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전 광장의 푸르스름한 가로등 밑에서
어디로 갈지 모르는 여행자처럼 잠시 서 있었다.
내가 여기에 왜 왔을까.
뭘 하러,
누굴 만난다고.
먼저 어디로 가서 두고 왔던 나를 만날 것인가, 내 흔적이,
내 그림자가 어디에 남아 있는가.
- 황석영 著 개밥바라기별 中
나침반도 시계도 없이 무전여행을 간다. 개똥벌레들이 안겨주는 희미한 빛 아래,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칠흑같은 밤, 철커덕철커덕 뒤뚱거리는 기차안에 몸을 안기고 나를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푸르스름한 새벽빛 아래 초라하니 고개를 떨구고 서 있는 준을 생각한다. 누구를 기다려야 할지, 누구를 위해 이 먼 길을 왔는지, 뭘 하러 온 건지 텅 빈 마음에 자문을 하는 준을 생각한다. 시간은 이미 흘렀다. 그의 존재는 머물러 있던 자들에게 있어 과거에 불과할 뿐, 과거는 곧 현재에 의해 묻혀지고 현재는 다가오는 미래에 지워져 나갈 뿐이다. 현재로 돌아오는 과거에 묻힌 자, 현재만을 보고 살아가는 남은 사람들에게 있어 과거의 망상에 불과한 준은, 어떤 걸 기대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돌아온 것일까.
저 멀리서 별똥별이 땅에 빨려 들어가듯 핑 하고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