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시즌 2 - 두 번째 직장에서 다시 든 펜
정신적 퇴사가 참 쉽지 않다. 회사라는 공간은 우리의 밥줄이요 생명줄과 같아 보이니 말이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진 않지만(주는 곳도 있지만) 일용할 양식의 양과 질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것 같으니 더 그러할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조직에서 조금이라도 더 인정받기 위해, 눈에 띄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 같다. 옆에 누구누구는 미친 듯이 일해서 능력을 인정받아 고속 승진을 거듭하니 나는 더 초조해지고 상대적으로 압박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이용이라도 하듯, 직장 상사는 묘한 경쟁심리를 자극하는 것처럼 느낀다. 힘들지만 해내야 할 것 같다. 야근을 거듭해도 나만 열심히 하는 게 아니니 내 자리는 그대로다. 결국 인정받기는커녕 번아웃에 다가간다. 묘하게 웃음 짓는 사람들은 늘 고정되어 있는 것 같다. 이 굴레가 싫지만 어쩔 수 없다. 난 이곳에 뼈를 묻었거든. ( = 대안이 없거든.)
좌천됐다고 생각할 것 없다.
그 하찮던 일이 내가 제일 잘하는 나의 무기가 되어줄 것
많은 이들이 이런 생각을 전제로 하고 회사 생활을 이어나간다. 남의 일처럼 말했지만 그렇지 않다. 나 또한 그랬다. 어렵게 들어간 곳이고 5년 넘게 준비했던 나의 꿈을 이루게 해 준 고마운 곳이었기에, 그 누구보다 인정받고 싶었고 적성에 맞지 않았음에도 어떻게든 옷에 맞춰보려 몸을 구겨본 게 수 십, 수 백 번이다. 2014~2016년의 이야기다.
내가 속한 조직에서, 또는 내가 속하고자 하는 조직에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우면서 멋진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부분이고, 동기부여 측면에서도, 삶의 활력 측면에서도 플러스 요인이다. 실제로 인정을 받게 되면 뒤따르는 금전적 보상이 또 얼마나 달콤한가. 그 모습을 그리며 우리들은 어렵지만 희망을 가지고 싸움을 이어나가는 것이 아닐까. '도전'이라는 이름의 여행을 그 누가 막아설 수 있을까.
하지만 모든 일이 그러하듯 직장에서의 삶이 매번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잘 될 때보다 잘 안될 때가 더 많다고 느끼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나 또한 적성에 맞지 않는 일임을 자각했을 때 받아들여야 했던 슬픈 감정의 때가 아직도 벗겨지지 않고 있다. 5년을 넘게 준비했는데, 이건 내 길이 아님을 깨달아버렸을 때의 그 슬픔은, 지금도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의 아물지 않는 흉터이자 상처로 남았음을 쉬이 부인하기 어렵다.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생각을 그 어느 때보다 많이 해야 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상경계 출신으로 미친 듯이 취업 준비해서 적절한 직장에 들어갔으면 그들과 비슷한 고민과 분투의 틀 안에서 적당히 일렁이며 남부럽지 않은 연봉 받으며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이 모든 게 상대적으로 남들이 잘 걷지 않는 트랙을 선택한, 제 발로 가시덤불 속으로 뛰어들어간 나의 잘못에서 기인한 게 아닐지에 대해 수많은 고민과 자책을 하기도 했었으니까. 참 쉽지 않았었다 그때.
직장에는 R&R(Role and Responsibilites)이라는 게 있다. 내가 할 업무의 영역을 할당받는, 진짜 '내 책임하에 수행해야 할 나의 업무범위'를 뜻하는데, 이게 직장인들을 때때로 고뇌에 빠지게 한다. 내 업무 권한과 책임의 범위와 그 중요도가 높아질수록 회사에서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될 확률이 높고, 이는 그 사람을 조직 내 주요한 인물처럼 보이게 만든다. 많은 미팅과 문서들이 내 손을 거쳐가고, 사소한 부분까지 가장 속속들이 알아야 하기 때문에 나에게 묻고 의지하는 사람도 늘어난다. 그렇다면 그 반대는, 그 반대다.
따라서 주요하지 않은 R&R을 할당받게 되면, 업무량은 줄어들 수도 있겠으나(꼭 그렇지도 않아서 문제.. 절대 업무량이 줄어들면 이 길을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권한 범위와 조직 내 중요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조직에서 중요하지 않은 사람으로 비칠까 봐 두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내 존재에 대해서, 조직 내 나의 가치에 대해서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중요한 일 맡아보려고 무리하지 말자. 야근만 늘어날 뿐...
누가 봐도 철수 기로에 선 업무를 맡게 되었던 기억이 난다. 수치적으로는 조직 내 점유율이 1%가 채 안 되는 영역이었고 조직 내 구성원이나, 분위기나, 어떤 면으로 들여다보아도 그 누구도 신경을 크게 쓰지 않는 듯한, 하지만 애증의 느낌은 드는, 누군가는 그래도 희생해서 맡아줬으면 하는, 그런 업무를 부여받았던 기억이 난다. 할 건 다 하는데 해도 성과로 느껴지지 않고, 안 하자니 내 R&R 영역에 있는 업무기 때문에 직무유기가 되는, 해도 그만 안 하면 절망인 업무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었던, 조직 내 분위기가 그런 수준의 업무를 도맡기로 결정이 되었고 그렇게 통보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 조금 충격이긴 했지만 다행히 적성의 불일치를 인지한 상태에서 조직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약간의 자괴감을 안고 살던 때라, 진로에 대해서 조금씩 고민하던 시기였고, 덕분에 생각보다 그 업무를 받아들이는 데 정신적 충격이 크진 않았다. 내 부족함에 대한 자아성찰이 나의 (덜 중요한) 새로운 업무를 받아들이고 책임감을 다시 부여하는 데 완충작용을 해준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전사적인 관심도가 떨어지는 부분이라고 느껴 심적 부담감이 덜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일은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이 업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극히 일부였다. 이 업무도 엄연히 일이었기 때문에 유관부서의 그 누구도 100%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으나 신경 쓸 겨를이 없으셨을 건데, 나는 회사에서 중요하게 여기던 업무들을 다 떼어내고 오로지 이 업무에만 올인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회사에서 나보다 이걸 잘 아는 사람이 거의 없게 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때 묘한 심적 반전의 물결이 찰랑였다. 이 조직에서 내가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진행하고, 정리하고, 업무다운 업무를 알아서 수행해보면서 업무에 대한 자신감과 성취감이라는 걸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물어오기 시작했고, 동기들 중 일부는 나를 총괄이라고 놀리며 그래도 그 업무 영역에 대해서는 노고를 인정해 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 업무 또한 조직에 실질적인 플러스를 가져다준 기억이 딱히 없고, 누군가는 해야 했던 허드렛일에 가까운 업무를 떠안듯 시작한 감도 없지 않았는데, 이 안에서 새로운 가치와 깨달음을 찾아낸 것이다. 이 숭고한 감정과는 별개로 회사에서의 내 성과는 미미하거나 없는 수준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지만, 그래도 말년에 누군가 해야 하지만 그 누구도 도맡아 하기가 애매한 일을 떠안아서 진행해보며 나름의 인사이트를 가져갔다고 생각하니 나름 의미 있었고 소중한 경험으로 점철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스폰서십 계약이나 대외업무 진행과 같은 내가 정말 못하는 업무들에서 조금 벗어나 세일즈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매장별로 수치를 비교하고, 입고일 대비 재고 현황과 같은 다양한 트렌드를 분석하면서 물량을 예측해보고 예산도 고민해 보며, 복도 전력량계의 데일리 트렌드를 옆집과 비교하며 전기를 아껴 쓰는 방법을 고민했던 기억과 조간신문 스포츠면에 실려 나오는 프로야구 데이터를 신문지가 뚫어질 때까지 들여다보며 심취했었던 나의 어릴 적 취미가 단순히 취미로 끝날 일은 아니었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던 스포츠는 다른 방법으로 언젠가 다시 웃으며 만나는 게 서로에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그 마음의 문을 처음으로 살짝 열어젖히게 되었던 소중하고 중요한 계기가 되어주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하고 뜻깊은 여정이 아니었겠나.
좌천은 내가 좌천될 때 비로소 좌천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전까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나에 대한 믿음과 자존감만 잃지 않는다면, 그 어디에 두어도 무너지지 않을, 새로운 이정표를 찾아나갈 동력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느끼며 그렇게 그날들에 나는 조금 더 성장했다.
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