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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알로하링 Aug 29. 2020

16. 어두움 끝에 빛 한줄기, 화학적 유산의 기쁨

길고 긴 어두운 터널 속에서 함께 한 행복한 일주일 (4주 3일) 

길고 긴 어두운 터널 속 한줄기 빛 , 화학적 유산의 기쁨 

내가 이런 글을 쓰는게 맞는가 싶면서도 뭐든 써내려 가야 위안이 되는 사람이라 적어보는 감히 내 생에 최고의 일주일이라고 말하고 싶을만한 기록. 우리부부는 병원의 계획대로 잘 따라가 보자 라고 마음을 먹었다. 나의 어떤 선택에도 응원하고 함께 해주는 남편이 있어서 더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난임병원 방문. 


처음에는 쭈뼛쭈뼛 하게 되고 알 수 없는 공기로 사로 잡힌 난임병원의 대기시간이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그런가 그새 편안함 까지는 아니고 아무렇지도 않은 공간이 되었다. 


꾹꾹 참아내고 참아내며 겨우 예정일에 해본 임신테스트기에서 흐릿한 두줄이 나왔다. 나홀로 눈물을 흘렸고 아직 정확히 모른다는 판단에 들뜬 마음을 겨우 붙잡고 다음날 아침 다시 해보니 조금 더 선명한 두줄이 나왔다.

와, 이게 임신인건가? 그동안 내 머릿속에는 임신테스트기에 두줄이 나온다면 이렇게 놀래켜줘야지, 이렇게 남편에게 알려야지 라고 생각해 둔게 많았는데 그런건 그냥 생각뿐이였다.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얼떨떨한 표정을 남편에게 들켰고 이 시기에 화장실에 가는 나에게 집중하고 있는 김남편은(그동안 매번 실패였기 때문에 나오면 어떻게 위로를 해줘야 할까 어떻게 말해야 할까 생각하고 있음) 쪼르륵 안방으로 따라 들어왔다. 


선명하게 나온 두줄을 보여주며 '두줄이 나왔는데 이게 맞는건지 안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 라고 말하고 둘이 한참을 끌어안고 울었다. 너무 기뻤다. 그리고 얼떨떨했다. 


아빠, 만나서 반가워요 - 


아 내가 생각한 임신소식 알리기는 이게 아니야 라고 생각해서 그동안 생각해 둔 것 중에 정말 아끼고 아꼈던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팀의 어린이 유니폼을 꺼냈다. 사이즈로 불리기를 1호 가장 작은 유니폼. 침실로 들어와 걸려있던 유니폼을 우연히 본 남편은 이미 임신소식을 알고 있음에도 몇번이고 감동스러워 하고 눈물을 흘렸다. 


뭔가 이제 다 된 것 같았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오기는 하는 구나 라고 생각했다. 원래도 자상한 남편이지만 더 모든 것을 해주고 싶어 했다. 자신이 잘 준비하지 못하는 저녁식사 차리기에 열을 올렸고, 부실하다 싶으면 많이 아쉬워 했다. 남편은 운전을 잘하지 못하는 것에 왜 운전을 더 연습하지 않았을까 후회하고, 출장이 잡힌 나에게 매일 안갈 수 없는 방법은 없을까? 라고 고민해줬다. 너무 소중하게 온 존재라 1분 1초가 꿈 같았다.


매일 꿈 같았다. 매일이 행복했다. 



꿈이 깨지는 시간은 딱 일주일 걸렸다. 


언제쯤 병원에 가면 좋을지 고민했다. 일찍 가면 정확히 확인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해서 

당장이라도 달려가보고 싶었지만 우리는 5주0일차에 가기로 했다. 온 힘을 다해 만나고 싶었다. 지키고 싶었다.


두줄은 더이상 진해지지 않았다. 선명한 두줄 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더 진해지지 않아 불안했다. 

불안한 나를 다독이며 그런 마음을 가지면 더 스트레스가 될거라고 본인도 불안해 하면서 옆에서 다독였다.

'아니야, 흐려지는 건 잠깐 호르몬 때문일거야' 라고 생각하면서도 나쁜 결과로 다가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선명했던 두 줄은 조금씩 흐려지고 4주3일차 아침에는 한줄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흔한 '화유'라는 것이지만 그 흔하디 흔하다는 화학적 유산이 내가 겪게 될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4년 가까이를 기다려온 소중한 존재가 사라져 버렸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누구의 탓도 아니지만 한참을 우는 거 이외에는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직도 흘릴 눈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이 울었다. 나뿐만 아니라 남편도 정말 많이 울었다. 

내가 무거운 물건을 들었던 적이 있었나? 쉬는 날 바람쐬러 나갈때 잠깐 했던 운전 때문인가? 화학적 유산의 경우 엄마, 아빠 누구의 탓도 아니라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행동만 탓할 수 밖에 없었다. 이틀을 꼬박 괜찮다 싶다가도 아주 자주 울컥하며 눈물이 났다. 



행복했던 일주일 , 4주 3일차 


일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비로소 아주 조금 괜찮아 졌다. 아니 이제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우리에게 두줄은 사라졌다. 일주일 전 남편에게 임신소식을 알렸던 1호 유니폼을 꺼냈다. 그동안 했던 수많은 임신테스트기 중 가장 선명했던 두 줄을 하나 선택하고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행복했던 일주일, 4주 3일차 

이번 어려움도 함께 잘 이겨낼 수 있게 해줘서 정말 고맙고 감사해 ! 우리에게도 긍정적인 신호가 되는 계기라고 생각하고 다음에는 더 지혜롭고 맞이하고 해쳐나가요. 아빠, 다음에 더 건강하게 만나요. 

오빠, 정말 고맙고 사랑해. 건강하게 준비하자. 슬기롭게 이겨내자 

우리는 이 편지를 마지막으로 슬픔은 다시 묻어 두기로 했다. 


이번일을 계기로 그동안 우리는 난임이라고 하는 부분에 있어 어두운 터널속에서 갇혀 있는 느낌이였는데 일주일 간의 두줄을 통해 한줄기 빛이 보인다고 했다. 우리도 될 수 있구나 , 되겠구나 라는 희망적인 메세지로 생각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또 한번 성장했다. 



임신이 아닌데 , 아직도 임신중이라구요? 


월요일 아침 병원에 갔다. 그동안 일이 가장 최우선 이였던 나였는데 이제 내가 최우선이기로 했다. 

일주일 간 나의 상황을 말했고 초음파를 통해 유산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그냥 똑 떨어져 나가는 건 줄 알았는데 내 평생 10일에 가까운 생리도 했다. 평소보다 훨씬 생리통도 심했는데 말하기도 전에 담당의사가 먼저 알아줬다. 피검사를 진행했고, 점심 이후에 병원으로 부터 연락이 왔다. 임신수치가 아직 있어서 임신이 종결되어야 그 후에 어떻게 할 지 알 수 있다고  하고, 며칠 후에 와서 임신이 종결되었는지 다시 한번 피검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제 다시 한 줄 인데, 아직도 내 몸에는 임신수치가 남아 있다니. 


너무나도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초음파를 볼때도 담당의사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무덤덤했는데, 피검사 수치에 대한 답변 전화에 다시 슬퍼졌다. 임신이 아닌데 아직도 임신중이라니, 유산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임신수치가 나오다니. 이런건 아마 내가 화유를 겪지 않았다면 절대 모를 일이였다.


며칠을 더 그날을 보내고, 겨우 임신종결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드디어 완벽한 한줄이 되었다. 어두운 터널 속에서 빛 한줄기 ! 화학적 유산의 기쁨. 



우리 부부는 다시 계획이 없어졌다. 


그 어떤 일이던 잘 극복하는 사람이였는데 이번 일은 내가 감당할 수 없을만큼  이였던 것 같다. 

병원에서는 한달은 쉬어보고 다시 어떻게 할지 내 몸의 상태에 따라 계획을 해보자고 했다. 일단은 알겠다고 했다. 사실 무덤덤 하게 써 내려간 이 글 속에 내 슬픔을 드러내기는 싫었다. 담당의사에게도 울며 불며 왜 나냐고 왜 이런일이 생긴거냐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야 빛 한줄기를 만났는데 슬픔으로 누르고 싶지 않았다. 


건강하기로 했다. 그리고 조금 더 가벼워 지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 서로를 더 사랑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되면 조금 더 지혜롭게 슬기롭게 준비하고 맞이하기로 했다. 그때는 꼭 지켜내고 싶다. 너무 붙잡고 싶다. 


일주일 동안 행복했어, 일복아 


7년 연애 후 결혼 4년 차, 신혼의 기준이 아이가 있고 없고 라면 우리는 아직 신혼부부. 원인 모를 난임으로 스트레스도 받지만 뭐든 써내려 가다 보면 조금 위안이 됩니다. 내려놓기가 어려워 우리만의 방식으로 감당해보는 시간. ㅣ 일복 wait for you <난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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