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꾸 Dec 04. 2018

스타일리시한 캐릭터들이 이끄는 스타일리시한 스릴러

영화::부탁 하나만 들어줘(2018)

*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를 보고 작성하였습니다. 


 너드(nerd)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의 캐릭터이다. 어딘지 모르게 어설픈 외모, 한 분야에 푹 빠져 있는 외골수 같은 면모, 그리고 부족한 사회성까지. 주변인들이 너드를 향해 수군거리거나 너드를 괴롭히는 모습은 이미 하나의 클리셰가 된 지 오래다. 배드애스(badass) 또한 전형적인 캐릭터이다. 멋드러지는 외모, 거친 입담, 심성이 곱지는 않지만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이들은 너드와는 대척점에 있는 캐릭터이다. 


 '스타일리시 스릴러'를 표방하는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의 두 주인공 스테파니(안나 켄드릭)와 에밀리(블레이크 라이블리)는 각각 너드와 배드애스이다. 하지만 이 캐릭터들이 진부하지 않고 오히려 매력이 넘치는 이유는, 그들이 영화의 컨셉에 걸맞게 스타일리시한 모습으로 변주하였기 때문이다. 마치 떡볶이라는 흔한 음식이 푸드 스타일링을 거쳐 호텔 레스토랑에 어울리는 음식으로 멋지게 진화한 느낌이랄까? 



 스테파니는 고양이가 가득 그려진 양말을 좋아하고, 어린 아들의 학급 행사에 열정을 불사르는 싱글맘이다. 집안일이나 육아에 남다른 관심과 재주를 가지고 있어 브이로그(Vlog)를 통해 개인 방송에도 열심이다. 다른 학부모들은 어딘지 모르게 만만해 보이는 그녀를 마치 너드를 바라보듯 한다. 한편 에밀리는 성공한 커리어 우먼으로, 화려한 외모와 패션 감각으로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쿨하다 못해 서슬 퍼렇게까지 느껴지는 표현들을 자유분방하게 내뱉는 그녀의 속마음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극과 극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너드맘'과 '배드애스맘'은 더 놀고 싶다는 아들들의 투정 덕분에 조금씩 가까워진다. 늘 일 때문에 바쁜 에밀리는 스테파니에게 자신의 아들 닉을 돌봐달라는 부탁을 자주 하고, 아이 돌보는 일을 곧잘 즐기는 스테파니는 흔쾌히 호의를 베푼다. 그렇게 둘은 친구가 되고, 다른 곳에서는 말할 수 없는 서로의 비밀을 털어놓으며 관계가 더욱 깊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닉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남겨놓은 채 에밀리는 행방불명이 된다. 곧 그녀의 사체가 미시간의 호수에서 발견되고, 스테파니는 에밀리의 장례를 치르면서 에밀리의 가족,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에밀리의 남편 숀과 가까워진다. 연인 사이로 발전한 스테파니와 숀이 새로운 출발을 하려는 찰나, 스테파니는 에밀리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영화는 스릴러라는 장르의 미학을 충실히 따른다. 죽어서 땅에 묻힌 이가 죽지 않고 주위를 맴도는 듯한 분위기는 공포감을 자아내고, 스테파니가 에밀리의 흔적을 따라가는 과정에서는 칼, 샷건, 음침한 인물과 공간이 등장하여 긴장감을 선사한다. 또한 에밀리가 스테파니에게 털어놓지 않은 비밀과 그녀의 싸이코패스적인 면모는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힘들게 만들고, 이를 통해 짜릿한 스릴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스릴러로서의 재미와 더불어 B급 감성의 블랙 코미디, 배우들의 화려한 외모와 스타일링을 통한 시각적인 즐거움,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촘촘하게 엮어낸 스토리의 완결성까지, 영화를 보고난 후에는 '스타일리시 스릴러'라는 워딩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렇게 높은 완성도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영화이지만, 또 하나 박수를 보내고 싶은 부분은 있으니 바로 이 영화의 '배역'이다. 절대 다수의 영화 속에서 서사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인물들은 대부분이 남성이고, 여성 캐릭터는 많은 경우 주변적이거나 도구적으로만 소모된다. 이처럼 영화 산업 내의 성 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벡델 테스트'이다. 이는 한 영화 속에서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2명 이상인지, 그 캐릭터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지, 그리고 그 대화의 주제가 남성 캐릭터에 대한 것이 아닌 다른 내용인지를 확인하여 영화 속에서 여성 캐릭터의 비중을 평가하는 도구이다.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매력적인 두 여성 캐릭터 스테파니와 에밀리가 전적으로 스토리를 주도하며, 남자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숀은 두 여자 주인공 사이에서 휘둘리며 매우 제한적인 영향력만을 행사한다. 또한 유일하게 비중있는 남성 캐릭터인 숀의 역할도 백인이 아니라 동양인 배우가 맡았다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 '백인 남자들' 없이도 이렇게나 스타일리시하고 질 높은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이 영화의 저력은 최근 할리우드에서 지나치게 남용하고 있는 PC(Political Correctness)코드를 올바르게 반영한 사례라는 점에서 더욱 박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르의 미덕을 충실히 따르는 영화, 풍부한 내러티브를 군더더기 없이 스타일리시하게 보여주는 영화, 보는 즐거움과 웃는 즐거움을 아낌없이 주는 영화, 그리고 영화 밖에서도 칭찬할 부분이 많았던 영화. 주변에 자신있게 권할 수 있는, 아니 오히려 영업을 하고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던 영화였다. ⓒ라꾸

매거진의 이전글 서로의 꿈을 껴안는 이들의 오르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