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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컴 Jul 21. 2021

#11. 첫 생일, 미역국 연습

좋은 날 맛없는 미역국으로 초치고 싶지 않았어


조금 지나긴 했지만 아내의 첫 생일에 직접 만든 미역국을 대접하고 싶었다. 그간 본인 말로는 서툴다고 했으나 매번 놀랍도록 맛있는 요리를 얻어먹었던 나로서는 이번 기회가 고마움에 대한 보답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을 했다. 진짜 '서툰 요리'가 무엇인지, 그 정수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경험이 부족해 서툰 나의 최대 무기는 노력과 연습뿐


그래도 30년을 넘게 살아온 인생인데, 미역국 끓이는 게 '처녀 출전'은 아니다. 영국에 살 때 한식에 목말라 한국식 식료품점에 들러 종종 미역국거리를 사서 끓여먹었던 기억이 난다. 웃지 못할 추억도 있다. 내가 정말 '요린이'라는 방증인데, 미역줄기 20인분 정도를 샀는데 너무 양이 적은 것 같아 20인분을 한 번에 넣고 미역을 불렸던 것. 만약에 호기심에 이걸 튀각 먹듯이 우걱우걱 집어삼켰다면..?  본의 아니게 영국의 의료보건 시스템을 체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레시피 형아가 시킨 대로만 하면 돼서 좋다.


요즘은 블로그를 통해서 레시피를 쉽게 접할 수 있고, 다양한 레시피를 비교해가며 나와 맞는 스타일로 요리할 수 있어서 좋다. 실로 오랜만에 해보는 건데 필요한 재료와 정량까지 명확하게 제시해 주니 솔직히 손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수준. 더딘 손놀림은 양해하는 것으로...




연습해본 미역국은 소고기 미역국이었다. 지난날의 우를 재범하지 않고자 미역줄기의 양 조절에 심혈을 기울였었지. 마늘 빻는 건 귀찮고 소질이 없어서 큐브 다진 마늘을 얼렸다 녹였다 반복하고 있다. 초보자에게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 


뭐니 뭐니 해도 국거리의 백미는 소고기! 합법적(?)으로 당당하게 소고기를 먹을 수 있는 시간이다. 아, 당당하지는 않을 수도. 끓이다가 한두 점 집어먹어도 티가 나지 않고 일부러 몇 점 남겨둔 후 구워 먹어도 맛있다. 어차피 할 요리, 선한 의도에서 하는 일이라면 주체인 나 자신이 즐겁고 유쾌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과정들이 재밌고, 소소한 즐거움이 가미되어 자칫 일이라고 느껴질 수 있을 작은 확률을 미연에 차단해 준다. 



소고기 집어먹는 시간

내가 즐거우니 요리도 잘 될 것 같다. 이게 본질이 아닐까. 필요에 의해서 하는 일이더라도 억지로, 타성에 젖어서 하는 것보다는 내가 이유와 목적을 명확히 설정하고 하는 일이 과정과 결과 모두 더 만족스러울 확률이 높다는 것. 이번 미역국 연습을 통해서도 그 단순한 듯 당연한 진리를 다시금 깨우칠 수 있었다. 


실제로 결과도 꽤나 만족스러웠고, '다소 짠' 느낌이 있었지만 아내를 위한 요리는 좀 더 보완해서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얻은 게 수확이었다. 



[그리고 사실 하나]


이 연습을 하고 난 며칠 뒤, 엄마께서 직접 결혼 후 첫 생일을 맞은 며느리에게 미역국을 직접 끓여주고 싶으시다고 해서 열심히 연습한 내 미역국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다. 


두어 달쯤 지났을까? 공교롭게도 엄마의, 당신의 생신에 거짓말처럼 이 미역국은 업그레이드되어 부활했다. 드디어 이 첫 미역국이 비록 다른 주인의 품에 안기긴 했지만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역시나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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