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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Sep 17. 2017

계절 메뉴의 탄생

유독 컨디션이 좋은 아침이다. 어제 술을 마시지 않고 오십여 분 운동을 해서 인지, 아침에 눈을 뜰 때 몸이 가벼웠다. 식당 오픈 준비를 하며 갑자기 식욕이 폭발했다.


"아침에 뭐 먹을까?"

"간! 장! 게! 장!"

"아침부터?"

"응. 맛있어."


나는 서해안에 산다. 봄에는 바다에서 실치가 많이 잡히고, 가을에는 게와 대하가 많이 잡힌다. 물론  환경 변화 탓에 예전만큼 많이는 아니지만. 그래서 가을에는 연례행사처럼 간장게장과 양념게장, 대하장을 먹게 된다. 다른 건 몰라도 게장은 우리 엄마만큼 맛있게 담그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서, 나의 화려한 외식 이력에 게장은 없다.


"이번엔 안 짜게 잘 됐네."

"밥 좀 더 먹어."

"아니야. 밥 안 먹어도 안 짜."

"짠 거 싫어하면서 그건 또 잘 먹네."

"흐흐. 오늘 애들 오라고 해야겠다. 맛이 딱 들었어."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점심장사를 마친 후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친구가 잡아온 싱싱한 게가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으로 변신했으니 먹으러 오라고. 딱히 할 일 없는 놈들이라 그런지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고 바로 달려왔다.


"이야. 어머니, 엄청 맛있어요."

"많이들 먹어요."

"이거 파세요, 어머니."

"그럴까?"


입이 까탈스럽기로 유명한 친구들의 맛있다는 말에 어머니 혹 하시고. 친구들은 그날 게장을 안주 삼아, 소주를 여러 병 마셨다. 그리고 다음날 친구가 잡아온 10킬로그램의 게로, 계절 메뉴인 '게장 백반'이 등장하게 된다. 인기는 옵션! 다른 곳과 현격한 가격 차이와 맛의 차이를 자랑하는 게장 백반은 출시 즉시 1위 메뉴에 등극했다. (짝! 짝! 짝!)


우리 식당의 자리 수는 이십여 개. 점심시간에 두 번 회전하고, 저녁에 한 번 정도? 건강식을 추구하기 때문에 요란한 메뉴는 없지만, 집밥을 원하는 손님들에게는 꽤 인기가 있다. 주방에 추가 인력을 쓸 여력이 되지 않아 엄마가 힘들게 여러 메뉴를 소화하고 있지만, 메뉴 단일화를 하지 않는 이유는 단골손님들 때문이다. 작은 동네에서 단골 위주로 장사를 하다 보니, 중요한 건 질리지 않는 것이었다. 갈비찜이나 제육볶음 한 가지 메뉴로만 승부를 볼 수도 있지만, 자리 수가 적고 손님이 한정되다 보니, 몇 번 오고 질려서 안 오면 그대로 손해를 보게 된다.


"요즘 손님이 뜸한데, 김치만두 좀 해볼까?"

"맛있지, 김치만두."

"애들도 와서 먹으라고 해."

"어. 같이 일했던 언니도 불러야겠다. 괜찮겠어?"

"우리 먹는 김에 조금 더 하지, 뭐."


거의 매년 겨울, 엄마가 담근 김장김치가 푹 익으면, 거기에 두부와 숙주와 돼지고기를 갈아 넣고 한입에는 절대 먹을 수 없는 만두를 만든다. 겨우내 그 만두를 튀겨 먹고, 끓여 먹으면 속이 뜨끈뜨끈해 추위도 무섭지 않다. 마침 겨울이 왔고, 손님도 별로 없으니 기왕에 하는 거 조금 더 해 '계절 메뉴'로 올려보았다.


"언니, 만두 먹으러 오세요."

"너네 만두도 해?"

"네. 속이 꽉 찬 김치만두예요. 엄청 맛있어."

"아~! 예전에 먹었던 것 같다."


같이 회사에 근무했던 언니에게 연락했더니, 오래전에 만두 맛을 본 언니가 동료들을 모두 데려왔다. 커다란 만두를 앞접시에 덜어 호호 불어 입에 넣고 꼭꼭 씹는 그들의 통통한 양볼이 귀엽고 정겨웠다. 말하지 않아도 맛이 있음을, 배 속이 따뜻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그 겨울에 만두를 몇 번 더 했지, 아마.


단골들에게는 '계절 메뉴'가 인기가 있다. 고기 반찬도 한두 번이라고 했던가. 몇 가지 메뉴를 돌려 먹는다고 해도, 일 년 내 반복하면 지겨울 텐데, 계절 메뉴가 있으니 가끔 입맛 전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김치만두, 여름에는 열무비빔밥, 가을에는 게장 백반. 우리 집에서 자주 해 먹는 제철 음식을 좀 더 해 손님들과 함께 먹는 셈이다. 우리는 새 메뉴가 인기 있어 좋고, 일이 바쁜 손님들은 싱싱한 제철 음식을 간편하고 넉넉하게 먹을 수 있어 좋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계절 메뉴의 윈윈 전략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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