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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Jan 07. 2018

내일모레면 마흔이다, 마흔

“어디 가?”

“단엘이 스파게티 해주려고. 장 보러 가.”

“그래?”

“왜? 필요한 거 있어?”

“홈런볼!”

“어이구, 내일모레면 마흔인데 왜 저러나 몰라.”     


점심 장사를 마치고 집에 내려와 전기장판 위에서 한참을 빈둥대다 외투를 걸치는 동생에게 말을 건넸다. 좋은 소리는 못 들었다. 동생은 언니가 내일모레 마흔이라고 그렇게 걱정을 해준다.     


“내 칼을 받아라!”

“싫은데.”

“후크선장, 왜 그래?”

“칼싸움하기 싫어.”

“해야지. 엄마가 하라고 했어.”

“아니, 엄마가 그런 소리 안 했는데.”     


나와 조카가 하는 대화를 가만히 듣던 동생이 나를 본다. 찌릿. 오호, 눈빛이 뜨겁다. 칼싸움을 해주란 소린가. 하기 싫은데? 조카라고 오냐오냐 하면 버릇만 나빠지는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동생은 한숨을 쉬며 나간다.  그럼 조카랑 좀 놀아볼까.


“피터팬! 점심은 스파게티다. 내 칼을 받아라!”     


유학생활을 오래 한 동생은 여러 사람이 북적거리는 걸 좋아한다. 걱정도 많고 오지랖도 넓다. 오랜 알바 생활로 터득한 친절함에 꼴딱 넘어가 동생을 숭배하는 동네 아주머니가 한둘이 아니다. 그런 동생에게 자신의 아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나.     


“언니, 그거 입고 나가게?”

“응!”

“지금 그 남방에 그 치마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거야?”

“응!”

“진심이야?”

“응!”

“언니, 단엘이도 어울리는 색, 안 어울리는 색을 알아.”     


그렇지. 내일모레면 마흔이지, 마흔. 한 회사에 근무하던 동료들의 표현에 의하면 ‘전투복’을 입고 출퇴근하던 나다. 어울리는 색이고, 나에게 맞는 스타일이고 나는 모른다. 그저 일하기 편하고, 적당히 격식을 갖추면서, 남자들에게 쉽게 보이지 않는 옷이면 그만이었다. 나름 미술 쪽을 전공하던 동생이 오랜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나의 몰골을 보고 참 많이 놀랐더랬다. 뿌리는 다 죽었는데 끝은 상해서 빗이 들어가지도 않는 머리스타일, 이목구비도 큰데 눈썹은 시커먼 일자로 그려서 포청천 저리 가라였던 화장, 비슷비슷한 남방과 비슷비슷한 스키니에 겉옷부터 속옷까지 온통 시커멓기만 한 옷들, 언제 샀는지도 모를 신발….     


“이거 다 버리자.”

“뭘, 왜 버려?”

“언니는 이런 스타일 안 어울려. 허리를 강조하는 옷을 입고, 눈썹은 자연스럽게 해야지. 이게 뭐야? 왜 이래?”

“나름 엄선해서 산 거거든!”

“참 나, 그렇게 하고 무슨 소개팅을 간다고 그래?”     


아빠, 엄마도 안 하는 잔소리를 동생이 한다. 시끄럽다고 소리치고 싶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세 보이는 인상에 옷까지 세게 입고는 소개팅을 나가겠다니. 서비스업을 하겠다니. 그날부터 동생 말을 열심히 들었다. 일단 해보고 아니면 말지, 뭐.      


“선배, 오늘 스타일 좋아요.”

“진짜?”

“네. 진작 이렇게 입고 다니지.”     


동생의 조언을 백 퍼센트 신뢰한 옷차림을 하고 오랜만에 서울에 왔더니 회사 후배들이 마구 칭찬을 해준다. 말 많은 동생이 있으니 좋은 것도 있네. 허허, 인생 참.     


“언니는 내 말만 들어. 남자가 자기한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무슨 결혼을 어떻게 한다는 거야?”     


먼저 시집 가 애까지 낳더니 아주 모르는 게 없다. 내 스타일을 털더니 이번엔 결혼이다. 말로는 결혼이 시급하다면서 동네 시커먼 놈 들하고 술이나 마시러 다니는 내가 여간 답답해 보였나 보다.


이번에도 동생 말 잘 들으면 결혼하는 건가. 내일모레면 마흔이다, 마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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