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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Apr 14. 2020

마지막 영업을 시작합니다

“오늘까지만 영업합니다. 많은 분의 관심과 사랑 덕에 여기까지 무사히 왔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건강하시고요. 감사합니다.”

식당 유리문에 종이 한 장을 붙였다. 엄마도 나도 장사엔 영 소질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3년 반이 넘게 아침이면 식당 문을 열었다. 자주 오겠다는 손님이, 매일 된장찌개를 먹는 손님이, 명절 인사를 오는 손님이, 엄마의 건강을 걱정하는 손님이 마음에 걸려 남는 게 없는데도 엄마는 매일 음식 준비를 했다.

“식당 옮기시는 거예요?”

“여기 문 닫으면 우린 어디 가서 밥 먹어요?”

“좀 쉬다가 다시 하시면 안 돼요?”


정 많은 손님들이 또다시 발목을 잡는다.


“저희가 장사에는 소질이 없어서요. 엄마도 너무 힘들어하시고…. 저도 복직하려고요.”


식당을 확장하게 되었다고, 한 달 여행 후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밝게 웃으며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있는 체력도 돈도 없다. 엄마는 돌아서는 손님들에게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한다. 고맙다고, 잘 지내라고….

“사장님,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좋은 데도 많이 다니시고요.”


엄마를 딸인 나보다도 더 살갑게 챙겼던 손님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엄마 손을 꼭 잡더니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식당을 나갔다. 마지막 손님이 나갔다. 엄마는 손님이 타고 간 차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장조림이라도 해서 보낼 걸.”


집에 귀한 손님이 올 때면 반찬을 맞춰가던 손님이었다. 장조림을 유독 좋아했더랬다. 회사에 다니며 아이를 키우는 손님이 짠했던 엄마는, 그때마다 좋은 재료로 푸짐하게 반찬을 만들어냈다. 잘 먹어야 일도 잘한다면서….

육십 넘어 처음 도전한 장사가 큰돈을 벌지 못한 채 끝나게 되어 섭섭할 것이다. 이제 요리에 자신이 붙었는데, 따라주지 못하는 체력이 원망스러울 것이다. 엄마는 괜히 일 잘하고 있는 딸내미 불러들여 고생만 시켰다고, 안 해도 될 말을 한다.

그렇게 손님이 떠난 자리에 엄마와 한참을 서 있었다. 돈은 못 벌었지만 난 이제 세상 두려울 게 없을 만큼 강해졌다고, 세상에 좋은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엄마의 꿈을 펼쳐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하며, 3년 반 전보다 훨씬 작아진 엄마의 어깨를 살짝 안아본다.




* <좋은 생각> 2020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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