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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컴 May 19. 2021

#4. 자양댁 막썰이 스테이크

의도하지 않았던 효과, 그래도 진심



기대하지 않았을 정도로, 기대하면 안 될 정도로 아내 덕택에 그동안 맛있는 식사를 많이 했다. 가격과 영양과 사랑과 정성을 모두 잡은 최고의 보양식이었지. 직장을 잠시 쉬는 기간이라고는 하나, 매일같이 꼬박꼬박 맛있는 밥과 반찬을 한다는 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님을 잘 알기에, 감사한 마음이었다. 살아가다 보면 이 기간의 형상이, 살아간 세월에 의해 서서히 빛바래져 가겠지만 그래도 이 기간의 소소한 행복은 오래도록 잊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가슴은 기억해줄거야.


급식 아닙니다. 제가 했습디다.


다른 사람의 능력치를 내가 감히 평가하는 행위를 좋아하지 않는다. 평가와 줄세우기가 사람 사이의 반목과 불필요한 경쟁을 조장하고, 행복도를 낮추며 나아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제로 오래간 대두되고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경쟁은 필요하나 모든 개인적인 것들에 경쟁 요소가 버무려지는 것은 극히 싫어한다. 


그럼에도 이 말은 해야겠다. 너무 고마워서다. 아내는 요리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확실히 특별한 재능이 있다. 흙 속의 진주를 발견한 것 같달까. 팔불출이어서가 아니다. 이 진주를 평생 요리하는 사람으로 낡아가게 할 순 없다. 그런 삶을 동경하지도 않거니와. 다만, 정말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놀라울 정도로, 하나같이 너무 맛있다. 콩깍지가 씌인 걸까. 보통 칭찬을 받으면 좋아서 그 일을 더 하고 싶게 되는데, 그런 속내로 하는 말이 아니어서 더 놀랍다. 진심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부끄럽지만 정성들인 나의 자양댁(먈묠꿈터) 첫 요리


고마운 마음에 그나마 내가 비벼볼 수 있는, 요리도 아닌 요리를 해줬다. 집 앞 마트에서 구입한 등심 스테이크를 옹졸 맞게 썰어낸 이른바  '막썰이 스테이크'다. 막썰이라는 수식어는 내가 좋아하는 술안주 중 하나인 막썰이회에서 따온 것이다. 대한의 주당들은 대체로 예상했겠지만. 


사실 근사한 스테이크로 만들어 주고 싶었으나 생각보다 고기가 두툼하지 않아 급하게 경로를 변경했다는 건 공공연한 나만 비밀이라고 생각하는 안비밀일 것 같다. 원래는 둘 다 요알못이라, 지지고 볶으면서 재밌게 함께 배워나가길 원했고 그런 신혼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한 쪽이 너무 훌륭해서 고맙지만 내 입장에서는 조금 난처한 상황이기도 하다. 밸런스붕괴. 음. 뭔가 나도 보여주고 싶은데, 뭐 실력이 하루아침에 일취월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식감은 괜찮았는데 음 뭔가 부족하긴 해


멋진 계란 요리 만들기를 시도하다 항상 결말은 '에그 스크램블' 이었던 과거와 뭐가 다른가 싶어서 실소가 터지기도 했으나, 레시피에 충실한 후 내가 알고 있는 얄팍한 지식의 총체를 투하, 부족한 스킬을 갖은 정성으로 메꾸기 위해 노력했다. 다행히 맛은 나쁘지 않았던 듯! 



솔직히 생각보다는 맛이 괜찮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좀 더 준비해서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도 남긴 채 다음 요리를 기약하기로 했다. 데코레이션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그럼 맛으로 승부해야 하지 않나? 그것도 아니고. 양으로 승부했다면 어느정도 수긍할 수 있었리라. 


사실 이 요리는 며칠 후 친구 초대할 때를 대비하여 연습 삼아 만들어본 것이다. 테스트 대상으로 만들어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동안의 고마움에 대한 아주 미력한 보답으로 고기반찬을 해주고 싶었던 마음만큼은 진심이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집 앞 마트에는 홀그레인 소스와 아스파라거스를 팔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골목 상권을 최대한 애용하고자 했는데, 다음엔 좀 더 큰 마트를 가야겠다. 이따 친구가 놀러 올 텐데, 맛있게 먹어주었으면 좋겠고 아늑한 우리 집에서 행복한 시간을 공유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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