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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알로하링 Jan 21. 2020

12. 임신소식을 기다리는 천진난만한 나의 독신 삼촌

내가 당당하게 반항할 수 있는 유일한 상대


배려의 방법이 다른 천진난만한 나의 독신 삼촌

감사한 배려와 반대로 짓궂은 배려가 떠오른 나의 삼촌. 명절 이야기와 별개로 나에게는 열혈 독신 삼촌이 있다. 삼촌에게 '천진난만'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모르겠지만 친가의 넷째 삼촌으로 50대의 평범한 직장인이자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평일에는 정말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고 주말이면 모르는 지역번호로 전화를 거는 삼촌이다. "땡솔 지금도 자냐? 삼촌 지금 지리산이다", "땡솔 토요일인데 뭐하냐? 나 지금 상주 와 있다". 자주 걸려오는 전화는 아니지만 토요일 익숙하지 않은 지역번호로 전화가 온다면 분명 우리 삼촌이다! 핸드폰으로 하면 좋을 텐데 삼촌은 50년 동안 자신의 핸드폰을 가져본 적이 없다. 무심하게 사과 한 박스를 보내 주거나 맛있어 보이는 게장을 잔뜩 보내 주거나 둘이서 이걸 어떻게 다 먹어? 싶을 만큼 한가득 건어물을 보내주기도 한다. 마치 나 이런 곳을 여행하고 있어의 증거물을 나에게 공유하는 것처럼 말이다.


땡솔, 아직 소식 없어?

언제부턴가 우리 삼촌의 안부인 사는 "땡솔, 아직 소식 없어?", "땡솔 왜 아직도 애기 소식이 없어?"라고 천진난만하게 묻는다. 이상하게도 우리 삼촌의 아기에 대한 질문은 속상하지 않다. 사실 속상하지 않는다기 보다는 내가 당당하게 말대꾸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상대여서가 아닐까 싶다. "삼촌, 계속 그렇게 말하면 나 아기 낳으면 삼촌이 다 키워야 돼", "삼촌 계속 그렇게 강요하면 말할 때마다 10만 원씩 달라고 한다" 등 먹히지도 않을 협박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야 걱정 마 내가 돈 다 모아놨어. 내가 주말마다 전국 방방곡곡 다 여행시켜줄게"라고 천진난만하게 또 한 번 받아친다.


삼촌도 알고 있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내가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힘들어 한다는걸.

우리 삼촌은 나를 대하는 배려의 방식을 본인의 스타일로 대했다. 내가 삼촌과의 대화가 편하다는 걸 알고 있기에 더더욱 남들하게 하지 못했던 반항심 가득한 대답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친한 지인에게도 하기 힘들었던 말과 대답을 본인에게는 해도 좋다고 했다. 나의 임신 소식을 묻는 지인들에게"한번만 더 말하면 이제 그만 전화해!" 라고 말할 용기는 없다. 하지만 우리 삼촌에게는 있다. "삼촌 또 그 얘기면 나한테 전화하지마" 이렇게 말하고 끊어도 다음주 토요일 아침이면 당연하게 모르는 지역번호로 전화가 걸려온다. 그리고는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이야기 한다.


"땡솔, 나 지금 속초 와 있어. 여기 다음에 한번 같이 오자 꼭"


나는 어릴 적 우리 삼촌과 매주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겨울에는 산에서 썰매를 타고 여름에는 어딘지도 모르는 시골에서 동치미 국수를 먹고 수박을 먹는게 즐거웠다. 삼촌은 항상 나에게 말할때 본인은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인생에서는 어떻게 보면 내가 어른이라고 했다. 어쩌면 결혼이라는 단어가 없는 삶을 사는 삼촌이 나에게 유일하게 짖궃은 배려를 보낸다. 삼촌에게도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다.


"삼촌 너무 걱정하지마 - 다 때가 되면 생긴대"



7년 연애 후 결혼 4년 차, 신혼의 기준이 아이가 있고 없고 라면 우리는 아직 신혼부부. 원인 모를 난임으로 스트레스도 받지만 뭐든 써내려 가다 보면 조금 위안이 됩니다. 내려놓기가 어려워 우리만의 방식으로 감당해보는 시간. ㅣ 일복 wait for you <난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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