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펜하이머>는 줄리어스 오펜하이머와 루이스 스트로스의 갈등을 중심으로 하여 오펜하이머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과 관련되어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다들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였던 맨해튼 프로젝트를 둘러싼 인물들이다. 그런데 그들을 보면 과학자만 있지 않다. 정치인, 군인, 행정관료 등도 얼굴을 내보인다. 이는 그만큼 원자폭탄은 단순한 폭탄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군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이질적 요소들이 원폭과 관련된다. 영화에서 나오는 원폭과 주요 인물을 보다 입체적으로 보기 위해 내용을 덧붙여본다. 원자폭탄과 정치를 부각시켜보려고 한다.
1.영화에서는 맨해튼 프로젝트가 오펜하이머와 그로브스 투 탑 체제처럼 보인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군사 작전이다. 원 탑이다. 프로젝트 총책임자 그로브스 장군! 오펜하이머는 핵폭탄개발 총책임자 겸 로스알라모스연구소 소장이었다. 그로브스는 오펜하이머의 리더십을 적극 지지했다. 그러나 최종 의사결정은 군부 대표인 레슬리 그로브스 소장에게 있었다.
2.영화와 달리, 그로브스가 처음부터 오펜하이머를 마음에 든 건 아니다. 처음에는 실험물리학자 어니스트 로렌스를 점찍었다. 그런데 노벨상 수상자인 그는 개인적 능력은 뛰어나더라도 통솔력이 부족했다. 또한 다른 이의 권위를 무시하곤 했다. 그로브스는 오펜하이머로 눈을 돌렸다. 통솔력을 지니며 타인의 권위를 존중하는 오펜하이머였다. 영화에서는 설명이 없지만, 그는 칼텍과 버클리에서 인맥을 쌓으며 자신의 학파를 단시간에 만들었다. 조직력과 통솔력은 이미 입증되었다. 이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위한 연구 인력을 모으며 조직화하는데 필요한 리더십으로 이어졌다.
3.영화 속 오펜하이머는 늘 깔끔한 헤어스타일에 정장 차림을 하고 중절모를 썼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칼텍 시절 그는 긴 머리에 편안한 옷차림이었다. 게다가 8자 걸음으로 캠퍼스를 활보했다. 정장에 중절모 그리고 담배 파이프는 맨해튼 프로젝트 시절 차림이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일까? 핵폭탄개발 총책임자 겸 연구소 소장이 되자 옷차림을 바꾸었다.
( 사진 오른쪽이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 왼쪽이 줄리어스 오펜하이머
4.영화 속에서 바니사 부시에게 비중이 없어도 너무 없다. 청문회에서 오펜하이머를 강력히 옹호하던 백발노인이 바로 그이다. 바니사 부시는 공학자이며 탁월한 과학행정가이다. 과학이 발달하면 기술이 따라오고 산업이 흥한다는 선형 모형을 제안한 그는 지금 미국 국립과학재단을 그가 세웠다. 현재 과학기술정책을 공부하기 위해 맨 먼저 알아야 할 것 중 하나가 부시의 선형 모형이다. 이러한 부시가 그로브스에게 오펜하이머를 소개했다. 부시는 과학연구개발부 부장이었다. 이 부서는 2차 세계대전 중 모든 개발 계획을 조율하고 관리했는데, 맨해튼 프로젝트도 그중 하나였다. 맨해튼 프로젝트 조직 구성에 대해 부시는 그로브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1945년에 촬영된 과학연구개발부 사진. 앞줄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바니바 부시 )
1942년 과학연구개발부 파티 사진. 당시 유명한 과학자들이 있었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오펜하이머.
6. 연합군 진영에서는 미국만 원자폭탄을 개발했을까? 그렇지 않다. 일단, 당시 독일과 일본 역시 원폭 개발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연합군에서는 영국과 캐나다, 소련 등이 비밀리 시작했다. 역사상 최초로 핵무기 개발은 영국이 먼저 시작했다. 그런데 원폭 개발은 원료 공급, 상당한 개발 시간뿐 아니라 천문학적 비용과 인적 자원이 필요하다. 당시 이 조건이 가능한 나라는 미국뿐이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를 비롯하여 독일에서 망명한 과학자들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에서 독일의 핵무장 가능성을 경고한 편지를 보내어 간접적으로 미국의 핵무기 개발을 부추겼다. 훗날 아인슈타인은 그 편지에 대해 심히 후회한다고 여러번 이야기를 했다. 미국은 핵무기개발기획에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여 독일과 소련 등에 마치 뉴욕개발계획처럼 보이게 했다. 미국은 영국과 캐나다로부터 비밀리 지원을 받으며 원폭을 완성시켜 나갔다. 천문학적 예산을 집행하여 개발 시간을 단축해갔다.
7. "하버드에서 화학 강의를 했는데 타자수 하라고 하네요!" 어느 여성이 오펜하이머에게 신세타령하자 그는 그녀를 플로토늄화학처리부서로 바로 발령 낸다. 그녀는 릴리 호닉이다. 브린마칼리지에서 화학을 공부한 그녀는 플루토늄 내파 장치 개발 담당자인 도널드 호닉의 아내였다. 오펜하이머 덕에 맨해튼 프로젝트 참여 여성 과학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다. 당시 여성 과학자에 대한 처우는 좋지 않았다. 여성 참정권이 인정되고 1920년대에 들어서야 여성 과학자가 전문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작했을 뿐이다. 진정한 동료로 인식되기 까지는 수 십 년 세월이 흘러야만 했다. 릴리 호닉은 오늘날로 말하자면 페미니스트였다. 영화 속에서 히틀러가 죽었는데 원폭 개발이 무슨 의미냐고 토론을 이끌던 이가 릴리 호닉이다.
8. 영화를 보면 로스알라모스를 방문한 닐스 보어를 그로브스가 연구원들에게 깜짝 선물로 소개한다. 이를 보면 그로브스가 닐스 보어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한다. 그렇지 않다. 그로브스는 보어를 경계했다. 당시 닐스 보어는 핵무기 개발보다는 핵무기 이후 세계 재편과 핵의 악용에 대해 말하고 다녔다. 독일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보어가 제자들을 만나기 위해 로스알라모스연구소로 가겠다고 하자 그로브스가 말렸다. 그러나 보어는 막무가내였다. 연구소로 가는 도중 그로브스가 그에게 보안을 강조했으나, 마이동풍이었다. 미 군부는 닐스 보어를 결코 반겨본 적은 없다.
(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에 맨해튼 프로젝트의 본부가 있었다. 사진은 연구소 정문 게이트 )
(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 풍경 )
(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 여성 직원들)
9. 1945년 7월 15일 뉴멕시코 주 사막에서 핵 실험이 있었다. 유명한 트리니티 핵실험이다. 실험용 폭탄인 가제트는 플루토늄 폭탄이었다. 포신형 우라늄탄은 핵실험이 필요 없었으나, 내압형 플루토늄 경우는 기술적으로 필요했다. 트리니티 핵실험을 관측하던 과학자들은 얼굴과 팔 등에 무언가를 덕지덕지 발랐다. 영화에서도 에드워드 텔러가 얼굴에 왕창 발랐다. 무엇이었을까? 바로 선크림이다. 당시 핵무기 개발 연구자들은 핵무기 위력을 예상하였다. 강력한 빛, 엄청난 폭발력, 뜨거운 열기 ... 그래서 얼굴과 팔 등 노출 부위에 선크림을 왕창 바른 채 멀리 떨어져 엄폐물에 몸을 숨겼다. 선글라스를 끼고 편광편으로 핵폭발을 관찰했다.