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에게 쓰는 편지
강아,
언젠가 너는 빻은 밀가루마냥 매몰찬 겨울바람에 흩뿌려졌다. 힘없이 이곳 저곳으로 너풀거리며 날렸다.
너의 마음은 쓰나미가 지나간 뒤 남겨진 잔해처럼 비참하고 외롭기만 하였다. 세상은 까만 도화지 같았다.
절망이 비가 되어 까만 비가 하루 종일 내렸다. 하늘은 잿빛 구름으로 가득했으며 햇살 한 줌도 그 사이로 삐져나오지 못하였다.
분노와 원망이 뜨거운 용암과 잿덩어리으로 지상 모든 곳에 흩뿌려졌다.
너는 까만 세상 속에서 앞을 보지 못하였다.
앞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준 하나님을 원망하며 눈을 뽑아내 버리길 원하였다.
그리하여 넌 눈을 뜬 장님이 되었다.
너에게 세상은 모든 것을 주려다 하나를 얻자 모든 것을 빼앗아 가 버린 무서운 곳이자 삶을 대상으로 사기를 친 대원수였다.
그렇게 세상에 대한 분노로 눈이 먼 넌 네 까만 세상밖에 보지 못하였다.
세상 밖의 기쁨도, 즐거움도, 타인의 눈물과 고통도 너에겐 주룩주룩 내리는 잿빛 비 사이로 간간히 보이는 흐릿한 풍경일 뿐이었다.
내 고통과 내 아픔이 세상의 전부인 것 마냥 행동했다.
그러다, ‘그러던 어느 날’이 너에게 찾아왔다.
너는 그 날 바위에서 핀 물망초를 발견하였다.
물망초를 감싸고 있는 부드러운 바람과 따스한 햇살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잿빛 하늘과 잿빛 비가 내리는 세상에서
빵 굽는 향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따스한 기운이 눈꺼풀을 부드럽게 감기는,
그런 작고 포근한 세상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너는 그제서야 얼마나 네가 바보였는지를 깨달았다.
그 아픔과 고통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잿빛 까만 세상은 네가 만들어 낸 것이었음을 말이다.
바위에서 태어났다고 슬픈 것은 아니었다.
그 사이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비좁은 공간에서도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는 바람 한 줄기와 친구하여 함께 합창을 하다 동아줄을 타고 내려온 힘없는 햇살과 친구하며 춤을 추면서 즐기면 되는 것이었다. 함께.
넌 감히 물망초를 껴안고 울지는 못하였다.
물망초를 등지고 쭈그려 앉아 홀로 눈물 흘리던 넌 ‘당신’을 발견하였다.
비틀거리는 네게 안길 가슴과 기대어 울 수 있는 어깨를 아낌없이 내 놓았던 당신.
철이 없고 욕심만 가득했던 너에게 당신은 미소를 지어 주었다.
네 눈물로 당신의 어깨가 축축해졌을 때에, ‘이젠 괜찮아, 이제 다 왔어’ 라고 당신은 너의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그제서야 너는 보았다. 네 얼굴이 찬란한 노란색으로 빛나고 있음을.
아아, 너는 모래밭에서 피어난 해바라기였다.
언젠가 다시 올지도 모른다, 너의 까만 세상이.
너를 힘들게 했던, 깊게 패인 상처가 소금물에 닿아 쓰라리게 될지도 모른다.
외로움이 새까만 구름이 되어 비의 장막이 하늘을 가리고,
서러움이 짙은 커튼이 되어 마음을 어둡게 물들이는 날을 다시 보게 된다면, 이 글을 읽기를.
강아, (2012년)
무슨 일이 있었건, 어떤 환경과 상황에 처해 있던지 간에
스스로가 얼마나 대견하고 사랑스러우며
봄 햇살과 같이 찬란한 존재인지를 볼 수 있는 눈을 갖기를,
비록 지금 네 자신이 바위 사이에 낀 이끼처럼 하찮아 보일지라도
사실 세상에 있어 소금과 같이 귀중한 존재임을 깨닫기를.
세상이 네게 ‘너무 늦었어. 포기해. 넌 무능력해’라 할 때,
이는 너를 질투하는 이들의 계략일 뿐임을 인지하기를.
다신 세상의 환술에 휩쓸려 쓰나미의 잔해가 되지 않기를.
아직 살아보지 않은 내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이 순간 네 눈앞에 펼쳐진 기쁨과 즐거움을 놓치지 말기를,
너를 끊임없이 믿고 응원하는 내가 있으니 두려움 없이 나아가기를.
네가 ‘그 자리’에 당당히 서는 그 날까지,
네가 그토록 원하는 ‘내’가 되는 그 순간까지
포기하지 말고 끈질기게 매달리며
흔들리지 말고 대범함을 갖고
작심삼일 말고 변심없이 꾸준히
앞을 향해 노를 저어 나아가기를.
비록 현재는 안개 속의 불안한 물망초 같을 지라도,
앞을 향해 하나 둘 나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넌 찬란한 햇살 아래의 해바라기가 되어 있을 거야.
그 날이 올 것을, ‘내’가 되어 있을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눈물은 환한 웃음으로 닦아내고 일어나렴.
사랑한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널 응원한다.
아자, 아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