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otami Oct 12. 2018

내림, 아니 올림사랑

몰랐었다.
나는.

엄마의 손톱 아래 낀 까만 때.
아빠의 자라난 콧털이 더럽다고만 생각했었다.
학교에 찾아오는 반장 엄마네처럼 뾰족구두에 멋드러지게 차려입고 핑크빛 매니큐어를 칠했으면 했었다.
또래 친구들 아버지처럼 코털이라는 존재가 인식되지 않을만큼 손질하고 얼굴에 선크림이라도 발라 가꿨으면 했었다.
말로는 겸손과 효를 이야기하였으나 마음은 늘 저 먼 곳, 남의 부모를 보고 남들과 비교하며 나의 부모님의 흉한 점만 보고 아파하였다. 나는 그토록 이기적이었다.
그러나, 만약 알았더라면...
고구마대 절인 것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오전 내 신문지에 한가득 고구마대를 올려놓고 껍질을 벗기느라 손톱이 까매졌다는 것을.
우리를 위해 밤새 야근작업을 하고 공장에서 매쾌한 연기를 쐬며 일해서 미처 깨닫지도 못한 채 자라난 콧털이라는 것을.

이 깨달음이 오고 부모님 전상서를 쓸 때에 종이를 덧붙인 문에 구멍이라도 난 듯 마음에 휑하고 시린 겨울바람이 불어왔다. 눈물이 눈이 되어 쌓이고.
스스로 부모님께 효도한다고 자신했던 스스로가 부끄럽고 죄스러워 눈은 온 세상을 덮을 듯이 쌓이다 못해 흘러내릴 듯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제가 잘난줄 알았어요.
그게 아니었어요.
희생 없이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림사랑.
말로는 밉다고 시키는 대로 왜 하쟎느냐고, 이제는 너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겠다고 나무라고 화도 내셨었지만 뒤돌아선 그들은 비오는 날이면 우산을 두고 간 아이를 위해 우산을 들고 학교로 쫓아갔다. 수행평가 과제물을 집에 두고 온 덜렁이 녀석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날아가 퀵서비스를 실천했다. 졸음에 취해 잠겨오는 눈커풀로 일을 하러 갔고, 서툰 손으로 머리핀을 골랐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딸아이를 위해 퇴근길에 동네 슈퍼에 들러 붕어싸만코를 사 오는 것을 잊지 않았다. 깊은 새벽밤, 엄마, 엄마 하고 감기에 걸린 아이가 신음했다. 마을엔 병원이 없었다. 급한 마음에 아이를 들쳐업고 뛰어가 셔터가 내려진 지 오랜 동네 약국 문을 두드렸다. 선생님! 문 좀 열어 주세요. 우리 아이가 아파요.
돈 절약하라고 노래를 부르던 구두쇠. 자식에게는 뭐가 그리 주고 싶은지 익숙지도 않은 쇼핑을 같이 가주겠다고 카드를 들곤 나섰다. 옷을 고르는 것이 아직도 어색하기만 하던 그는 이것 저것 손으로 만지작거리기만 하다가 아이가 마음에 들어하는 옷을 찾아입자 그 모습에 마냥 흐뭇해했다. 헤어짐에 면역이 되지 않아 눈물이 글썽글썽했던 그녀는 밭에서 따 온 호박을 밤새 긁어 파고는 새벽부터 일어나 호박죽을 정성을 다해 끓였다. 펄펄 끓인 물에 익힌 팥과 콩을 넣은 호박죽을 먹는 딸아이를 보면서 이제 됐다, 보내도 되겠구나, 했다.


세상 많은 부모님들의 흔한 이야기.
나는 지금껏 과분하게 받기만 하고 보답하지 못했다.
올림사랑.
그러나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금부터라도 보답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늦지 않아서.

방황은 하지 않으리라. 손가락을 걸고 도장을 찍으면서 마음도 약속했다. 더이상의 방황은 없다. 이제 어른이 된다. 좀 더 일찍 어른이 되었어야 했는데 나는 피하고 도망만 쳤다. 그러다 멀리멀리 도망쳐 나왔구나 하고 한숨을 내쉬었을 때, 그 때. 한없이 넓고 커서 두렵기만 했던 아버지의 그림자가 쪼글쪼글 작아져 있는 것, 늘 내가 울면 안아주고 받아주던 엄마의 단단하고 포근했던 가슴이 왜소하고 자그마해진 것을 보았다. 이제는 그들이 내게 해주었던 것들을 내가 그들에게 해주어야 했다. 안식처.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밥. 무의미한 수다를 경청해 들어주고, 칭찬을 해 주던 사랑. 실수를 하고 선생님께 혼나고 반성문을 써서 부모님 사인이 필요해 내밀었을 때 화내지 않고 조용히 사인해주던 이해심. 무슨 말인지 무슨 뜻인지 도통 몰라 묻고 또 물어도 귀찮아 하지 않고 기특히 여겨주던 그 마음. 아플 땐 모든 것 내팽겨치고 어떻게든 낫게 해주려고 약도 먹이고 차가운 물에 적신 수건을 몇번이고 짜고 올려주던 그 손길. 그 사랑. 내림사랑.

그러나 내림사랑만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고아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부모를 독거노인으로 만들어서도, 그들이 혼자 아파하게 해서도 안된다. 보호자 없이 어린아이를 혼자 방치하면 미국에선 감옥에 간다. 나이들은 노인을 홀로 쓸쓸히 살게 방치해서도 안된다. 자식들. 우리는 부모의 한량한 사랑과 은혜에 대한 환원의 의무를 지녀야 할 것이다. 해외봉사를 왜 가냐고 하면, 우리나라가 가난했던 시절 우리를 도와주었던 수여국들에게 그 은혜(?)를 환원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한다. 부모를 모심과 올림사랑도 그런 것은 아닐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작가의 이전글 황석영 著 개밥바라기별 中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