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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에살다 Aug 25. 2023

원자폭탄과 정치(2) : 왜 미국은 일본에 투하했을까

영화 <오펜하이머> 텃붙이기 / 원자폭탄과 정치 (2)

영화 <오펜하이머>는 줄리어스 오펜하이머와 루이스 스트로스의 갈등을 중심으로 하여 오펜하이머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과 관련되어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다들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였던 맨해튼 프로젝트를 둘러싼 인물들이다. 그런데 그들을 보면 과학자만 있지 않다. 정치인, 군인, 행정관료 등도 얼굴을 내보인다. 이는 그만큼 원자폭탄은 단순한 폭탄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군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이질적 요소들이 원폭과 관련된다. 영화에서 나오는 원폭과 주요 인물을 보다 입체적으로 보기 위해 내용을 덧붙여본다. 원자폭탄과 정치를 부각시켜보려고 한다.


(1) 편에 이어서 ...


10. 영화 속에서는 미 군용 트럭 스튜드베이커 2대에 완성형 원폭이 각각 1개씩 실려 호송대 없이  로스알라모스 연구소를 떠난다. 그런데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연구소에서 원폭이 완제품으로 다 조립되지 않았다. 중요 부품으로 나누어져서 반출되어 샌프란시스코로 운송되었다. 여기서 SSU 급 순양함으로 옮겨져 태평양 괌 북쪽에 있는 티니안 기지로 운반되었다. 이 기지에서 원자폭탄은 완제품으로 조립되었다. 운송은 엄격한 호송 작전에 의해 이루어졌다. 티니안 기지에는 미 공군 B-29 폭격전대가 있었다. 이들은 도쿄를 비롯한 일본 주요 지역에 폭격을 감행하고 있었다.

11.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은 기밀유지를 위해 맨해튼 프로젝트를 구획화하여 시행했다. 프로젝트를 공정 단계별로 분리하여 미국 전역으로 분산시켜 진행하였다. 예를 들어 시카고 야금학연구소에서는 폭탄 몸체에 대해 연구했다. 리치랜드 핸포드에서는 플루토늄 농축을 했다. 공정별 결과물들은 로스알라모스 연구소로 집결되었다. 그런데 이런 구획화는 의사소통에 큰 장애물이 되어 과학자와 군부 사이에 서로 얼굴 붉히는 일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로브스 생각과 달리 구획화는 소련 스파이를 막는데 사실상 실패했다. 고위 과학자 중에 있던 스파이에 의해 주요 정보는 소련으로 넘어갔다.


구획화로 진행된 맨해튼 프로젝트


12. 왜 미국은 원자폭탄을 일본에 투하했을까? 원래 원폭개발은 독일 히틀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였다. 일본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투하했을까? 원폭 투하는 비단 전쟁 종결만을 위함이 아니다. 정치적 이유도 명확했다. 먼저 미국 내부 사정을 보자. 쉽게 말하자면, 총선이 다가오고 있었다. 세금 약 20억 달러 예산, 한국 돈으로 하면 약 300조 원을 쏟아부었는데, 결과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자국민에게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했다. 그리고 미국 정부와 정치인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를 생각했다. 세계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양분화될 거라 보았다. 그러기에 공산국가 원조인 소련에게 우위권을 내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미국은 원폭 위력을 보여주어야 했다. 맨해튼 프로젝트 당시 소련에게는 핵무기가 없었다.

14. 미  육군과 미국 과학기술자에게서 투하를 지지하는 소리가 있었다. 1차 세계대전과 달리 2차 대전에서는 공군과 해군 전력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육군이 뒤쳐지고 있었다. 육군이 치고 나가기 위해서 원폭이 필요했다. 칼을 들었으니 무언가를 잘라야 하지 않겠는가! 당시 미 육군 고위급 지휘관은 강경 매파가 다수였다. 미국 국내파 과학자는 독일 등 유럽에서 초청 혹은 망명해 온 과학자와 경쟁해야 했다. 엔리코 페르미, 실라르드 레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유진 위그너, 폰 노이만 등 기라성 같은 유럽 과학자들은 원폭 개발을 서둘려야 한다고 미 대통령 루스벨트에게 간청했다. 그러나 트리니티 핵실험 이후 가공할 원폭 위력에 실험만으로 족하다는 의견이 형성되었다. 미 국내파 과학자는 유럽 과학자들에게 가려진 자신들의 실력을 보여주고자 했다. 원폭 투하와 개발을 강조했다.

16. 그런데 왜 하필 히로시마였을까? 원래 원폭 투하 후보지 중 1번은 도쿄였다. 그런데 영화에서처럼 일본 정신과 문화의 상징이라서 제외되었다. 이는 명분상 그런 거였다. 사실은 도쿄에는 일본 천황궁이 있었다. 도쿄 원폭 투하로 천황이 죽는다면 전후 일본 통치가 불안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천황을 앞세워 미국이 자신의 입맛대로 일본을 관리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래서 전후 처리를 위해 도쿄는 남겨져야 했다. 반면 2번 후보지인 히로시마는 주요 병참기지가 있는 상업 도시였다. 일본군 제2사령부와 여러 군수품 공장들이 있었다. 그래서 우라늄 원폭 리틀보이가 투하되었다.

17. 그런데 나가사키는? 원래 나가사키는 예비 후보지였지 결정된 목표지는 아니었다. 고쿠라가 투하 대상이었다. 고쿠라에도 히로시마처럼 주요 병참기지가 있었다. 그러나 폭격 당시 고쿠라 지역 날씨가 좋지 않았다. 안개가 짙어 목표 대상인 병참 기지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레이더 폭격이 아니라 반드시 시계 폭격을 하라는 명령에 적절한 시야 확보를 위해 폭격기는 선회비행을 했으나 연료가 많이 소진되어 더 이상은 무리였다. 그래서  예비 후보지인 나가사키로 방향을 돌렸다. 나가사키 군수품 산업단지에 플루토늄 원폭 팻맨이 떨어졌다.


( 왼쪽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우라늄탄 리틀 보이, 오른쪽은 나가사키에 떨어진 플루토늄탄 팻맨 )


( 원자폭탄이 떨어진 히로시마 )


18. 원자폭탄은 2개만 만들었을까? 영화에서는 2개만 제작한 것처럼 나온다. 사실이 아니다. 15개를 만들었다. 미국은 일본이 항복하지 않으면, 8월 17일과 9월, 10월에 또 투하할 예정이었다.

19. 영화 후반부에 오펜하이머가 상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1963년에 여러 물리학자들의 추천과 권유로 엔리코페르미상을 수상했다. 맨해튼 프로젝트 이후는 그는 메카시즘 광풍을 이용한 스트로스의 개인적 복수에 휘말려 소련 스파이로 몰린다. 그래서 핵무기 관련 보안 금지 대상자가 되었다. 로스알라모스를 떠나 칼텍으로 돌아갔지만 대통령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소련 대상 핵공격 계획과 수소폭탄개발에 대해 듣고 오펜하이머는 반핵운동을 펼쳤다. 그는 고등연구원 소장을 지낸 후 은퇴하였고 엔리코페르미상을 받았다. 사후 성대한 장례식은 없었다. 그의 시신은 화장되어 어느 바닷가에서 뿌려졌다. 2022년이 되어서야 그의 스파이 혐의가 벗어졌다.


20. 영화에 나오는 오펜하이머 청문회 장면에서 그로브스 장군은 법안에 따르면 오펜하이머에게 보안 인가를 줄 수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법안은 1947년에 미 의회를 통과한 맥마흔법이다. 이 법은 핵 보안에 관련된 규정 그리고 핵물질과 핵무기 그리고 이와 관련된 기술의 국외 반출 금지 등을 골자로 지녔다. 1944년 영국은 미국과 맺은 하이드파크 협정을 빌미로 미국에서 핵 기술제휴를 요청했으나, 미국은 맥마흔법을 내세워 요청을 거절했다. 사실 미국은 전후 갓 태어난 것과 같은 유럽 국가의 보안 수준을 신뢰하지 못했다. 특히 영국은 제트엔진과 같은 주요 무기 기술 정보를 소련에게 넘겨준 적이 있다. 그래서 미국은 영국의 거절을 단칼에 거부했다. 이에 영국은 호주 등 영연방 국가와 함께 핵개발에 착수한다. 


이와 같이 원자폭탄은 단순한 폭탄이 아니다. 수많은 맥락들이 엉켜진 가운데 만들어진 폭탄이다. 관련된 여러 진영 사이에 이해관계와 합의 가운데 원자폭탄은 개발되어 투하되었다. 그러기에 원자폭탄은 정치적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줄리어스 오펜하이머는 그러한 이해관계 충돌과 합의라는 원자폭탄 정치 중심에 있었다. 원자폭탄은 현대 과학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원자폭탄 개발을 통해 근대식 과학활동이 아닌 거대과학이라는 현대식 과학활동이 역사적으로 등장했다. 오펜하이머는 그 역사적 등장을 위한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는 원자폭탄 개발과 사용에 일조한 자신의 책임을 인식하면서 살았다. 그는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다. 아인슈타인은 러셀과 함께 원자폭탄, 수소폭탄 등 핵무기에 대해 경고하는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을 하여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 문제는 더욱 뜨겁게 가열되었다. 그리고 이는 핵무기과 전쟁 근절 그리고 평화 촉구하는 과학자 운동이라 할 수 있는 퍼그워시 회의를 낳았다. 이 회의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 1957년 1차 퍼그워시회의에 참석한 과학자들 )

1편 링크 - https://brunch.co.kr/@kjs75mc/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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