 무심히 살아가는 나의 뺨을 아프게 때린다. 어린왕자가 어른들의 세계에서 자라 별들을 수집하는 경제학자의 아래서 청소부로 살아가듯이, 어린 날 크게 꿈을 꾸고 도약을 향해 날개를 만들던 나의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 청소부의 모습에 익숙해져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 내가 나아가야 할 곳을 잊어버린 나.
길들여진 여우처럼, 세상이 험난하고 두려운 곳이라고 배우고 그런 베일에 씌여 세상에 길들여졌다. 내게 세상은 두려운 곳. 내가 사랑하는 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내가 아끼고 가꿨던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베어가버리는 곳처럼 비춰졌다. 어둠과 그늘, 먼지로 그득한 하늘 속에서 나는 희망의 꽃을 볼 수 없었다. 나만의 장미를 볼 수 없었다.
눈에 눈물이 없으면 그 영혼에는 무지개가 없다고 한 시인의 말처럼, 눈에 눈물이 많아 마음에 무지개가 만발했다. 그러나 그 무지개는 어둡고, 칙칙하고, 안개마냥 뿌옇게 하늘을 가리고 있다. 과거의 상자들은 판도라의 상자와 같이, 열어보면 그 안에서 헤엄을 치게 한다. 더욱 깊숙히, 매우, 나를 아프게 한다. 잊어버렸던 일들도 들추어 기억의 먼 곳에 오랜 겨울잠을 자고 있던 일들을 깨워내, 현실 속의 과거를 살게 하는것 같기도.
몇 번이고 도망쳤었다. 힘들어서, 두려워서, 내가 하지 못할 것 같아서, 용기가 도저히 생기지 않아서, 내 자존감이 낮아질 것 같아서, 내 상황이 누추해진 것이 부끄러워서... 다양각색한 이유들로 나는 비굴한 뻔뻔함을 무기로 삼고 후퇴, 후퇴를 반복했었다. 매번 다른 곳으로 도망치듯 떠나버렸고, 나를 믿고 기대하며 지켜봐줬던 이들과 나를 사랑하여 나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던 이들을 뒤로 하고, 그들이 죽을만큼 힘들어서 내게 기대려 할 때 나는 슬그머니, 내 어깨를 치우고는 '이 일을 해야 해, 지금 떠나야 해' 하며 슬금슬금 떠나기 일쑤였다.
이번만큼은 도망치지 않으리라. 서른 두살. 햇빛 사이로 비치는 목련화처럼, 수줍은 듯 옅은 분홍색으로 물든 벚꽃처럼 아름다울것이라 꿈꿔온 서른 두 살까지, 나 이번만큼은 아무리 힘들고 눈물겹더라도, 눈물이 후둑후둑 무릎위로 떨어지는 날에도, 직면하리라. 도.망.가.지.않.고.
2017년 10월 1일.
28번째 내 생일날, 생일선물이자 숙제를 낸다.
"일어나, 어린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