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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알로하링 Feb 18. 2020

13. 임신 준비, 진짜 마음 놓고 제대로 놀아보자!

우리 조금은 쉬어볼게요 


우리 조금은 쉬어 볼게요 


우리와 같이 임신을 기다리는 많은 부부들에 비하면 4년은 과연 짧은 시간일까? 긴 시간일까? 

이 문제는 정말 그 누군가와 비교할 수 없는 무언가 라고 생각이 들었다. 인공수정, 시험관, 병원 방문의 횟수 그리고 실패의 횟수가. 길든 짧든 횟수가 여러 번이든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모두에게 기준은 다르지만 받아들여지는 무게와 어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지 않을까. 


최근 우리는 가장 설레던 일주일을 보냈지만 그 설렘의 끝은 한 줄이었다. 

비교적 매우 정확한 주기로 그날이 다가오는 나는 이틀이 지나고 삼일이 지나고, 테스트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 최대한 조심하며 기다렸다. 하루에도 수십 번 테스트기를 손에 들었다 놓았다 했지만 일주일이 지나갈 때까지 꾹꾹 참았다.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한 줄 이면 그건 아닌 거야'

'아니 난 2주가 지나도록 한 줄이었는데 2주가 지나고 두줄이 보였어'


도대체 누구의 말이 나에게 더 맞는 결과가 될까? 기대와 혹시 모를 실망감에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부단히 도 노력했다. 되도록 우리의 문제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표현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열심히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있었지만 그 부자연스러움에 괜스레 남편도 덩달아 안 그런 척 나보다 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날 즈음 꾹꾹 참았던 테스트기는 단호박 한 줄이었다. 

이윽고  매정하게도 테스트기로 확인 한 다음날 그날이 찾아왔다. 

미움의 존재도 없지만 그냥 너무 미웠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짜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최근 2년간 매달 반복되는 실망감을 마주하고 있자니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실망감에 사로잡혀 한 달에 일주일 정도는 내내 우울했다. 물론 회사에서는 이런 어려움을 함께 이해하며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기에 그저 회사일만 열심히 하는 직원이고, 그 외의 공간에서는 며느리로서 딸로서 어딘가에서는 긍정적이고 밝은 한 사람으로서 지내왔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짜 모르겠다.라는 말이 나왔다. 


몸이 힘든 건 그래도 괜찮았다. 하지만 마음이 힘든 건 너무 힘들었다. 

나만 힘든 건 괜찮았다. 함께 힘든 건 너무 힘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남편도 힘들었다. 우리 모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 , 그동안 마치 임신이 아니면 우리가 잘못하는 사람처럼 속상해했잖아 딱 100일만 쉬어볼까? 

100일 동안은 정말 실망하지 말자. 슬퍼하지 말자. 연연해하지 말자 라는 말을 하고 나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힘들어라는 단어와 함께 흐르는 눈물이 아닌 이제 3개월 동안은 마음껏 무심해져도 된다는 생각에 기쁨과 꽉 막혀있던 가슴 어딘가가 비워지는 가벼움의 눈물이었다. 




진짜 마음 놓고 제대로 놀아보자 


100일의 쉬는 날 동안 우리의 계획은 꽤 즐거운 것들로 가득하다. 

진짜 마음 놓고 제대로 놀아보자가 가장 큰 목표이다. 

이른 봄 워터파크에서 제법 무서운 워터슬라이드를 수도 없이 타고 싶고, 다시 한번 가보고 싶었던 한라산도 올라보고 싶고, 놀이공원에 개장할 때 뛰어가서 티익스프레스를 타고 아픈 다리를 두드리며 폐장 시간에 등 떠밀려 나와보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하루에 삼만보씩 걸을 수 있는 해외여행도 계획할 거고, 비발디파크 꼭대기에 있는 스카이스윙을 가장 무섭게 타고, 하와이에서 무릎 까져가며 몸 사렸던 서핑도 이른 양양 바다에서 다시 한번 하고 싶다. 


우리 둘은 당분간 머릿속에 오로지 놀 궁리만 하고 있다. 


대신 3개월 동안 우리는 임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기, 어떠한 결과에도 실망하지 않기, 3개월 후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던 어떤 도전을 하던 그 결과에 지지하고 온전히 맡기기로 했다. 


마음 껏 놀 생각에 우리는 조금 신나있다. 그렇게 첫 여행지로 차가운 겨울바다였던 속초에 다녀왔다.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사실 다시 다가올 그 날이 조금 걱정이면서도 100일 간은 개의치 않기로 했기 때문에 괜찮아졌다. 


다음주에는 우리 춘천으로 간다. 

진짜 마음껏 놀아 보자 



Next ep: 도대체 직장인은 어떻게 난임병원에 다니죠? 


7년 연애 후 결혼 4년 차, 신혼의 기준이 아이가 있고 없고 라면 우리는 아직 신혼부부. 원인 모를 난임으로 스트레스도 받지만 뭐든 써내려 가다 보면 조금 위안이 됩니다. 내려놓기가 어려워 우리만의 방식으로 감당해보는 시간. ㅣ 일복 wait for you <난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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